‘정체성’은 못 가진 자를 위한 새로운 정크푸드, 정치적 권리를 상실한 자를 위한 세계화의 사료… 스페이스정크space-junk가 우주에 버린 인간의 쓰레기라면, 정크스페이스junk-space는 지구에 남겨둔 인류의 찌꺼기다. 근대화가 건설한 생산물은 근대 건축이 아니라 정크스페이스다. 정크스페이스는 근대화가 진행된 이후에 남겨진 것,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근대화의 낙진이다.
---「정크스페이스」중에서
정크스페이스는 개념의 버뮤다 삼각지대며, 버려진 세균 배양 접시다. 그것은 구별을 거부하며, 해결을 방해하고, 의도와 실현을 혼동한다. 그것은 서열화하기보다는 축적하며, 합성하기보다는 첨가한다. […] 정크스페이스는 수백만의 우리 친구들과 영원히 자쿠지 욕조에 들어가야 한다는 판결을 받은 것 같다… 몽롱한 무경계의 제국, 그것은 높은 것과 낮은 것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곧은 것과 굽은 것을, 배부른 자와 배고픈 자를 모두 뒤섞어 영원히 아귀가 맞지 않으면서도 솔기 없이 깔끔한 패치워크를 만들어준다.
---「정크스페이스」중에서
정크스페이스를 처음 생각해낸 건축가들은 이를 메가스트럭처Megastructure라 칭하며, 자신들이 봉착했던 난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종 해결책이라 여겼다. 이 거대한 상부구조는 바벨탑처럼 영원히 존속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변적인 하부조직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라 여겨졌다. 물론 변화의 방향은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크스페이스에서는 모든 것이 뒤바뀐다. 상부구조 없이 오로지 하부조직만이 존재한다.
---「정크스페이스」중에서
건축은 ‘항구적인 진화’를 보여주는 시간적 배열로 변화되었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계속적인-변화이며, 이는 아주 드문 경우에 ‘복원’을 동반한다. 이 과정은 역사의 새로운 장들을 정크스페이스로 포획한다. 역사는 부패한다. 절대 역사absolute history는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아무런 감동도 없이 무엇인가 접목되고 이로부터 색깔과 형질이 제거된다. 이 밋밋함이 옛것과 새것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토대다…
---「정크스페이스」중에서
정크스페이스는 우리의 무덤이 될 것이다. 인류의 절반은 생산으로 오염되고, 나머지 절반은 소비로 오염된다. 제3세계의 자동차, 오토바이, 트럭, 버스, 공장,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오염물질을 다 합한다고 하더라도 정크스페이스가 생산해내는 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크스페이스는 정치적이다. 그것은 안락과 쾌락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비판적 능력을 제거함으로써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포토샵에 의해 선언문이 되고, 상호배타적인 것들이 모순 없이 결합된 청사진이 되며, 투명하지 못한 NGO 단체들에 의해 중재된다.
---「정크스페이스」중에서
정크스페이스는 묵시록을 다시 쓴다. 우리는 산소 중독으로 죽을 수도 있다… 과거에 정크스페이스의 복잡성은 부속 시설들의 단순함을 통해 보상을 받았다. 주차 건물, 주유소, 유통센터가 그러한 시설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모더니즘의 원초적 목적이었던 기념비적 순수성을 일상적으로 보여주었다. 요즘에는 서정주의를 대량 투여함으로써, 예전에는 디자인이나 취향 혹은 시장과는 전혀 무관했던 이런 부속 시설마저도 정크스페이스의 세계로 편입되었으며, 정크스페이스는 야외로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정크스페이스」중에서
인류는 언제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만약 공간이 인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될까? 정크스페이스가 우리의 몸속으로 침략해 들어올까? 핸드폰의 전파를 통해서? 정크스페이스는 이미 그렇게 하지 않았나? 보톡스 주사는 어떤가? 콜라겐은? 실리콘 이식? 지방흡입술? 음경확대술? 유전자 치료라는 것도 결국은 정크스페이스에 따라 총체적 재건설을 천명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각자가 미니 공사판이 되는 것인가?
---「정크스페이스」중에서
『쇼핑 안내서』에 수록된 글 「정크스페이스」는 렘 콜하스가 직접 기고한 것으로 대단한 역작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그 자체로 포스트모던한 창작물일뿐더러, 역사에 대한 새로운 비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완전히 새로운 미학을 제시한다. […] 혐오감과 희열감의 어울림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고유한 특성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교본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다.
---「미래 도시」중에서
이것은 더 이상 건축 이론이 아니다. 또한 건축가의 관점에서 쓴 소설도 아니다. 차라리 이것은 새로운 공간의 언어로, 자가증식적이며 자기영속화를 위한 문장으로 말한다. 공간 그 자체가 대문자 역사의 새로운 순간에 중심적인 약호로 그리고 지배적인 언어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언어의 토대인 정크스페이스는 공간 자체를 병들게 하고 궁극적으로 멸종하게 만들어버린다.
---「미래 도시」중에서
「정크스페이스」는 역사로의 탈출을 위한 기획이며,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공상과학소설의 장르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즉 부재하는 미래 속에 내재된 한 가지 파괴적인 성향을 선택하여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확대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그것이 그 자체 묵시록적인 것이 되어 우리가 사로잡혀 있는 세계를 폭파시키고 만다.
---「미래 도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