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시우스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였어요. 저의 아버지와 친구였죠.” 롤프가 말했다. 롤프가 그 말을 하던 순간이 나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우슈비츠에 약사가 있었다고?’ 지난 몇 년 동안 때로는 단독 저자로 때로는 제럴드와 공동 저자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면서 언젠가는 카페시우스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열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카페시우스가 독일 최대의 제약 회사와 더불어 아우슈비츠에서 저지른 만행이 상대적으로 더 악명 높은 다른 나치들에게 묻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열망에 기름을 부었다. 수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는 동안 비틀린 의학과 탐욕에 얽힌 엄청난 이야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31년 전에 롤프 멩겔레가 했던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여기까지 왔다.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역겹고 때로는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에 관한 이야기다.
--- p.15, 「저자 서문」 중에서
카페시우스 같은 약사가 아우슈비츠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이해하려면 우선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어떻게 생체 실험과 강제 노역과 집단 말살을 통한 이익 창출 조직이 되었는지, 즉 나치와 독일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던 이게파르벤 사이에서 어떻게 치명적인 군사적-산업적-정치적 협력 관계가 태동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이유를 장기전에 필요한 천연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 굳은 신념은 이미 집권 전에 독일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핵심 산업 기반은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 영국군이 해상을 봉쇄해 고무, 원유, 철강, 질산염의 보급로를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화약부터 원료에 이르기까지 독일은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리며 전장에서도 휘청거렸다. 궁극적으로 독일의 전의를 꺾은 것은 민간에 광범위하게 퍼진 기아 사태와 원자재 부족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군인으로서 훈장까지 받았던 히틀러는 독일이 군사물자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파르벤의 기술력은 히틀러에게 독일이 원유와 고무와 질산염을 수입하기 위해 더 이상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나라를 재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제공했다.
--- p.26~27, 「Chapter 2. 나치, 파르벤과 결탁하다」 중에서
파르벤 임원진이 수감자들에 대한 나치의 부당한 처우에 불만을 제기한 건 인도주의적 관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건장한 독일인 노동자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유대인 수감자는 세 명이나 필요하다는 사실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이에 파르벤 내부에서는 지지부진한 공사 진행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놓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파르벤 임원진은 만약 합성고무 및 석유 공장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군대에 원활하게 물자를 조달하지 못할 경우에 나치가 파르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을 두려워했다. 불가피한 전시 사업에 쏟아질 히틀러와 힘러의 분노를 기꺼이 감내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동부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일 년째 계속되던 1942년 7월, 파르벤 이사진은 기업 역사상 도덕적 파산으로 길이길이 남을 만한 제안서를 승인하고야 말았다. 이게-아우슈비츠의 노동력 문제를 타개할 최선의 해결책으로, 2,000만 달러를 들여 자체 강제수용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짓고 있던 공장 부지와 인접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동쪽이 새로 들어설 수용소 부지로 선정됐다. 제3제국의 노동부 장관이었던 에르네스트 “프리츠” 자우켈은 파르벤의 이 같은 신사업 계획을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도까지 [수감자를] 착취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며 바로 승인했다.
--- p.38, 「Chapter 3. 이게-아우슈비츠」 중에서
카페시우스가 젊은 시절 파르벤/바이엘에서 근무했던 때에 루마니아 전역을 누비며 스승이나 친구들의 편견을 수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카페시우스 같은 독일인들이 자라고 교육받고 살아가고 일했던 문화적·역사적 맥락을 보면 유대인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이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카페시우스는 훗날 이렇게 주장했다. “저는 결코 유대인에게 적대적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진심이야 알 수 없지만 카페시우스에게는 사적인 감정보다 일이 우선이었다. 파르벤 입사 초기에 카페시우스에게는 유대인 상사 두 명이 있었지만 그들은 1939년 뉘른베르크법(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 법. 독일 내 유대인의 독일 국적과 공무담임권을 박탈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_옮긴이) 때문에 회사를 떠나야 했다. 카페시우스가 파르벤의 영업 사원으로서 응대했던 의사, 약사, 임상의, 공장주 가운데 상당수가 유대인이었다. 그중에 누구도 카페시우스에게서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 p.51~52, 「Chapter 4. 카페시우스, 아우슈비츠에 입성하다」 중에서
카페시우스는 잠깐 폴을 쳐다보다가 말을 걸었다. “자네 혹시 약사 아닌가?”
“네, 맞아요. 약사입니다.” 폴이 대답했다.
“혹시 오라데아에서 약국을 운영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카페시우스는 폴에게 오른쪽으로 가라고 손짓했다. 당시만 해도 폴은 카페시우스의 그 찰나의 손짓으로 자신이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카페시우스도 물론 처음에는 승강장에 서서 사람들의 생과 사를 결정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한 인간의 생과 사를 결정하는 일은 갈수록 묘한 쾌감을 선사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신입 수감자는 대부분 도착 즉시 죽을 운명이었다. 그러니 가끔씩일지라도 신 놀음을 할 수 있는, 누군가의 목숨을 구제할 수 있는 능력은 그야말로 실질적인 힘이었다. 비록 수감자 입장에선 당장 가스실행만 피했을 뿐 끔찍하기는 매한가지인 파리 목숨 신세였지만 말이다.
--- p.90~91, 「Chapter 7. 악마를 보았다」 중에서
하루는 프로코프가 카페시우스와 함께 조제실 다락방에 있을 때였다. “카페시우스는 트렁크 쪽으로 걸어가곤 했습니다. 그 안에는 치아와 턱뼈로 가득했는데 잇몸이며 뼈가 아직도 붙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모든 것이 부패하면서 지독한 악취가 났습니다. 섬뜩한 광경이었습니다.”
프로코프는 카페시우스에게 이 끔찍한 수집품을 치과에 보관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카페시우스느 프로코프의 말을 무시한 채 트렁크 안으로 몸을 숙였다. “그는 맨손으로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내용물을 헤집기 시작했죠. 그러더니 틀니 하나를 꺼내 그 가치를 가늠하는 겁니다. 저는 그 자리를 도망치다시피 해서 빠져나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코프가 치아로 가득한 트렁크를 점검할 때마다 “내용물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이 금니 절도 행각에 카페시우스의 친구였던 아우슈비츠의 치과 의사 샤츠 박사와 프랑크 박사도 가담했다. 카페시우스는 이렇게 약탈한 금이 담긴 조그만 상자 수십 개를 빈에 사는 여동생에게 보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지시 사항은 간단명료했다. ‘전후 혼란기에 금이 유일한 통용 화폐가 될 경우를 대비해 전부 안전한 장소에 숨겨 둘 것.’
--- p.138, 「Chapter 11. 금니」 중에서
요아힘 퀴글러 검사는 법정에서 카페시우스를 향한 이 증언들이 왜 유독 강력하게 유죄를 입증해 주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카페시우스를 둘러싼 이 상황에서 정말 끔찍한 부분은 희생자들이 그저 이름 모를 불특정 집단이 아니라 그전부터 사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알고 지낸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카페시우스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아우슈비츠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카페시우스를 믿었던 겁니다. 도대체 이 카페시우스 박사는 어떤 인간이기에 손짓 한 번으로 왼쪽에 보내 버린 사람들이 한두 시간 뒤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오랜 친구와 직장 동료를,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을 친근한 미소와 다정한 말로 안심시켜 놓고서 아무렇지 않게 죽음의 길로 보내 버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어느 정도의 정서적 잔인성과 악마 같은 가학성과 무자비한 냉소주의를 지녀야 이 괴물처럼 행동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SS 최상급 돌격 지도자가 그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의 일부인 여기 극소수의 사람들을 살리는 데 필요했던 건 고작 말 한마디, 손짓 한 번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 p.272~273, 「Chapter 22. “이건 웃을 일이 아닙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