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때때로 달콤한 맛을 찾는다.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 여기저기 상처 난 마음에 작은 위로가 필요할 때, 그리고 마치 이 넓은 세상에 나 혼자인 것같이 외롭고 슬플 때.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는 건 그만큼 그리워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문득 어떤 음식을 먹다가 잊고 있던 과거의 그때의 기억으로 돌아갈 때가 있다.
음식이란 매개체로 갑작스럽게 떠오른 그 기억이 참으로 반갑다.
그립고 보고 싶지만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간을 달콤한 케이크 한 입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다.
나이들수록 유독 달짝지근한 맛을 찾는 건 지나간 달콤한 시간을 기억하고 싶은 건 아닐까.
--- p.20, 「Chapter 1. 바다 건너의 일상 - 맛있는 빵집을 찾는 법」 중에서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종종 장을 보러 가는 마트의 행사 매대에서 번쩍이는 네온색 텐트를 10유로에 할인 판매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몇 번 쓰지도 못할 싸구려임이 분명했지만 한참 그 앞을 서성이다 결국 사고 말았다. 그런데 난 아직 한 번도 텐트를 쳐본 적이 없는 캠핑 문외한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거실 구석에 대충 물건을 치운 다음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벌써 이십 년도 넘게 훌쩍 지났지만 다시금 나에게 (조금 부담스러운 색의) 아늑한 비밀 공간이 생긴 것이다! 얼마 후 아슬아슬하게 텐트를 고정하고 있던 폴대가 결국 부러지는 바람에 버리고 말았지만.
마냥 신나고 즐겁기만 했던 어린아이였을 때 그러했듯 다 큰 어른이 돼버린 지금도 우린 계속해서 자기만의 동굴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몸집이 한참이나 작았던 그때는 옷장 속이나 책상 아래, 컴컴한 창고 구석 같은 좁은 곳에 숨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엔 내 마음 하나 편안히 놓을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가끔 그리 쾌적하다고 할 순 없지만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거나 카페 구석자리에 홀로 커피 한 잔을 두고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 p.44~45, 「Chapter 1. 바다 건너의 일상 - 아무도 우릴 발견 못 해!」 중에서
우리는 모두 살아가면서 무게의 정도는 다르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선택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아무리 머리를 붙잡고 고민해본들 어차피 완벽한 선택이란 애초에 없다. 그렇게 혼자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앉아 있을 시간에 뭔가 작은 것 하나라도 일단 저질러보는 게,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다. 막상 하고 보면 두렵고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것이 실제로 그 정도까지 힘든 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지금도 만약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고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밤마다 침대에 누워 어떻게 할지 고민만 계속하고 있다면, 일단 정말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지금 당장!
--- p.88~89, 「Chapter 1. 바다 건너의 일상 - 안달하지 않아도 어른이 돼」 중에서
마지막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선 우리는 또 한 번 공항 가는 버스를 찾지 못해 헤매었다.
분명 인터넷에는 중앙광장에 있는 주차장에서 타면 된다고 적혀 있었는데, 수많은 버스들 중 하필 공항 가는 버스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때였다. 보다 못해 버스에서 내려온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고, 곧이어 버스기사 아저씨도 따라 내렸다. 그리고 옆에서 다른 버스를 기다리던 아주머니 두 명도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을 번쩍 들더니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우리를 위해 벌어진 작은 주민회의에서 사람들은 참 다정하게도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는 함께 방법을 찾기 위해 이마를 맞댔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여행할 돈이 많지 않아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단출한 여행이었더라도, 이곳 사람들의 진심 가득한 친절 덕분에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웠다.
--- p.145, 「Chapter 2. 그래도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 - 만원으로 떠난 프랑스 남부 여행」 중에서
가장 아끼는 찻잔에 달콤한 꿀이 들어간 차를 담아 후후 불며 마실 때.
오랜만에 볼로네즈 파스타를 끓이는 맛있는 냄새가 온 집 안에 가득 찰 때.
마트에 갔다 노란 튤립 다발을 2유로 주고 사 올 때.
그리고 간밤에 내린 눈에 신나서 향이 좋은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는 새하얀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을 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요즘 나에게 행복은 이렇게 사사로운 것들이다.
굳이 행복하다고 표현하지 않아도 참 편하다, 따뜻하다, 맛있다 하고 생각이 드는 모든 순간들.
특히 요즈음 내가 애정하는 건 간만에 제이미가 넉넉한 냄비에 볼로네즈소스를 끓일 때 집 안 가득 채워지는 달큼한 토마토소스 향이다.
--- p.180~182, 「Chapter 3.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하여 - 언제 마음이 따듯해지나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