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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새를 기억하는 오후

죽은 새를 기억하는 오후

현대시 시인선-22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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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206g | 130*210*9mm
ISBN13 9788961042833
ISBN10 896104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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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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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새를 기억하는 오후


미동도 없이 화면을 본다
동생을 살려 달라는 기도가 푸르다
여자는 추모 편지를 읽다 말고 단상을 내리친다

순간, 오래전에 죽은 새 한 마리를 만진다
손바닥이 축축해진다

날개가 돋기 시작한 새를 놓쳐버린 어미는 죽은 새를 불 속에 던져 넣고 먼 곳을 헤맸다
어미 새도 타버릴까 무서웠다

그 후로 오랫동안 울음소리마다 나뭇잎들이 떨어졌다
도시에 와서도 가끔 새가 울었지만 누구도 죽은 새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어둡고 축축한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단단하게 죽은 새 한 마리를 오래도록 쓰다듬는다
무등을 타고 놀던 어린 새가 화면 가득 날아다닌다

푸른 기도 속으로 떠난 새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올라온다
―――――――――――――――――――――

독해


독을 품은 연기였다

마주 잡았던 손바닥에 금이 갔다

터널 속에서 비로소
오래 믿었던 마음이 연기라는 걸 알았다

바다로 갔다
온몸에 달라붙은 독을 씻어내고 싶었다

수평선 너머 누군가 버린 것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독해가 불가능한 슬픔, 고집 센 주어, 토막 난 12월까지
바다에 던졌다

타다 만 붉은 잔해들 둥둥 떠 있었다

바다가 자꾸 손바닥을 닦았다

물음표를 물고 다니던 갈매기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물음에 독해지기로 했다
―――――――――――――――――――――

소음을 견디는 법


오전 9시 건너편 꽃들은 창문을 닫습니다
폭우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갑자기 내리는 폭우입니다

어떤 일은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합니다
포장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소리는 자가 번식을 하는 종족입니다
꽃들을 건너뛸 때마다 번식합니다

멀리까지 갔던 소리는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저수지에 빠져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창문이 흔들립니다
꽃들이 휘청입니다

오후 5시쯤 소리에서 햇살이 빠집니다
지금부터 꽃들의 기도 시간입니다
귓속에 넣었던 소리를 빼내고 눈을 감습니다

오늘 내가 들었던 당신의 소리에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누적 과태료가 천만 원쯤 되면 청구할 생각입니다
일억쯤 되면 미련 없이 퇴사할 계획입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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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운다고 믿는 열두 개의 바람’이 있음을 믿는 시인은 한 달에 한 번 물이 찼다가 빠져버리는 가계부에 목말라 한다. 시인의 존재 역시 생활전선에서 비켜 설 수 없음이다. 열두 개의 바람이 열두 달의 생활패턴일 수 있어도, 시인의 내면에서 싹트고 있는 용기 있는 비전마저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빠져나간 은행잔고를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열두 개의 꿈으로 채워 넣는다. 비로소 시인의 시심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궁핍한 육체의 욕구에 풍요로운 정신력으로 응대한다. 그 응전이 대립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다.
-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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