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파리에서 무수한 화가들을 떠올리고 빈에서 무수한 음악가들을 떠올리는 것은 상투적인 만큼이나 정당하다. 빈의 영혼은 그 무수한 음악가들의 영혼이고, 파리의 영혼은 그 무수한 화가들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 영혼은 그 도시들의 미술관이나 극장 둘레만 배회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광장에, 지하철에, 아파트에, 카페에, 호텔 객실에, 택시 좌석에, 기차역에, 사람들의 발걸음에 깃들여 있다. 그 영혼은 그 도시를 찾은 이방인의 영혼과 교섭한다. 어떤 도시를 방문한다는 것은 그 도시의 영혼과, 그 도시 사람들의 영혼과 교감한다는 뜻일 테다. ---‘들어가기-도시의 영혼들’ 중에서
그 도시의 거리들, 광장들, 골목들, 묘지들, 시장들(파리엔 그때까지도 재래시장이 여럿 남아 있었다. 아마 지금도 그러리라중에서, 카페들이 눈에 선하다. 내가 파리에 산 기간은 5년이 채 안 되지만, 그 두세 배를 산 사람이라 해서 그 도시 구석구석을 나보다 더 잘 알까 싶다. 택시 기사들을 빼곤 말이다. 내가 총명해서가 아니라, 거기서 세월을 허송했기 때문이다. ---‘파리·中-허기진 산책자의 세월’중에서
나는 암스테르담의 모든 것을 내 눈에 담고 싶었다. 그때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정이 든 탓에 아름답다 여기는 편애나 낭만적 상상력에 오염된 선입견을 배제하고 무심한 눈으로 살필 때, 암스테르담은 내가 가본 도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도시 두셋 가운데 든다. 나는 파리를 내가 가본 도시 가운데 가장 수려하다 여기지만, 암스테르담에서 몇 달만 살았더라도 파리 대신 암스테르담을 꼽을지 모른다. ---‘암스테르담-렘브란트와 데카르트’중에서
브뤼셀은 플랑드르 지역 안에 있지만, 네덜란드어(플라망어중에서와 프랑스어를 함께 쓴다. 방금 예로 든 표지판들만이 아니라, 이 도시의 모든 공적 텍스트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두 가지로 표기된다. 두 언어 가운데 하나로 표기된다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두 언어로 병기된다는 말이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이 도시에서 대등하다는 뜻이다. 브뤼셀은 언어사회학자들이 바일링구얼리즘(2개 언어 병용중에서이라 부르는 현상을 실현하고 있는 드문 도시다. ---‘브뤼셀-언어의 전장(戰場중에서’중에서
부다페스트 거리를 걸을 때 특히 이방인 의식이 드는 것은 그 이정표들이 주는 아득함 때문이다. 그 거리의 이정표에 적혀 있는 말들은 딴 유럽어들과 너무 다르다. 16세기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헝가리 역사는 오스트리아 역사와 적어도 그 상층부에서는 한 몸을 이룰 때가 많았지만, 부다페스트의 도로표지판에서 이방인이 발견할 수 있는 독일어의 흔적은 도무지 없었다.
---「부다페스트-다뉴브강의 잔물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