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아듣기 힘든 말을 왜 쓰는가 하면, 끼리끼리 뭉쳐서 울타리를 지키려는 뜻이 있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쉬운지 어려운지부터 제대로 모르는 탓이기도 해요. 어떤 이야기인지 바로 안다면 굳이 어려운 말을 안 써요. 잘 아는 이야기를 어려운 말로 일부러 쓴다면, 이때에는 ‘혼자만 알려는’, 어려운 말로 하자면 ‘지식 독점’을 하려는 셈이라 할 만합니다. 삶으로 녹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잘 모르는 말을 쓰고, 이런 말씨는 하나같이 일본 한자말이나 영어이곤 합니다.
· ‘길잡이·안내인·가이드’가 있어요. 우리말하고 한자말하고 영어입니다. 셋은 모두 같은 일자리를 나타내지만, 정작 우리말로 일자리를 나타내지 않고 으레 한자말이나 영어를 앞장세우
곤 해요. ‘채식’을 하거나 ‘비건’이라고 밝히는 사람이 늘지만, 정작 ‘풀사랑’이나 ‘풀밥먹기’처럼 우리말로 수수하게 살림길을 밝히는 사람은 잘 안 보여요.
· 저는 푸른 벗님뿐 아니라 여러 어른 이웃한테 ‘바르게 쓰기’보다는 ‘생각하며 쓰자’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이 틀렸으니 쓰지 말자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이때에는 이처럼 생각을 펴고, 저때에는 저렇게 생각을 넓히면서 말을 하자’고 이야기합니다. 곱거나 바르게 쓰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우리 하루를 스스로 슬기롭게 지으려고 말할 적에 저절로 곱고 바르게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우리말꽃은 삶말이나 살림말이 많이 빠지거나 허술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신문이나 어른문학이나 논문을 으레 올림말 밑글로 삼으니, 사람들이 거의 안 쓰거나 아예 안 쓴다고 할 수 있는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자말이나 영어가 낱말책에 갑자기 올림말로 실리곤 하지요.
· 곰곰이 생각해 봐요. ‘언어파괴’를 일삼는 쪽이라면 어린이나 푸름이도 아니요, 예전 피시통신도 아니며, 요즈음 인터넷이나 에스엔에스도 아니지 싶습니다. 우리가 재미나게 신바람을 내면서 쓸 우리말을 알맞게 가다듬거나 갈고닦거나 세우지 못한 ‘어른’이야말로 우리말을 무너뜨리거나 흔들거나 허문다고 해야 올바르지 싶습니다.
· 군대나 감옥에서 쓰는 말이 아닌, 예전 일제강점기에 일본 총칼나라(제국주의) 군홧발이 퍼뜨린 말씨가 아닌, 위아래를 가르면서 마구 밀어붙이는 말이 아닌, 미워하거나 시샘하거나 괴롭히려는 티끌이 섞인 말이 아닌, 그야말로 따사롭고 넉넉하면서 아름다운 눈빛으로 즐겁게 펼치는 우리말이 되기를 바라요.
· 우리가 스스로 우리말을 제대로 못 쓴다면, 또 한자말이나 영어가 아닌 쉽고 또렷하면서 부드럽고 상냥한 우리말을 알뜰히 못 쓴다면, 한자나 영어 지식은 부질없기 마련이에요. 한자나 영어는 자랑하려고 쓰지 않아요. 이러한 글이나 말을 배우려는 뜻이라면, 이웃나라하고 사이좋게 사귀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 글이나 말은, 우리 사랑을 곱게 담아서 들려주려 할 적에 아름답구나 싶습니다. 사랑이 안 담긴 글이나 말이란 재미없다고 할까요. 멋지지도 않겠지요. 겉멋만 있을 테고요. 겉이 아닌 속을 아끼는 숨결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줄 안다면,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좀 어긋나거나 틀려도 참으로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 “우리말이 있으니 굳이 우리말 아닌 영어나 한자말을 안 쓴다”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면서 스스로 즐거울 뿐 아니라, 이웃하고 한결 넉넉하고 상냥하게 어우러지는 길을 살피면서 ‘우리말을 더욱 깊고 넓게 살펴서 쓰는 말결’을 돌아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일본사람이 옮긴 일본 말씨하고 일본 한자말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나온 ‘일본 영어사전’하고 ‘일본 영어 참고서’를 꽤 오랫동안 들여와서 영어를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이 탓에 “하고 있다”를 비롯한 갖가지 옮김 말씨가 불거졌어요. 이제부터라도 우리 말결과 말씨를 차근차근 짚으면서 영어도 일본말도 여러 바깥말도 알맞고 슬기롭게 가르치고 배우는 길을 열면 좋겠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