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창은 1852년(철종 3) 강화도 사기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고, 자는 봉조(鳳朝), 호는 영재(寧齋)로, 그의 조부는 병인양요 때 자결한 이시원이다. 당대의 대표적인 문장가인 강위(姜瑋), 김택영, 황현 등과 교류했으며 조선시대 마지막 문장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두루 관직을 역임했으며, 1875년에는 충청우도 암행어사가 되어 충청감사 조병식의 비행을 낱낱이 들춰내다가 도리어 모함을 받아 벽동에서 유배 생활을 하기도 했다. 관리 생활을 하면서는 강직한 성품으로 평가받았다. 강화학파의 일원으로 양명학자이기도 하다. 개화를 뿌리치고 철저한 척양척왜주의자로 일관했다. 저서로는 ≪명미당집≫, ≪당의통략≫ 등이 있다.
역자 : 이근호
국민대에서 <조선후기 영조 대 탕평파의 국정운영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국민대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된 관심사는 조선후기 정치사 내지는 정치사상사로, 특히 국정을 주도한 관료층의 동향이나 경세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한 조선시대 문헌인 ≪승정원일기≫나 ≪비변사등록≫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그 역사적 성격 해명에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대중과의 소통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 조선왕조사≫와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 사전≫, 그리고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위한 시론적인 작업으로 ‘우리 역사문화의 갈래를 찾아서’라는 주제 하에 안동문화권, 경주문화권, 지리산문화권 등을 연구한 공동작업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자신을 이기는 데 용감한 것을 ‘굳세다[剛]’라고 하는 것인데 지금은 남을 맹렬히 책망하는 것을 ‘굳세다’고 하고, 이성으로써 욕심을 이기는 것을 ‘굳세다’고 하는데 지금은 힘으로 남을 굴복시키는 것을 ‘굳세다’고 하니 이것은 또한 진실로 ‘굳센 것’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 p.103
대체로 마음은 한 치 가슴 속에 감추어져 있고 말은 깜짝할 사이에 나오는 것으로, 마음은 허물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혹 다 보지 못하고, 말은 실수가 있더라도 또한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글이란 그렇지 못하여 한 번 먹물로 종이에 쓰면 오래도록 멀리 전해져서 이미 가리거나 마멸시키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