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06년 PISA 평가에서 학습효율화지수가 31개국 중 24위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장시간 공부하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거죠. 학습효율이 낮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냐’고 말하곤 합니다. 개인 수준에서는 그런 진단이 맞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국가 수준에서는 그런 설명이 말이 안 되죠. 한국 학생들이 유전자에 문제가 있어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집중력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구조적인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공부방법에도 문제가 있고, 공교육에도 문제가 있으며, 사교육에도 문제가 있어요. --- p.21
복습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일종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복습은 ‘선별’이 되어야 가능하지요. 자기진단을 통한 선별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제대로 복습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그래야 성취도 관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선별에 필요한 시간을 결정적으로 절약하는 방법은 ‘학습과 동시에 선별하기’, 즉 진도를 나가는 과정과 선별 과정을 병행하는 겁니다. 이것은 특히 학습 범위가 넓을 때(즉 대학입시 등을 준비할 때), 그리고 취약 과목을 공부할 때 엄청난 효과를 발휘합니다. ‘복습 기술’의 핵심은 ‘자기진단 → 선별 → 복습 → 성취도 관리’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 p.73
저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청소년기에 ‘부모가 부모가 아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봐요. 한마디로 심리적으로 부모를 잃어버리는 셈이죠. 아버지는 뭐냐, ‘물주’입니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3대 조건이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아빠가 괜히 아이의 교육이나 장래에 신경 쓰고 관여하면 안 되고, ‘돈이나 벌어 와야’ 하는 존재, 즉 물주라는 거죠. 그럼 어머니는 뭐냐, ‘매니저’입니다. 마치 연예인 매니저가 스케줄을 빡빡하게 세워서 연예인을 뺑뺑 돌리는 것과 같은 거죠. 짧으면 중학교 시절부터 5~6년, 길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10년 넘게 매니저를 하는 거죠. --- p.92
전 세계에서 가장 재미없는 공부를,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동안, ‘혼날까봐’ 하는 아이들. 그러다보니 인성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기묘한 양면성이 나타나요. 한편으로는 무기력증이 늘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격성이 커집니다. 요새 학교폭력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사실 ‘전 세계에서 가장 재미없는 공부를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수업시간에는 흐느적대며 잠에 빠지고 쉬는 시간에는 스트레스를 공격성으로 표출하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 p.95
아이를 소신껏 키우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게 ‘옆집 엄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요. 그런데 주의할 점은, 이 옆집 엄마들이 하는 얘기들 중에서 제대로 된 정보는 많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부모들은 엄청난 분량의 교육 정보들을 접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 교육정보들 가운데 대부분은 사교육업체에서 유포한 것들이에요. 사교육업체에서 틀어놓은 대형 스피커에서 온갖 교육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거죠. 그런데 동네 곳곳에, 작지만 고성능을 발휘하는 스피커들이 있어요. 이들은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교육정보들을 나름대로 창의적으로 재조합해서 유표합니다. 동네 곳곳에 있는 소형 고성능 스피커, 이것이 바로 ‘옆집 엄마’죠.--- p.110
‘학력’ 혹은 ‘학업성취도’의 위상과 가치는 근본부터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학업성취도 평가의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 수능, SAT, PISA 평가 등이지요. 모두들 정답이 뻔히 정해져 있는 객관식 평가입니다. PISA 평가나 일제고사에는 서술형 문항이 섞여 있긴 하지만, 모두 모범답안이 정확히 정해져 있는 문항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선다형 문제로 변형 가능한 것들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시험이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일면적인 ‘테스트’가 아니라 학업의 ‘목적’으로 취급된다는 겁니다. 주입식 수업과 객관식 문제풀이에 골몰한 나머지, 한국의 학생들은 심지어 명문대생들조차 ‘말을 잘 못 하고 글을 잘 못 쓰며 정답 찾기에 만 골몰한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지요. --- p.217
어떤 학생이 고등학교 2학년쯤 되었다고 가정합시다. 이 학생과 실력이 비슷한 짝꿍이 옆에 앉아 있는데, 이 짝꿍이 공부하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럼 이 학생은 짝꿍을 도와줘야 할까요, 아니면 외면해야 할까요? 갈등에 빠지죠. 이게 바로 상대평가의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윈-윈(win-win), 즉 ‘너도 잘 되고 나도 잘 되자’는 게 불가능한 거예요. 아이들을 도가니에 가둬놓고 서로서로 제치게 만들어놓았거든요. 가장 잔혹한 경우는 여고의 이과반인데요, 여고의 경우 이과반이 한 반밖에 없는 학교가 많거든요. 30명이라고 쳐보세요. 내신 1등급은 석차 4퍼센트까지 주거든요. 그러면 1.2명, 반올림해서 딱 1명 나와요. 매 학기마다 과목별로 딱 1명씩 1등급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정부에서 내신 반영률을 높인다고 발표할 때마다 교실이 아주 냉랭해지고 심지어 라이벌의 노트를 몰래 찢어서 버리는 식의 일이 벌어졌던 겁니다. --- p.234
제가 제안하는 논술고사는 현행 논술고사와 달리 과목별 시험이고, 그리고 대학별로 출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공인시험의 형태입니다. 국가고시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예를 들어 대교협 등에서 주관하는 공인시험의 형태도 검토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국의 SAT도 ‘칼리지 보드(College Board)’라는 대학들의 협의체에서 주관하는 시험이거든요. 일부 논술 출제와 관련된 논란은 출제가 합리적으로 관리 가능한가의 문제이지, 시험을 어디서 주관하느냐의 문제는 아니에요. 수능의 경우도 출제위원들은 대학 교수이지만 검토위원으로 고교 교사들이 참여합니다. 그런 것처럼 논술형 대학입시에 검토위원으로 고등학교 교사들이 참여하여 출제 과정이 합리적으로 관리되기만 한다면, 이게 국가고시의 형태이든 대교협에서 주관하는 공인시험의 형태이든 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 p.283
현존하는 스마트교육시스템 가운데 가장 발달된 것은 이스라엘의 ‘Time to Know’이에요. 그런데 이 시스템은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교사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통해 제작되었고, 교사 개개인의 의도에 따라 수없이 변형·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즉 설계 단계에서부터 교사들이 중심이 되었고, 교사들이 콘텐츠와 도구의 활용 방법을 폭넓게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겁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진짜 ‘스마트’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위에서 뭔가를 만들어 이걸 일제히 활용하라고 아래에 내려 보내는 건 하나도 스마트하지 않은 거죠. 교육 당국자들이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을 바꿔야 해요. ‘토목공사’ 모델을 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생태계 관리’ 모델로 전환해야 해요. 중앙에서 뭔가를 만들어서 현장에서 구현하도록 고민하지 말고, 현장에서 아이들과 호흡하고 있는 교사들이 직접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만들 수 있게 해줘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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