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관계, 윤리적 판단과 행동, 심리 세계와 정서 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략) 여기서 문화, 예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특히 문학은 인간에게 ‘이후의 삶(life after)’을 유지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학은 질병으로 인해 상처와 고통을 받은 인간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것과 동반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후의 삶’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진실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강조해서 담고 있는 개념이 바로 ‘의료문학’이다.
--- p.17
우리는 이 시점에서 환자가 의사를 찾아가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일차적인 이유는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환자는 위로받기 위해 의사를 찾아간다. 환자는 의사의 따뜻한 손길, 위로가 되는 말 한마디, 아픈 몸과 마음을 보살피고 걱정하는 눈길이 그리워 찾아가는 것이다. 만약 환자의 이런 기대를 인간 의사가 저버린다면 미래의 환자들은 AI 의사에게로 발길을 돌릴지도 모른다. 의학교육에서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69
의료인문학은 교육을 전제로 범주화된 분야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의료문학 역시 교육적 측면에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의사학과 의철학이 분과학문으로 자리잡은 것에 비해 ‘의료문학’은 정체성이나 현실적인 수요 면에서 자리잡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문학을 통해 의사의 공감 능력을 키우고 의사소통 능력을 신장하며, 나아가 문학을 통한 의료윤리 교육이나, 질환 내러티브를 활용한 교육으로 확장되기 위해 의료문학을 정립하는 작업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문학이 의료인문학의 정식 교과과정으로 자리 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커리큘럼을 구체화해야 하기에 의료문학의 정전을 마련하는 일은 그 선행 단계로서의 의미가 있다.
--- p.105~06
여러 질병 가운데 정신질환만큼 신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없으려니와,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존재는 역시 화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병의 자리가 신경쇠약으로 대체되고, 그 환자군 역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서술 대상에서 서술 주체로 옮겨오는 과정이 근대 초기 문학사의 흐름과도 맥락을 공유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화병 역시 신경쇠약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신경쇠약이라는 술어로 ‘재편’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주된 흐름이다.
(143~44
드라마 [동의보감]과 [허준]이 인기를 끌면서 한의학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고, 사회적으로 우리 전통 의료에 대한 재평가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 [골든타임]을 통해 중증외상센터와 응급진료 체계에 대한 이슈가 증폭되기도 하였다. 드라마 [굿닥터]를 보던 시청자들은 소아외과와 같은 비인기 학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소아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하얀거탑], [외과의사 봉달희], [낭만닥터 김사부]와 같은 드라마들은 의사라는 직업의 지향과 가치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의사가 고민해야 할 사회적 담론의 무게가 어떠한가를 의료인과 대중이 함께 고민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 p.188~89
지금 세계에서 통용되는 문학치료란 문학을 ‘촉매’로 내담자와 문학치료사가 대화를 나누며, 그 상호작용으로 치료 목표에 도달하는 상담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의 힘을 적극적으로 적용한 국내의 사례가 있다. 한국문학치료학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학치료학은 ‘서사(敍事; story-in-depth)’를 기반으로 사람과 문학의 관계를 논구하고, 문학의 작품서사로 사람의 자기서사를 보충·강화·통합 한다는 논리로 치료1의 원리를 설명한다. 장르론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개념인 ‘서사’이론을 구축하여 문학과 사람의 소통관계를 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고, 그에 따라 ‘자기서사’를 분석하는 기법을 발전시킨 국내에서 창안된 인문적 실용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문학을 상담과 치료의 촉매제로 활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을 문학적으로 이해하고 인간의 서사적 변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문학의 역할’을 더욱 깊이 반영한 테라피라고 할 수 있다.
--- p.193~94
기술철학이나 포트스휴머니즘 담론의 논의 이전에 사실 이미 많은 소설 텍스트들이 과학기술에 회의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것은 서사적 갈등을 통해 플롯을 전개해야 하는 소설 장르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지한 문학적 SF 텍스트라면 기본적으로 트랜스/포스트휴먼의 고통과 결함 없는 완벽한 신체와 정신, 완전한 사회를 유토피아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탁월한 SF 텍스트가 이념적 태도를 직접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 향상과 과학기술에 대한 회의적 태도가 과학기술의 일방적인 배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인간의 취약성은 숙명이지만 그것에 일방적으로 굴복하거나 체념하는 것 역시 또 다른 허무주의를 낳을 수 있다.
--- p.309
이른바 ‘계동마님’으로 정착한 서울 토착 양반가문의 주거지였던 ‘계동(桂洞)’이라는 지명의 연원이 되는 제생원(濟生院)의 터에는 현재 3호선 안국역3번 출구 현대사옥 화단 내에 “조선초 서민 의료기관터. 극빈자의 치료와 미아의 보호를 맡았으나 세조 때 혜민서에 병합되었다. 조선조 말엽 이 터에 계동궁이 들어섰다.”라는 표석 문구와, “일반 백성의 질병 치료와 구호사업, 의녀 양성, 향약재(鄕藥材) 수납, 향약에 관한 의학서 편찬 등의 의료사업을 수행한 기관”라는 표석 설명을 담아 설치되어 있다. 한편 이곳에서 멀지 않은 재동(齋洞)6에 갑신정변 때 참살당한 홍영식의 집을 개조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으로 설립된 ‘제중원(濟衆院)’7 터가 있으니 지명을 기반으로 하는 의료의 역사가 우연히 이어져 가기도 하였다.
--- p.3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