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1860.1.29~1904.7.15)
체호프는 러시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고골, 고리키 그리고 레흐몬토프 등과 함께 러시아문학의 황금기를 수놓았던 작가였다. 러시아 남부의 항도 타간로크에서 출생하였다. 잡화상의 아들로, 할아버지가 원래 농노 출신이었다. 그가 지주에게 돈을 주고 해방되었기 때문에, 체호프는 조금 더 나은 신분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16세 때 아버지가 파산하는 바람에 중학교 교육을 어렵게 마쳤다. 체호프는 1879년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한다. 1884년 의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콜레라가 유행하던 시기 1년간의 의료 활동과 병원생활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인 의사생활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학위를 받기 5년 전인 19살 때가 되던 해부터 글을 쓰면서 문학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단편소설을 오락잡지에 기고했다. 작품의 질을 신경 쓰지 않고 잡지사의 무리한 요구를 따라 다작했다. 그럼에도 1880년대 전반 수년 동안에 《관리의 죽음》(1883) 《카멜레온》(1884) 《하사관 프리시베예프》(85) 《슬픔》(1885) 등과 같이 풍자와 유머와 애수가 어우러진 훌륭한 단편을 남긴다. 또한 희곡 《이바노프 Ivanov》(1887 초연), 야심적인 중편소설 《대초원(大草原)》(1888)을 쓰면서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즈음 객관주의 문학론을 주장했다. 즉 작가는 재판관이 아니라 객관적인 증인이 되어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르포르타주에도 관심을 두었다. 폐결핵 증세가 나빠졌던 1890년에도 혈혈단신으로 극동의 사할린섬으로 향한다. 그곳에 죄수들의 유형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제정 러시아 감옥 제도의 실태를 알아보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사할린섬 Ostrov Sakhalin》(1895)을 썼고 발표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다. 하지만 사할린 여행 이후 건강이 더욱 나빠졌다. 그는 1892년에 모스크바에서 50마일쯤 떨어진 멜리호보라는 마을에 거주하면서 그동안 준비한 구상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원숙기였다. 1899년 결핵 요양 목적으로 크림반도의 얄타 교외로 옮겨갈 때까지 많은 작품을 쓴다. 예를 들어 소설 《결투 Duel’》(1892) 《흑의의 사제 Chorny monakh》(1894) 《귀여운 여인 Dushechka》(1899) 《개를 데리고 있는 부인 Dama s sobachkoy》(1899) 《골짜기에서 V ovrage》(1899) 등과 희곡 《갈매기 Chaika》(1896 발표, 1898 초연) 《바냐 아저씨 Dyadya Vanya》(1897 발표, 1899 초연) 등이 있다. 현재 안톤 체호프는 프랑스의 모파상과 함께 현대 단편소설의 전형을 확립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희곡 분야에서도 선구적인 근대 연극을 무대화하는 작업에 성공하면서, 러시아 문화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