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철학이라는 숲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철학 마을’로 갑니다. 그곳까지 가는 길에 우리는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 심리학이라는 오솔길을 거치게 되죠. 오솔길들은 복잡하게 교차하고 얽혀 있는 미로 같은 길이지만, 철학사 지도가 있으면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어요. 그리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있어서 행복하게 여행을 할 수 있어요.
거기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목도 있고, 칸트, 헤겔과 같은 중간 크기의 나무도 있고, 100년도 안 된 작은 나무지만 수형이 정말로 멋있는 라캉, 푸코와 같은 나무도 있습니다. ‘철학 마을’로 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나무들 가까이 가서 만져도 보고, 그늘 아래서 시간을 보내 보세요. 책 맨 뒤에 유튜브 영상으로 연결되는 QR 코드를 찍어 영상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 p.499, 「저자의 말」 중에서
어떤 철학자들은 철학이 ‘세계와 인간에 관한 학문’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공허한 주장이에요. 세상에 세계와 인간에 관한 학문이 아닌 것이 있나요? 사회학, 물리학, 경제학, 심리학 등 모두 세계와 인간에 관한 학문이죠. 이런 방식으로는 철학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요.
이럴 때 좀 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을 살펴보는 거예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떤 질문을 던졌으며, 그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내놓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죠. 저는 이런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철학자들이 시대별로, 분과별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질문을 던졌는지 알면, 철학이 뭔지 느낄 수 있고 서양철학사의 전체 숲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 p.5
철학사를 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철학사 지도를 가지게 된다는 말이에요. 경험론은 로크로부터 시작해 흄으로 이어지고, 합리론은 데카르트에서 라이프니츠로 이어지고, 이 둘은 칸트로 이어지고, 칸트는 다시 헤겔로 이어지죠. “너 헤겔의 정신현상학 읽어봤니?” 철학사 지도를 가지고 있으면 이런 질문에 열등감이나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요. “아, 헤겔의 정신현상학?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관념론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시간 날 때 읽어볼게.” 그래도 자꾸 물어보려고 하면, “내가 지금 좀 바빠서”라고 하면서 자리를 피하면 돼요.
전국 맛집을 돌다 보면 입에 맞는 음식이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그게 밀면이라면 부산에 가서 골목골목 다니며 먹어봐요. 그러면 밀면 전문가가 되겠죠. 철학도 마찬가지예요. 철학사 지도를 보다가 입에 맞는 철학자가 있다면, 예컨대 칸트가 입맛에 맞다면 그의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돼요.
--- p. 7
제가 요즘 게임 배틀그라운드에 빠져 있어요. 배그를 하는 분들은 에란겔의 지도를 다 외우고 있더라고요. 로족, 히말라야, 강남은 물론, 거기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 심지어 차량 위치까지 알아요. 한 분야의 도사가 되면 지형은 물론이고 나무 하나하나까지 다 알게 되는 모양입니다.
철학도 마찬가지예요. 『5분 뚝딱 철학』 책으로 놓고 보면 한 꼭지, 한 꼭지가 나무예요. 반면 시대별, 분과별로 철학의 전체 흐름을 짚어주는 게 바로 숲이자 철학사 지도죠. 숲을 보면 지금까지 살펴본 나무들을 전체 맥락 속에서 다시 이해할 수 있어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무는 나무대로, 숲은 숲대로 번갈아 가며 보는 것이에요.
배그에서 에란겔의 전체 지도를 모르면 길을 잃고, 건물 하나하나를 모르면 근접전에서 적에게 당하듯, 철학사를 모르면 길을 잃고 개별 이론들을 모르면 디테일을 놓쳐요.
--- p.8
『5분 뚝딱 철학』은 시대에 따라, 철학 분과에 따라, 난이도에 따라 분류되어 있어요. 철학은 노란색, 과학철학은 파란색, 심리학은 빨간색으로 정리했고, 난이도는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나눴어요. 1단계는 쉬운 내용, 2단계는 보통, 3단계는 다소 어려운 내용이에요. 또 시대에 따라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나누고, 존재론, 인식론 등의 철학 분과도 정리해두었어요. 영상이든 책이든 취향에 따라 골라보면 돼요.
---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