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리의 말처럼 부엌은 음식의 흐름, 물의 흐름, 불의 흐름, 쓰레기의 흐름이 있는 온갖 흐름의 공간이며, 계약 관계, 욕망 관계, 권력 관계가 교차하는 관계의 공간입니다. 그곳은 설렘과 기대, 기쁨과 행복, 충만과 포만과 같은 정서들이 움직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사실 먹는 행위는 우리의 뼈와 살을 다시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입니다. 음식에서 어떻게 철학적 사유가 나오는지 의아히 여기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음식에는 문화, 역사, 철학, 예술, 정치, 경제가 다 녹아들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철학이 과학의 부속물처럼 객관적인 진리를 얘기해야 한다고 여겼던 때도 있지만, 저는 이제 삶이 곧 철학이며, 일상에서 던지는 문제의식이 곧 철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음식은 그 자체가 훌륭한 철학적 소재였고, 부엌은 철학자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핵심은 우리 사는 세상은 진짜를 흉내 낸 가짜들이며, 원본이 된 진짜는 저 멀리에 따로 있다는 겁니다. “진짜이자 원본인 작장면이 아니라 가짜이자 사본인 짜장면을 먹는 미천한 중생들이여.” 플라톤은 아마도 이렇게 조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짜장면은 가짜이며, 진짜를 복제 하다가 생긴 아류이자 짝퉁입니다. 그러나 가짜 작장면인 짜장면의 달짝지근한 맛과 향기에 익숙해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담백한 진짜 작장면은 생소하기만 합니다. 원래의 맛을 잃어버린 짜장면은 작장면이 가지는 그 의미조차도 잃어버린 듯합니다. 이렇게 사본이 진본과 멀어져 더 이상 진본의 복제품으로서의 의미조차도 잃어버릴 때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짜장면과 시뮬라크르」 중에서
이 사회에는 투명한 액체인 소주와 같이 투명인간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투명인간은 이미 이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치부되는 사람들입니다. 보이는 영역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발언권을 획득하고 권리를 누리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영역에 감추어진 장애인, 노인, 아이, 작은 생명들의 절박한 삶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철학을 얘기한 대표적인 인물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감시와 통제에 대해서 처음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미시권력은 아주 내밀한 일상까지 들여다보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 통제의 시선을 내면화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태도나 행동을 수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죄수들의 인권 운동 단체인 감옥정보그룹에서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여 만든 저작이 《감시와 처벌》입니다.
---「소주와 투명인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