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가족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저녁 어스름이 다가올 무렵이 되어서야 마침내 어셔가의 음산한 모습이 눈길에 잡혔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건물을 보자마자 첫눈에 참을 수 없는 우울한 기분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내가 참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아무리 황량하거나 무서운 자연 풍경을 보아도 마음은 대개 시적인 감정으로 그 풍경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되지만, 어셔가를 처음 보았을 때의 우울한 감정은 전혀 그런 유쾌한 기분으로 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정경을 바라보았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저택과 대지의 소박한 풍경, 황폐한 벽과 퀭한 눈처럼 보이는 창문들, 무성하게 자란 사초 몇 포기, 썩은 몇 그루 나무의 하얀 줄기를 보았을 때 내 우울한 기분은 아편에 취해서 흥청거리다 환상에서 깨어났을 때, 말하자면 일상생활로 돌아올 때의 씁쓸한 기분, 신비의 베일이 벗겨질때의 섬뜩한 기분에 비유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 외에는 지상의 어떤 감각도 그것과 비교할 수가 없다.
--- pp.27~28, 「어셔가의 붕괴」
힘센 사람이 자신의 신체 능력을 뽐내고 근육 운동을 즐기듯, 분석가는 복잡하게 엉킨 것을 푸는 정신 활동을 자랑으로 여긴다. 이 재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지극히 하찮은 일에서도 기쁨과 만족을 느낀다. 그는 수수께끼와 까다로운 문제와 암호를 좋아한다. 이런 것 가운데 하나만 풀어도 보통 사람에게는 초자연적이고 불가사의하게 여겨지는 통찰력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도출한 결과는 질서 정연한 방법을 거쳐서 얻어 낸 것인데도 직관을 통해 해결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 pp.27~28, 「모르그가의 살인」
그 문제의 인물은 포악하기가 헤롯왕을 뺨쳤고, 예법 같은 걸 따지지 않는 프로스페로 공의 한계조차 가뿐히 넘어섰다. 가장 무모한 사람의 심장에도 감정 없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심금이 있다. 삶과 죽음을 똑같이 조롱거리로 여길 만큼 타락한 인간에게도 농담거리로 삼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낯선 인물의 차림새나 행동거지에 재치나 예의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깊이 느낀 듯했다. 그자는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체격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덤 속의 시체들처럼 수의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가면은 뻣뻣하게 굳은 송장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서,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봐도 그게 시체를 흉내 낸 가면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흥청망청 떠들어 대며 쾌락에 몰두해 있는 무리들은 이 모든 것을 용인하지는 않을지라도 참아 줄 수는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인물이 〈붉은 죽음〉에 희생된 사람으로 분장한 것은 너무 지나쳤다. 옷에는 피가 얼룩져 있었고, 이목구비만이 아니라 넓은 이마에도 핏빛 공포가 흩뿌려져 있었다.
--- p.59, 「붉은 죽음의 가면극」
어느 날 아침, 나는 냉혹하게도 고양이 목에 올가미를 감아서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녀석을 목매달았다. 나는 녀석이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녀석에게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을 목매달았다. 그런 짓을 함으로써 내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 가장 자애롭고 가장 무서운 신의 무한한 자비조차 내 불멸의 영혼 ─ 그런 게 존재하기라도 한다면 ─ 을 구원할 수 없을 만큼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녀석을 목매달았다.
--- pp.249~250, 「검은 고양이」
아래로, 언월도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여전히 확실하게 아래로 내려왔다! 나는 언월도가 움직일 때마다 숨을 헐떡이며 버둥거렸다. 언월도가 위를 지나갈 때마다 발작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내 눈은 부질없는 갈망을 담고 진자가 바깥쪽이나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열심히 좇았다. 차라리 죽어 버리면 좋을 텐데, 언월도가 내려오면 눈이 발작적으로 질끈 감겼다. 아아,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진자가 조금만 내려와도 차갑게 번득이는 저 예리한 도끼가 가슴에 박힐 거라고 생각하면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신경을 떨게 하고 몸을 움츠러들게 한 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종교 재판소의 지하 감옥에 갇힌 사형수에게도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고문대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 p.178, 「구덩이와 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