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인이라면 어떤 한 인물만 편애하지는 않는 법이다
…… 아무리 비중이 큰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그 인물만 따로 떼어내서 생각하는 일도 피해야 할 것이다. 위대한 시인이라면 어떤 한 인물만 편애하지는 않는 법이다. 우리는 시인의 존재를 통해서 그가 창조한 각각의 인물에 연결되며, 그 인물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하여 처음엔 생소하고 삐걱거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곧 한목소리를 내는 영혼들의 언어를 듣게 된다. 시인의 목소리였던 그 목소리는 곧 우리의 목소리가 된다. 모든 시인들 중에서도 비극 시인은 자신 안에서 또 우리 안에서 싸움을 벌이는 자식들, 그렇지만 결국 시인 자신이자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자식들의 불협화음을 통해서만 목소리를 들려준다. 불협화음이 조화로운 화음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고통스럽지만 감미롭게 우리의 감수성을 건드리고, 이어서 피와 살을 통해서 우리를 이해시키는 식으로 느리게 진행된다. ---pp. 28~29
데모크리토스는 ‘악마의 앞잡이’?
데모크리토스라고 하는 위대한 사상가의 명철함과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물질에 존엄성을 부여한 것이다. 비록 그로 인해 데모크리토스의 명성에 금이 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업적임엔 변함이 없다. 다시 말해서 그는 신체와 영혼의 결합물인 우리를 우리 자신과 화해시킨 것이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그는 분명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소명을 타고 났는지를 확인해줄 것이다. 인간이 원초적 진흙에서 나왔다고 믿었던 만큼, 그는 우리를 열광적으로 흥분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진화의 한 지점에 도달했으며, 앞으로의 진화를 만들어갈 장본인임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데모크리토스는 고대에 가장 핍박받는 학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물질을 사랑하고 찬미하며, 우리의 영혼이 물질로 만들어졌다고 감히 주장했으니, 후대 사람들로부터 ‘악마의 앞잡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pp. 146~147
“의사들 중에는 손재주는 좋으나 지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아무리 열심히 관찰한다고 해도 의사가 관찰한 내용을 이해하려 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스에서 ‘생각하다’, ‘성찰하다’를 의미하는 동사는 매우 다양하다. 힙포크라테스는 대부분의 경우 성찰이라는 말을 정신의 항구적인 태도라는 의미로 사용하며, 이를 지속을 의미하는 시제와 함께 사용한다. 그렇게 때문에 ‘성찰하다’는 ‘항상 마음에 품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힙포크라테스는 그의 내부에서 관찰하게 된 사례들, 즉 눈을 통해서, 청진을 통해서, 촉진(觸診)을 통해서 의미를 지니게 된 자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사고를 마음에 품고 있었고, 이를 자양분 삼아 사고를 키워나갔다. ……
…… 성찰을 통해서 선택을 하고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의사들, 다시 말해서 크니도스 학파에 속하는 의사들을 그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힙포크라테스는 “의사들 중에는 손재주는 좋으나 지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크니도스 학파가 보기 좋게 손가락질 당하는 대목이다. ---pp. 328~329
“전쟁은 폭력을 가르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도저히 진정시킬 수 없는 잔혹성이라는 면모를 드러낸 전쟁이기도 했다. 이전의 그리스인들끼리의 싸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었다.
도처에서 살육에는 살육으로 응수했다. 인권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없이 광적으로 상대방을 말살했으며, 협약 등도 거기에 반대하거나 이를 무시할 때에만 언급되었다. 전쟁의 규칙 따위는 완전히 나몰라라였다. 공격을 받은 도시에서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무차별적으로 처형되었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노예 시장에서 팔려나갔다. …… 투퀴디데스는 이에 대해 “전쟁은 폭력을 가르치고,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으로 하여금 난폭한 행동을 자행하게 만든다”고 논평했다. ---pp. 407~408
“나는 지금 당신들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판관들과의 대화였다. 이 대화야말로 아테나이 민중들과 나누는 결정적인 대화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진의를 알리고자 시도했으며, 자신의 임무를 설명했다. …… 다시 말해서 자신의 목숨을 몇 년 더 연장해주는 차원을 떠나 사회의 병폐 중에서도 최악의 병폐인 불의로부터 시민들의 영혼을 구제하고자 했다. 피고 소크라테스가 주도한 논쟁의 최종 목표는 아테나이의 구원이었던 것이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을 언도한다면, 그 결정은 내가 아닌 당신들에게 부당하게 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pp. 478~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