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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만하냐고 묻는 짓은 바보 같은 일일 거야

살 만하냐고 묻는 짓은 바보 같은 일일 거야

: 그림책 읽고 세상을 그리고 나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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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212g | 128*188*11mm
ISBN13 9791155311226
ISBN10 11553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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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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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맣고 눈이 땡그란 남자애가 나를 보고 ‘깐고모’라고 부른다. 오늘 생긴 조카다. 몇 년을 조른 참이다. 아빠도 언니도 오빠도 동생도 갖고 싶다고. 언니 둘, 오빠 셋, 아버지, 올케 언니, 조카 둘이 한꺼번에 생긴 날이다.
--- p.21

“나 여기 멍들었나 봐봐.” 어머니는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내보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손자가 대답한다. “어휴, 조심하시지. 조금 멍들었는데,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동안 우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파킨슨병을 앓는 어머니하고 함께 산 지 2년이 지났다.
--- p.55

우에노 공원으로 봄나들이를 갔다. 우리 식구 셋, 부하 직원 둘, 일본인 친구 하나가 일행이었다. 벚꽃이 떨어지는 밤 풍경에 빠져들었을까, 맥주 반잔에 취했을까. 화장실에 간다고 나섰는데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똑같은 길을 돌고 돌았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길.
--- p.77

한 땀 한 땀 시간과 노력을 쏟다보면 나를 담은 조각보가 완성된다. 마음이 급하거나 화난 때 한 바느질은 나중에 보면 비뚤비뚤 땀이 고르지도 않을뿐더러 성에 차지도 않는다. 고운 땀, 화난 땀, 즐거운 땀, 외로운 땀, 가지런한 땀, 땀 흘린 바늘땀에서 내가 보인다.
--- p.103

아직도 내가 궁금해서 철학원에 갔다. 태어난 시를 잘 모른다고 하니 철학관 박사님이 묻고 답했다. “뭐하는데? …… 과외 선생 했다고. 그럼 오후 세 시야. 라이센스 없는 선생.” 나는 선생이 천직이었다. 학교 끝나고 만나는 선생, 인생의 뒤안 길에서 만나는 님. 나, 선생님 맞다고요!
--- p.107

너무 울어 텅 비어버린 듯한 매미 허물에서 나를 봤다. 언제쯤 눈물이 멈출까. 무겁게 자리잡은 아픔이 사라질까. 밖으로 드러내지 못해 슬픔으로 변한 분노가 비워질까. 울자, 텅 비어버릴 때까지 실컷 울어보자.
--- p.119

옆집 신발 가게 문경이는 냉장고가 예뻤고, 앞집 금성전파사 효정이는 식탁 세트를 자랑했다. 나는 덩그러니 미미 인형만 갖고 있었다. 셋이 모여 놀 때는 즐거운데, 집에 오면 미미가 앉아야 할 식탁과 냉장고가 눈에 아른거렸다. 엄마한테 사달라고 말 한 번 벙긋 안 했다. 아니 못했다. 나는 내 마음을 못 본 체했다.
--- p.147

자전거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빨려 들어왔어. 이민자의 행렬처럼. 왼쪽으로 자유의 여신상도 있었지. 나는 여행 중이었고, 너는 떠나온 사람이었어. 그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냐고, 살 만하냐고 묻는 짓은 바보 같은 일일 거야. 우리는 말없이 걸었어. 나는 여행 중인데도 떠나온 사람이 아니었고, 너는 도착했는데도 떠나온 사람이었어.
--- p.157

“오늘은 어떤 그림책으로 하실래요?” 그림책 빼곡한 책꽂이에서 그림책 한 권을 권한다. 손님들은 자기만의 그림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장면을 따라 그린다. 30분 쯤 지나면 패셔니스타 신경숙 선생님 입장. 11시 즈음에 오는 신미숙 선생님도 그림다방 단골이다. 그림다방에서 우리는 모두 ‘선생님’이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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