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면서 얻은 게 많다. 차를 타고 지나갔으면 못 봤을 작은 갤러리나 서점, 카페에 수시로 들러 구경을 하고, 골목길로 들어서면 사람들 사는 모습이 다 비슷함에 공감하기도 한다. 드라마에 나왔던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하고, 걸어가다가 반가운 지인을 만나 차 한 잔 하기도 한다. 지금처럼 번화해지기 전의 익선동 골목길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대문 틈으로 풍겨나오던 밥 짓는 냄새, 대문 앞 평상에 앉아 마늘 까고 콩나물 다듬는 할머니들 이야기, 강아지 짖는 소리 등 사람 사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장 크게 얻은 것은 활력이다. 온몸을 써서 숨차게 걸으니 소화도 잘 되고, 다리도 탄탄하진 듯하다. 멀리 보고 걸으니 모니터만 보고 있던 시야가 넓어져서 눈이 시원해짐을 느낀다.
--- p.57,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걷다 보면」 중에서
반나절의 기억이 사라져버린 것은 지금도 미스터리지만 그 덕분에 큰맘 먹고 검사를 했으니 전화위복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세상 참 좋아졌다. MRI와 혈액 검사로 치매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을 싹 지웠으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치매 예방을 위해서 운동 열심히 하고 퍼즐이나 뜨개질로 손과 머리를 부지런히 움직인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어제가 오늘 같은 비슷비슷한 일상을 사는 것보다 작지만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게 좋다 한다. 고유명사가 생각이 안 난다고 바로 검색하지 않고, 기억해내려고 애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가까운 곳부터 당일 여행도 계속 다니고, 친구들 자주 만나면서 즐겁게 지내야 할 당위성이 생겼다.
--- p.66~67, 「치매가 두려워」 중에서
온전히 내가 중심인 세상, 내가 긍정의 눈으로 만들어가는 세상, 내가 지금 여기에 발붙이고 있기에 존재하는 무한한 세상을 느낀다. 내공이랄 것도 없는 내게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슴이 벅차서 터져버릴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10분에서 20분 정도 조용히 내 안으로 침잠한다. 그날의 명상을 끝내고 눈을 뜨면 내 입가엔 미소가 살짝 달려 있다. 하루가 투명하게 시작되는 느낌이다. 매일 아침, 리추얼 같은 이 시간이 나에게는 보물 같은 시간이 되었다.
--- p.70, 「10분의 명상으로 얻는 하루의 평화」 중에서
50세란 나이는 내 단점을 가리던 방호막을 하나하나 벗어내라는 신호 같았다. 하루 종일 하이힐을 신고 다니다 집에 와서 하이힐에서 내려오면 날아갈 듯 몸이 편해졌다. 젊었을 때는 못 느꼈던 감각이다. 허리도 좀 두들겨야 편해졌다. 천천히 낮은 굽으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3센티미터 정도의 낮은 굽은 몸의 균형도 맞춰주고, 다리도 좀 편했다. 운동화를 신으니 세상이 간단해졌다. 발이 편하니 버스 정류장 한두 개 정도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간다. 굳이 안 가도 되는 곳도 괜히 한번 들어가 발품을 파는 게 불편하지 않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양보하고, 앉을 자리를 찾느라 눈동자를 분주히 돌리지 않는다. 갑자기 뛰어야 할 때 발목 삐끗할까 걱정하지 않는다. 시장에 가는 게 편해졌고, 산책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전에는 저녁때쯤 되면 뻐근하던 허리와 다리도 멀쩡하기만 하다.
--- p.95~96, 「하이힐에서 운동화로」 중에서
주름 하나하나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내 얼굴의 표정, 전체적 분위기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맞다. 구태의연하게 내면이 아름다워야 외면도 아름다워진다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내 주름의 숫자와 방향에 실망할 것이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입꼬리를 한껏 올려서 주름의 끝을 하늘로 날려버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침 명상을 할 때, 기본자세는 편하게 앉아서 어깨에 힘을 빼고, 얼굴에 미소를 띠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하면 얼굴에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 p.114, 「내 주름 사랑하기」 중에서
살림을 비우니 집이 전보다 넓어 보이고, 뭘 찾기가 쉬워졌다. 집안일을 할 때도 효율이 좋아졌다. 무엇보다도 필요 없던 물건을 볼 때마다 “저걸 어쩌나?” 하면서 고민하던 게 사라지니 눈이 시원하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집이 이고 있던 무게는 알고 보니 내 마음에도 그 중량을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진작 살림 다이어트를 시작하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다.
--- p.194~195, 「가장 확실한 청소, 정리」 중에서
예전에 오랫동안 사귀었던 친구들 중에 금전적 문제나 성격상의 문제로 서로 등을 돌린 친구들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던 당사자들도 친구와의 이별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후로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했다. 문제는 둘만의 것이 아니어서 나 역시 어느 편에 설 것을 은근히 강요받는 상황이 되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유난히 나빠서 친구를 잃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시어머니의 매듭 이야기를 더 일찍 알았더라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친구 수업을 하면서 먼저 떠오른 것은 이렇게 관계가 멀어지거나 끊어진 친구들이었다. 인생의 황금기를 함께 지내며 울고 웃었던 친구들. 이제 내가 그 친구들에게 말을 건넬 때가 된 걸 알겠다.
--- p.226, 「잊고 지낸 친구가 생각날 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