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사람들은 무솔리니, 파시즘 같은 단어는 알지만, 이탈리아 현대사는 잘 모른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도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사형선고를 받고 이 마지막 편지를 쓴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린 전혀 지식이 없다. 하지만 그들도 한 명의 인간이었기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가진다. 이 책을 통해 오래전, 먼 나라에서 쓰인 편지들을 읽으며 같은 인간으로서 깊은 공감과 연민을 느낀다.
역사학자로서 가끔 과거의 인물에 대해 마치 심판관처럼 행세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미래의 일들을 알 수 없었던 사람에게 완벽한 인식과 판단,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고, 미래에 대해 모른 채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보다 겸허한 자세로, 공감과 연민을 가지고 역사 속 인물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편지들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편지가 훗날 이런 방식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책으로 출판되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대한민국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번역되리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무명의 민중들도 많았다. 우리는 여러 기록을 통해 지도자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민중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린 이 편지들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의 민중사, 나아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생애 마지막 편지를 쓴 사람들은 노동자, 농민, 교사, 사서 등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편지글을 통해 그들이 이렇게나마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우리의 독립운동가와 민주투사들이 이런 편지를 남기지 못했던 것이 너무도 아쉽다.
마지막으로, 과연 나 자신은 그런 상황에서 직접 항쟁에 나서고 죽음을 맞이할 용기가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前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라고만 했다면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읽게 되는 편지들은 이탈리아 레지스탕스들이 남긴 마지막 편지다. 연합군의 이탈리아 상륙과 함께 무솔리니가 실각하지만 나치 독일이 북부 이탈리아를 장악하면서 파시스트 정권이 연장된다. 이에 맞서 토리노를 중심으로 레지스탕스 투쟁이 전개되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항전에 참여하였다가 나치와 파시스트들에게 체포돼 총살당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들을 우리가 ‘의인’이라고 부른다면, 이 책은 그 의인들의 마지막 편지다. 그렇지만 그들은 의인이기 이전에 아직 어린 청년이었고, 아들이었고, 연인이었고, 어머니였고, 아버지였다. 가족과 연인들에게 그들이 남긴 마지막 편지를 읽다가 여러 번 멈춰야 했다. 끝내 다 읽을 수 없는 편지가 있다면 내게는 이 편지들이 그렇다. 그들의 유언을 읽는 대신 가슴에 묻는다.
- 이현우 ((로쟈) 작가, 서평가)
흔히들 말한다. ‘먹고 살려면 참아야지.’ 나 역시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로 부당한 일들을 견뎌 낸다. 그런데 이 편지들을 쓴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찌 보면 먹고 사는 일과 상관없는 자유에, 조국에, 목숨을 걸었다. 더 놀라운 건 이들 대다수가 보통 사람들이란 점이다. 누군가는 ‘용기’란 극한의 상황에서 발휘되는 것이라 변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말한다. 극한 상황을 핑계 삼아 억압자들의 편에 서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사실을. 그래서 저항을 택하고 결국 죽음 앞에 서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는 놀랍다. 그들이 어머니, 아버지, 가족들을 향해 사랑을 말하고, 저항하지 말라는 충고를 따르지 못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대목에 이르면 할 말을 잃는다.
그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말들은 용기가 필요한 우리와 오늘도 함께 살아간다.
-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디타,?나를 절대 잊지 마.?그리고 내가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 또한 기억해 줘.” (아킬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마음으로나마 아버지를 꼭 안아 드리는 것입니다.”(프랑코)
“할머니가 제일 아끼는 손자가 저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제게 쏟아 주셨던 각별한 애정을 이제는 맏손자와 막냇손자에게 쏟으셨으면 해요.?아주 많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렌초)
그대가 파시스트의 손에 목숨을 잃기 직전이라면 사랑하는 이에게 어떤 말을 남기겠는가? “사랑한다.”는 말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니겠는가??조국의 영광과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던진 201명의 파르티잔이 죽음 직전에 남긴 말들도 그러했다.?이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읽노라니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이들이 남긴 말은 비슷하면서도 모두 다르다.?나뭇잎 하나, 돌멩이 하나가 같을 수 없듯?이들의?말은 각자가 지닌 고유한 인생행로, 그 마지막에 이슬처럼 맺힌 ‘희생’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후반,?연합군에게 체포된 무솔리니가 탈출한 뒤 나치가 세운 괴뢰 국가의 수반이 되었고, 그 결과 이탈리아가 우리나라처럼 동족상잔의 비극에 휩싸였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알게 됐다. 먼 옛날 이야기고,?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일이라 나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글들은 인간 보편의 이야기이며,?그리스 비극만큼이나 나의 실존과 직결돼 있다.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한 학생이 마지막으로 남긴?“엄마 사랑해요.”라는 문자만큼 절절하게 사무치는 글들이다.
-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저자)
여름 날, 뜨거운 태양의 횡포에 한줄기 소나기가 저항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채 땀 흘리는 얼굴을 적시며 소나기는 그렇게 잠시나마 쉬어 가라고 우리를 채근한다. 궁금했다. 1944년 6월 26일 초여름, 사형집행인의 총탄을 기다리던 파올로에게 한 다발의 빗줄기는 어머니를 대신해 그를 적시며 입맞춤해 주었을까?
가지만 앙상히 남은 겨울의 나목은 차가운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우리에게 그래도 버티라며 어깨를 두드려 준다. 알고 싶었다. 1945년 2월 21일 늦겨울, 아무도 가보지 못한 죽음의 문턱에 서있던 도메니코에게 바르바니아 광장의 한 그루 나무는 꼬맹이 임페리오를 대신해 그의 어깨를 감싸 주었을까?
혹여, 한줄기의 소나기와 한 그루의 나무가 사형을 앞둔 이들에게 어떤 위로도 주지 못했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 한 장은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그들에 대한 역사의 망각과 소멸의 집행을 영원히 유예시켜 주었다고.
이 편지들의 주인공인 파올로와 도메니코는 17살로 생을 마감한 위대한 이탈리아 전사였다.
우리는 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박진서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 FS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