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이미 제 안에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글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보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 놓을 수 있게 멍석을 깔아 주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소홀히 하고 쓰라고 밀어붙이거나 방법으로만 다가가면 아이는 재미없고, 지켜보는 어른은 힘이 듭니다.
이 책에 실린 보기글을 함께 읽어 보세요. 아이들은 비슷한 경험이 떠올라 이야기들을 쏟아 냅니다. 그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지금 말한 그걸 써 봐” 하면 어렵지 않게 글을 씁니다. 한 편 한 편 쓰다 보면 글쓰기가 만만해지고 ‘글쓰기 쉽네, 별거 아니네’ 하는 자신감도 생겨 신나게 쓸 것입니다.
--- p.4~5
누구나 다 만만하고, 할 말이 있고, 하하 호호 즐거워할 이야기들부터 풀어놓습니다. 그게 바로 ‘코딱지나 방귀, 똥’ 같은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이런 걸 글로 써도 되나 싶어 하지요. 그런데 친구들이 거침없이 쓴 글들을 읽으며 이야기 나누다 보면 모두 마음의 빗장이 풀리면서 얼굴이 환해지고 이야기들을 쏟아 냅니다. 글쓰기 시간은 내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아이들 세계에 얼마나 다가갈 수 있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글쓰기의 부담을 떨쳐 버리고 나면 누구나 글쓰기가 가뿐해집니다.
--- p.15
코딱지 이정헌 1학년
“엄마, 코에서 나오는 게 딱지야?”
“어.”
“코에서 나오는 게 딱지냐니까?”
“그렇다니깐, 그게 코딱지잖아.”
정말 코에서 진짜 딱지가 나왔으면 좋겠다.
(6. 1. 금요일. 무지 더웠음. 땀이 뻘뻘 났다.)
▶ 하하하, 코딱지도 딱지 맞지요? 우리는 도저히 생각해 내지 못할 코에서 나오는 딱지입니다.
--- p.16
아이들이 즐겁게 자기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보기글로 몸과 마음을 풀고 지금까지 얘기한 것들이 다 좋은 글감이라고 말해 줍니다. 이렇게 시시한 어떤 이야기도 다 쓸 수 있다고 말하고 글을 씁니다. 첫날부터 쓸 얘기가 넘쳐 나고 어렵지 않게 글을 쓰고 나면 아이들은 무척 뿌듯해합니다. 한 편 뚝딱 쓰고 칭찬받고 나면, 또 쓸 게 있다고 더 쓰기도 합니다.
--- p.32
“쓸 게 없어”라고 자주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이야기에 더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 보세요. 생활 속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글로 쓰다 보면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 친구나 식구와 나누는 이야기들이 아이 삶 속에 쑤욱 들어옵니다. 아이 눈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는 걸 아이 글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p.36
그래, 그걸 쓰자 최수혁 1학년
“나 안 쓸래요
“나, 오늘은 안 쓸래요. 나, 화났어요.”
“으음, 오늘 화가 난 수혁이가 뭘 쓸 수 있을까?”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짜 안 써요.”
“그래, 그걸 쓰자. ‘나, 오늘 안 쓸래요’, 어때?”
나는 하하하 웃고 그걸 썼다. (2. 1. 내 마음에 태풍이 분 날)
--- p.38
많은 분이 글은 생각이나 느낌을 많이 써야 좋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한 일을 중심으로 글을 잘 썼는데도 아쉬워하지요. 아이들에게 생각이나 느낌도 많이 써 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일의 사정을 제대로 쓰지도 않고 서둘러 ‘참 재미있었다. 너무 좋았다’는 식으로 글을 풀어 가는데 그러다 보면 아무리 길게 쓰려고 해도 더 쓸 게 없지요. 어떤 일에 느낌이나 생각을 섬세하게 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겪었던 일만 잘 써도 그때의 생각이나 느낌이 전해집니다. 뻔한 느낌이나 생각을 쓰는 것보다 그때 그 일을 제대로 분명하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 글에 생각이나 느낌을 많이 쓰라고 하는 말은 좀 참고, 겪은 일 쓰기를 제대로 잘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게 필요합니다.
--- p.76
아이들은 산문보다 시 쓰기를 즐깁니다. 자기 삶을 담아 짧게 쓰는 시는 아이들이 부담 없이 마음껏 쓸 수 있고, 거기서 느끼는 글의 힘은 긴 글 못지않기 때문입니다. 동시의 틀을 깨고 제 삶을 쓰는 물꼬만 터 주면 아이들은 거침없이 시를 씁니다.
--- p.135
제사 오민경 3학년
참 신기해
엄마가 제사할 때
문을 조금 열어놓았는데요.
증조할머니, 할아버지가
드시고 가시라고 그랬대요.
--- p.137
자동차 얼굴 정다희 3학년
차는 얼굴도 있고 코도 있고 귀도 있고
눈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차나 어떤 표정을 짓고 있어요.
--- p.138
편지 김미영 1학년
답장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요.
친구가 나한테
온 것 같아요.
--- p.141
좋아하는 책만 읽어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도 많이들 하세요. 특히나 그림책이나 동화책만 읽어서 걱정이라고. 아이들이 책을 읽고 얻었으면 하는 것들이 무엇일지 한번 생각해 봅니다. 어휘력, 상상력, 이해력, 사고력, 표현력은 물론이고 창의력과 공감 능력, 통찰력 들이 자라기를 바랄 거예요. 책은 이런 힘들을 키워 주고 영혼이 멋진 아이로 자라나게 합니다. 여기에 저는 재미난 이야기에 푸욱 빠지는 몰입의 행복도 더하고 싶습니다. 이런 독서력을 키우기에는 어떤 책이 좋을까요? 그림책과 옛이야기, 동화 같은 아름다운 문학은 아이들의 정서와 마음을 다독여 주고 성장시켜 줍니다. 편안하게 재밌다, 재밌다 하며 아이와 동화책 중심으로 읽어 나가면 됩니다.
--- p.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