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북쪽은 제주시 원도심을 중심에 둔다. 동쪽으로는 조천, 서쪽으로는 애월 정도까지가 이 구역에 포함된다. 조천에서 해가 뜨고, 애월에서 달이 뜬다. 제주시 원도심은 목관아를 중심으로 제주성 안쪽을 일컫는다. 명월포구, 산지포구(제주포구), 화북포구, 조천포구 등이 조선시대 제주의 주요 관문인데, 모두 제주 북쪽에 위치한다. (중략) 제주공항과 제주항이 있어서 제주 북쪽은 제주의 관문 역할을 이어왔다. 제주를 드나들기 위해서는 제주 북쪽을 꼭 거쳐야 한다. 제주 역사의 중심은 제주 북쪽에 늘 있었다.
--- pp.29-31
만약 제주도에 처음 왔다면 4·3평화공원에 가장 먼저 가기를 권한다. 4·3을 이해해야 아름다운 풍경 너머의 이야기가 비로소 보일 것이다. 1947년 3·1절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봉기가 일어난 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기까지 삼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아름다운 섬이 피로 물들었던 역사를 기억할 때 그제야 제주도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 p.38
삼성혈은 탐라 개벽을 알리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으로 신성한 땅이다. 이 섬에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 삼성(三姓)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가 구멍에서 뿅 하고 나왔다. 비범하게 태어난 셋은 신선과 같은 모습으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온평리 바닷가에 자줏빛 나무 상자가 파도에 밀려왔다. 그 목함을 열어보니 벽랑국의 세 공주와 소와 말, 곡식 씨앗이 있었다. 삼을라는 세 공주를 배필로 삼아 혼례를 올렸다. 그리고 화살을 쏘아 땅을 나누었다.
--- p.49
용두암은 제주도가 화산섬이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바위다. 용암이 흐르다 공중에서 멈춰 굳어버렸다. 모습이 용머리를 닮아서 용두암이 되었다. 예전에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단체로 용두암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기도 했다. 태풍이 불 때는 파도와 용두암이 서로 싸우는 모습처럼 보인다. 집채만 한 파도가 쳐도 용이 머리를 세워 굳건하게 버틴다. 용두암은 낮과 밤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 낮엔 맑은 바다와 어우러진 모습이 선명한 빛깔을 자아내고, 날이 저물거나 밝아올 때는 용두암에 그림자가 져서 수묵화를 보는 느낌이다.
--- p.63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부종휴는 약관의 나이에 김녕초등학교에 부임했다. 그는 그 학교에서 서른 명 정도의 학생들을 모으고 꼬마탐험대라 이름을 지었다. 담력이 좋은 아이들을 선두에 세우고, 힘이 좋은 아이들은 횃불용 기름을 들고 가는 보급반, 꼼꼼하게 필기를 하는 아이들은 측량반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놀라운 건 당시 측정한 수치와 지금의 수치가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 p.71
제주시 화북동 아이들에게 등대는 산지등대로 각인되었다. 섬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산지등대 옆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미래를 생각한다. 미래는 수평선 너머에 있는 것 같고,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 막막함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넋 나간 사람처럼 산지등대 앞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신밧드의 모험』에 나올 법한 큰 배가 눈앞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 배를 타고 아주 먼 바다를 항해하는 상상을 한다. 제주항이 내려다보이는 별도봉 기슭에 있는 산지등대가 세워진 건 1916년이다. 그러니 벌써 백 년이 넘었다.
--- p.86
숨은물뱅듸는 제주시 애월읍 삼형제오름 부근에 있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라서 물이 잘 고이지 않는 특성이 있는데, 습지들이 몇 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숨은물뱅듸는 고산지대에 형성된 습지이다.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서 1000고지로 가다가 한라산 쪽으로 더 들어가면 숲 너머에 숨은물뱅듸가 숨어 있다. 이름 따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제주 생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소문내지 않고 다니는 귀한 곳이다. 숨은물뱅듸 가는 길에는 조릿대가 가득하다. 숨은물뱅듸에는 멸종위기 야생식물 Ⅱ급인 자주땅귀개 등 여러 수서생물이 살고 있다. 꽝꽝나무, 팔색조, 새호리기, 왕은점표범나비 등도 산다.
--- p.126
제주에서 살다 보면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맛집에 대해서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기하게도 여행객들이 자주 가는 식당과 제주도 사람들이 자주 가는 식당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입맛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텐데, 제주도 사람들은 여행객들이 많이 몰리는 식당은 찾아가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제주도에 여행을 와서 식사를 한다면 제주 전통 음식을 권한다. 몸국, 고사리육개장, 접짝뼈국, 회국수, 빙떡 등이다. 그리고 순대국밥은 보성시장과 서문시장에 식당들이 몰려 있다.
--- p.156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강광보 씨가 출소했을 때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그의 부모가 마련한 집이었다. 이제는 조작 간첩 등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원래 있던 슬레이트집을 그대로 보존하고, 3층 높이로 집을 둘러싸 공간을 만들었다. 조작 간첩에 대한 전시도 있고, 찻집도 운영하고, 맨 위에는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중략) 그때 간첩을 식별했던 표를 보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간첩일 수밖에 없다. 이제는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오랫동안 간첩이라는 수군거림을 들으며 견뎌야 했다. 오래된 벽시계가 눈에 띈다. 잃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시계는 멈춰있다. 수감 생활을 하던 시간이 멈춰버린 시간이었던 것처럼.
--- pp.190-191
그날 진아영 할머니의 삶이 으스러졌다. 1949년 1월이었다. 제주시 판포리 고향 집 담장 밑에 있는데 토벌대가 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졌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그날 후로 평생을 턱에 하얀 무명천을 두르고 다녀야 했다. 턱에 총상을 입어 말을 못 하고, 음식도 제대로 씹지 못해 힘들게 살았다. 친척이 살고 있는 지금의 월령리 집으로 이사해 살았다. 사람들은 이름 대신 ‘무명천 할머니’라 불렀다.
--- p.211
한담리는 바닷가 풍경을 보기 좋은 곳이어서 많은 찻집들이 바닷가 따라 즐비하다. 그곳 해안도로는 용담해안도로와 함께 여행객들이 드라이브를 하기 좋아하는 코스다.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장한철은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겠지. 그의 생가 주변에 조성된 산책로는 그가 글공부를 하다가 가끔 산책을 했을 법한 길이다. 제주도에는 걷기 좋은 곳이 많지만, 한담의 장한철 해안산책로는 제주의 바다 풍광을 오롯이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 p.275
제주에서는 남방큰돌고래를 곰세기 혹은 수애기라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남방큰돌고래도 사투리를 쓴다는 것이다. 사는 해역마다 초음파가 다르기 때문이다. 해녀가 물질할 때 남방큰돌고래를 마주칠 수 있다. 그럴 때는 해녀들이 물 밖으로 나가 “물 알로! 물 알로!”를 외친다. 그러면 돌고래들이 물질을 하는 해녀들 밑으로 더 내려가 피해서 지나간다. 해녀와 돌고래의 공존을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중략) 정말 남방큰돌고래를 사랑한다면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일단 내버려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남방큰돌고래를 통해 제주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생각하게 한다.
--- pp.280-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