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없는 날에는 아무리 해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나는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 안이다. 아니, 볼일도 없는데 여긴 뭐 하러 들어왔지. 밖으로 나오다 이번에는 격자문에 머리를 내리친다. “으음, 으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따위 글을 써봤자 뭐가 된단 말인가. 그저 노동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 것을.
--- p.43, 「쓸 수 없는 원고(요코미쓰 리이치)」 중에서
편집자 한 명이 직접 만나 담판을 짓겠다며 집으로 찾아왔다. 조금 질려 더욱 고사했지만, 결국 쓸 수 없는 이유라도 쓰라고 해서 할 수 없이 펜을 든다.
막상 쓸 수 없는 이유를 쓰려고 하니 이게 또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 왜 쓸 수 없는지를 명확히 안다면 당연히 그 이유를 쓸 텐데, 사실 이유를 모르니 그저 ‘쓰지 못하겠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시는 쓰면서도 시 그 자체에 관해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니, 어째서 그럴까. 전에 단편이나마 시론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다 점차 여러 가지 문제가 마음속에 쌓이고 복잡해지더니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점점 더 암중모색하는 형편이다.
--- p.61, 「쓰지 못하는 이유(다카무라 고타로)」 중에서
다카하마 교시에게
시간이 모자라 어쩔 수 없이 오늘 학교를 쉬고 『제국문학』 원고를 썼습니다. 분량은 원고지 예순네 매가량. 실은 더 써야 했지만 시간이 빠듯해 뒤를 생략했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큰 괴짜가 탄생했습니다. 내년에 비평해주시길 바랍니다. 내일부터 힘내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쓸 작정이지만, 쓰려고 하면 괴로워집니다. 누군가에게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17일 아니면 18일까지는 보내겠습니다. 자네와 인쇄소가 입을 헤 벌린 채 기다리면 미안하니까.
1905년 12월 11일 월요일
--- p.67,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나쓰메 소세키)」 중에서
“또 못 썼어요?”
아내가 묻는다.
“안 돼, 안 돼.”
“속 썩이네요.”
“오늘 밤, 할 거야. 오늘 밤이야말로…….”
이렇게 말하고는 양지바른 툇마루를 걷거나 정원의 나무 사이를 거닌다. 팔짱을 끼고 끊임없이 흥이 샘솟기를 기다리면서.
T 잡지의 편집자가 오는 것이 무섭다. 틀림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기어코 원고를 손에 넣지 않는 한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색을 한껏 내보일 텐데……. 당신은 빨리 쓰니까요, 이런 말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기분이 교차한다. 쓴다, 하찮은 글을 쓴다. 그것이 세상에 나온다. 비평된다. 이 생각만 하면 몸도 마음도 구석의 구석의 구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다.
이번에는 더는 어찌해도 쓰지 못할 것처럼 느껴진다. 조바심이 난다. 이제껏 글을 쓸 수 있던 게 이상할 정도다. 재료고 뭐고 엉망진창이다. 예전에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도 시시하기 그지없다. 어째서 저런 소재로 글 쓸 마음을 먹은 걸까.
“안 써져, 안 써져.”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아내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 p.79~80, 「또 못 썼어요?(다야마 가타이)」 중에서
나의 더딘 글쓰기는 그런 기특한 이유보다는 주로 체력 문제에서 비롯된다. 나는 꼼짝 않고 한 가지 생각을 하다 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금세 지친다. 끈기 있게 버텨봤자 20분이다. 젊은 시절부터 당뇨병을 앓은 탓이지 싶다. 여하튼 이런 사정으로 원고지를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는 둥 뜨거운 차를 마시는 둥 소변보러 가는 둥 10분 20분 간격으로 여러 가지 가락을 넣는다. 잠깐 쉬어 호흡을 바꾸지 않으면 집중해서 사고하지 못한다.
가끔 어떤 대목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섰다가 앉았다가 마셨다가 피웠다가를 점점 더 자주 되풀이한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5분이나 10분 가만히 원고를 노려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이번에는 차를 마시고 또 노려본다. 그래도 안 풀리면 소변보러 나갔다가 내친김에 정원까지 걸어 다닌 뒤 돌아와 또다시 원고에 매달린다. 꽤 심하게 막힐 때는 원고가 나를 뒤엎어버리는 느낌이라, 후유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을 응시한 채 반 시간에서 한 시간을 허비한다.
--- p.117~118, 「10분에 한 번씩 원고지를 노려보는 신세(다니자키 준이치로)」 중에서
올해는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다. 지금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인도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가을쯤에는 유럽에 갔을 때처럼 가볍게 출항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몇 번이나 첫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돈 많이 모았지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모아둔 것은 여관 계산서 정도다. 완벽한 하루살이 인생인 셈이다. 말하자면 내가 암염소의 젖을 짜면 그 밑에서 다른 사람이 체에 밭는, 그런 덧없는 생활이다. 그렇기에 몸 상태가 나쁘면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진다. 뭐, 쌀밥과 해님은 나를 따라다니시겠지. “달 어두운 밤 기러기는 높이 난다”고 비참한 날이 와도 원래 몸뚱어리 하나뿐이니 어떻게든 되리라.
--- p.169~170,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다(하야시 후미코)」 중에서
편집자: 난감하네요,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만…… 원고지 두 장이든 세 장이든 상관없습니다. 당신 이름만 있으면 됩니다.
작가: 그런 글을 싣는다니, 어리석은 일이지 않습니까? 독자가 딱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잡지에도 손해가 될 텐데요. 양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고요, 욕을 들을 게 뻔합니다.
편집자: 아니, 손해는 아닙니다. 무명 작가의 작품을 실을 땐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잡지에 책임이 있습니다만, 유명 작가의 작품이면 좋든 나쁘든 항상 작가가 모든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작가: 그렇다면 더욱 일을 맡을 수 없지 않습니까?
편집자: 하지만 당신 정도의 대작가라면 한두 편 나쁜 작품을 낸들 명성이 떨어질 걱정은 없지 않습니까?
작가: 그 말은 5엔이나 10엔쯤 도난당해도 생활이 곤란하지 않을 사람에게는 훔쳐도 괜찮다는 논리입니다. 도둑맞은 사람은 꼴이 뭐가 됩니까?
편집자: 도둑맞는다고 생각하면 불쾌하지만, 기부한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 있지 않습니까?
--- p.227~228, 「작가와 편집자의 대화(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