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저 다 되어서 부모가 된 게 아니라 하신다. 내가 죄인이었을 때 나를 사랑하신 그분이 부모가 되라 하신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로, 그분의 사랑으로, 그 분의 용기주심으로 나를 부모 되게 만들고 계신다.
자녀를 낳고 어떤 영성훈련보다 더 강한 훈련을 삶에서 받고 있다. 다른 부모들도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다. 가장 좋은 교육을 우리는 자녀를 키우며 하나님께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보내신 선생이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시고자 보내신 메시지다.
자녀와 함께 자라면서 부모가 되는 나도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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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에니어그램은 자신에게 있는 그림자인 부정성을 알게 한다. 내 마음이 어디 있는지를 찾게 한다. 우리는 지금껏 그림자가 너무도 깊은 곳에 있어 그 그림자에 내가 있어 어두운지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오히려 그림자 밖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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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자녀를 판단하면 그것은 자녀의 일부를 보고 내가 보는 대로 재단하는 것이다. 재단한다는 것은 가위를 가지고 옷감을 자르듯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갈라 나누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현상이다. 하지만 현상을 움직이는 동기를 살피면 관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아이의 이상행동은 문제행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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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안타까울 때가 아이들이 가장 원망하고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부모일 경우이다. 자기들을 위해 많은 헌신과 수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가고 싶은 학원을 못 가도 부모님이 원망스럽다고 하는 아이가 있지만 학원을 너무 많이 보내줘서 부모님을 원망하는 아이들이 있다. 외모 때문에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친구를 못 사귀고 학교에서 왕따 같은 어려움을 당해도 부모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승전결 부모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 내가 슬픈 것은 이런 사실을 부모님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부모님 탓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부모가 있으니 탓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탓으로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면 그것이 자신의 신념이 되어 굳어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건설적으로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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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은 자기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고민은 힘이 드는 일이다.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들었다가 왜 부모인 나부터냐고 묻는다면 부모는 가능성과 영향력이 커서다. 부모는 부모 자신이 건강해지는 것만큼 자녀에게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줄 수 없는 영향력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바라보기 전에 부모 자신을 먼저 바라봐야 한다. 부모 자신에 관한 공부는 일반적인 다른 공부처럼 아는 척하고 끝낼 수 없다. 자기에 대해 몰랐던 것에 대해 알게 되면 신기하고 재미있다. 남에 대해 알고 싶어 공부하다가 자기를 보게 되는 학문이 에니어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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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세상의 대치점에 부모가 서 있다. 부모는 이쪽으로 갈 수도 있고 저쪽으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여전히 부모여야 하고 부모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제공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프레임이다. 예컨대, 세상을 읽고 바라볼 수 있는 창(window)을 제공한다. 창이 더럽혀져 있으면 창을 너머 바라보는 세상을 당연히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반대로 너무도 깨끗한 창을 보면 세상과 이곳을 구분하지 못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제공하는 창은 실제로는 세상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이다.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부모의 생각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된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부모는 세상에 대해 부정적이다. 공포를 느끼고 있는 부모는 세상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해 분노하는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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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회복탄력성(Resilience)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고 싶지 않은 부정성의 편향도 있다. 용수철처럼 자기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자기에게 있는 문제를 인식하고 더 나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을 때 건강한 사람,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 모습이 나인 줄 알았던 것들로부터 나를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순례하듯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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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유형의 격정은 욕망이다. 그들의 욕망은 과도하고 강렬하고 넓다. 음악도 크게 틀고 먹는 것도 배가 고프면 못 참는다. 8유형을 둔 남편은 퇴근하기 전에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밥을 차려놓으라는 것이다. 들어가자마자 밥이 차려 있어야 한다. 조금만 늦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격정의 상태에 있으면 충동적이고 자기감정을 참을 수 없다. 그래서 훗날 후회할 일을 자기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서슴지 않고 행한다.
9유형의 격정은 나태이다. 나태는 행동, 성격 따위가 느리고 게으른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게으름은 할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에니어그램에서 보는 나태는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은 게으름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나태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취해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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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은 그동안 나를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을 발견하게 해주고, 특별히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동원리들에 대한 불건강한 방식이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내가 왜 그 말이 싫었고 그 말이 내 귀에는 어떻게 들렸는지를 설명해준다. 이것은 단순히 내가 몇 번 유형인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을 확장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우선 내가 작동하는 방식인 격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것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다. 인간이 만든 격정은 그것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려고 노력할 과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동시에 그러한 노력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p.46
부모가 힘든 이유는 부모가 처음이라서 힘든 것이라기보다는 부모로서 갖게 되는 부모됨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나는 누구인가.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빠로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부모를 존중하라고 모든 사람에게 듣고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부모는 다른 어떤 역할과 다르게 매우 중요한 부모로서만이 할 수 있는 사명이 있어서다.
십계명에는 다른 직분을 맡은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오직 부모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심지어 부모를 공경하라고 할 때 그 공경이라는 단어는 심지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과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부모의 권위를 이렇게까지 높여주신 이유는 이 세상에 부모만이 생명을 전달해주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그들의 독특한 역할이 있음을 크게 인정해주는 것이다. 동시에 부모는 자녀의 구원을 위해 영적으로 말하고 가르치고 함께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강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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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중심의 부모는 화가 나면 자꾸 물리적으로 힘(force)을 쓰려고 한다. 포스(force)라고 번역하는 힘은 파워(power)와 다르다. 파워는 본질에 가까이 가려고 할 때 사용하는 힘이다. 파워는 건강한 힘, 생명을 살리는 힘이다.
하지만 행동 중심의 부모가 사용하려고 하는 힘은 포스이다. 포스는 사람이나 재산, 학위, 인맥 등을 통해 상황을 통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힘을 사용하려고 한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해결이 아닌 공격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p.61
내가 ‘할 수 있다’를 외치는 것은 내가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다. 내가 변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시도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인간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인간이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물론 인간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한다. 쉽게 우리 인간은 작은 습관 하나도 바꾸려면 큰 노력을 해야 겨우 바꿀 수 있다.
또한 인간의 자기 한계는 자기에 대한 관심에서 크게 벗어나기가 어렵다. 물론 마틴 루터 킹, 테라사 수녀, 간디, 넬슨 만델라, 아브라함 링컨 등이 보여준 삶과 업적은 자기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 지구적인 영향력이라기보다는 자기가 관심을 두고 해결해야 할 한 영역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삶을 축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노력의 불완전성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에 관한 관심을 벗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왜 그 사람인지, 그리고 왜 그 나라이고 지역이어야 하냐는 질문을 하게 될 때 자기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p.74
아홉 개의 점은 각자 바라보는 위치가 다르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평생 길을 찾는 여정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하나같이 출발점에서 시작해서 어떻게든 되도록 멀리 도망가고 싶은 충동은 사춘기 아이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집을 벗어나 어떻게든 내 힘으로 살아내려고 하는 자기 열심이고 화려한 인생 계획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한 탕자처럼 집이 아닌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길을 찾는다. 하지만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어쩌면 바닥이라고, 다 읽었다고 하는 그 때에 탕자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연결되는 선처럼 이어진다.
---p.80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은 저마다의 동기와 이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이들의 차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더 풍성하게 바라볼 수 있다. 9가지 렌즈는 세상을 보는 방식일 뿐 아니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그동안 고수하고 보호하려고 했던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잠재의식에 꺼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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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면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갖게 된 삶의 성장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의 내면에서 듣는 메시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면의 목소리는 나를 위한 바른 토대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내 안에서 생겨난 거짓 메시지다. 어른이 되어도 이 메시지는 계속 남아 달음질하게 만들기도 하고 낙담하여 포기하게도 만든다. 때때로 성도들은 내면의 목소리가 주님의 음성인 줄 착각하고 잘못된 메시지에 열중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에니어그램의 9가지 렌즈로 내면의 목소리를 살펴보면 내가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솔직한 내면의 상태를 읽을 수 있고 내면의 소리를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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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유형에는 긍정과 부정이 함께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1유형 부모는 그것을 잊어버리는 듯하다. 이상을 향해 부단히 애쓰고 따라가지만 다른 사람은 그런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사람도 많고 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1유형은 더 화가 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9명의 사람 중에 나 같지 않은 사람이 8명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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