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리고 자기 생각을 자신 있게 표현하는 태도가 글쓰기 나라의 시민권이다. 글쓰기 교재 ‘성찰과 표현’은 여러분을 글쓰기의 무한한 세계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다. 어디를 향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부디 글쓰기와 더불어 더 큰 미래, 더 많은 미래를 열어나가는 후마니타스로 성장하시기 바란다. 잊지 말자, 우리들 후마니타스는 ‘글 쓰는 인간’이다. ‘생각하는 인간’이다.
---「머리말」중에서
글쓰기, 왜 필요한가_‘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다른 질문으로 연결된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존재인가? 나에게 일어난 일의 이유와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싹트는 질문이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고, 또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자문자답의 과정을 통해 글쓰기는 ‘나’의 정체성을 찾는 가치 있는 탐험이 되며, ‘진정한 나’로 성장하는, 힘들지만 의미 있는 여행이 된다.
---p.13
글쓰기의 첫걸음, 문장 연습_발상과 관찰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좋은 문장 쓰는 법을 익히도록 하자. 좋은 문장의 요건은 두 가지다. 첫째, 간결할 것, 둘째, 명확할 것. 문장은 짧을수록 좋다. 문장이 짧아야 간결하고 명확해진다. 가장 짧은 문장은 주어 하나에 술어 하나로 이뤄지는 문장이다. 주어 하나, 술어 하나인 문장에는 하나의 이야기(정보)가 담긴다. 물론 구문을 단순화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발상과 관찰, 즉 좋은 생각이 좋은 문장의 필수 요건이다. 좋은 생각이 좋은 문장을 낳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글쓰기는 곧 생각하기이다.
---p.50
나를 움직인 말 한마디_나를 움직일 말 한마디는 언제 필요한가? 무력감에 젖었을 때, 가까운 친구와 관계가 멀어졌을 때,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목표를 잃었을 때, 실패했을 때,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등등 무수히 많을 것이다. 이렇게 상실감이 커지고 좌절감이 밀려들 때면, 그때 내 마음에 품은 소중한 말 한마디가 축 처진 내 어깨에 힘을 불어넣고 다시 삶의 에너지를 충전시켜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내 삶의 배터리를 방전시키지 않기 위해,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지금 당장 ‘나를 움직이는 말 한마디’를 찾아나서야 한다. 여러분이 살아오면서 스스로 체득한 인생의 좌우명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누구로부터 그 ‘말씀’을 새겨듣고 그 모토에 의지하여 여기까지 걸어오게 되었는가?
---p.95
고쳐쓰기_글을 쓰는 과정에는 두 번의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첫 문장을 쓰는 용기, 다른 하나는 고쳐 쓰는 용기. 적어도 두 번의 과정을 끈기 있게 통과한 글이 좋은 글이다. 단순화하면, 글쓰기는 ‘생각하기-쓰기-고쳐쓰기’의 과정이다. 고쳐쓰기는 글쓰기의 필수 과정임에도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이 고쳐쓰기이다. 그런 사람은 초고를 최종본으로 삼는다.
---p.149
왜 5단락 글쓰기인가_글을 쓰는 과정에는 왜 본문을 세 개의 단락으로 구성하는가. 예를 들어 첫 단락에서 어떤 주장을 내놓았다면 두 번째부터 세 번째, 네 번째 단락까지 세 개의 단락에서는 그 주장이 타당하다는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증거를 제시하고 논증하는 것이 반드시 세 단락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 단락으로 구성된 본문이 가장 기본적인 형식으로 인정되는 이유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적어도 세 가지 정도는 되어야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논거가 세 가지뿐 아니라 열 가지 이상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때는 단락이 늘어날 것이고, 구성을 수정해야 할 터이다. 그렇지만 글쓰기 초보자에게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하는 정도가 논리적 글쓰기 훈련에 적절하다. 때문에 5단락 글쓰기가 산문 쓰기의 기초 단계라 하는 것이다.
---p.168
한국사회, 무엇이 문제인가_사회적 성찰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시선과 독특한 과정이 필요하다. 앞에서 인용했던 브레히트의 시를 보자.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구부러진 나무의 흉측함만을 보려 하지, 나무를 그렇게 만든 토양은 잘 보려 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빈곤, 실패, 불행, 경쟁의 흉측한 모습만을 본다. 그것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적 관계는 보려하지 않는다. 사회적 성찰이란 ‘겉모습(현상)’ 아래로 뚫고 들어가, 겉모습을 그렇게 만든 ‘사회적 관계’나 ‘사회구조(본질)’를 파악하는 과정이다. 또한 현재의 겉모습에 붙들리는 얄팍한 시야가 아니라 현재를 그렇게 만든 사회적 과정을 볼 수 있는 깊고 넓은 시야이기도 하다.
---p.215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_공존과 상생을 가능하게 하는 우정과 환대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오래된 세계관을 재정의할 때 되살아난다. ‘성찰과 표현’의 글쓰기는 이제 미래를 상상하는 주제로 확대된다. 기후변화와 과학기술 혁명이 이끌어 가는 대격변의 와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역과 세대, 직업과 신분을 가리지 않는 ‘중독사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지금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력을 공론화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 같은 질문은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라는 근본 물음으로 수렴된다.
---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