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년, 크리스마스에서 며칠 지난 날의 추운 아침, 두 명의 기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목숨을 건 결투를 구경하기 위해 몇천 명이나 되는 군중이 파리의 한 수도원 뒤쪽에 있는 넓은 공터를 가득 채웠다. 장방형 결투장은 높은 나무 울타리로 에워싸여 있었고, 그 주위를 창으로 무장한 위병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열여덟 살의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는 결투장 한쪽에 설치된 호화로운 관람대에서 신하들과 함께 앉아 있었고, 결투장 주위에는 엄청난 수의 구경꾼들이 운집해 있었다.
전신 갑옷으로 몸을 감싸고 허리에 장검과 단검을 찬 두 기사는 결투장 좌우 끄트머리에 하나씩 있는 육중한 출입문 바로 앞에 거치된 왕좌를 닮은 의자에 앉은 채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출입문 옆에서는 각자의 종자들이 흥분해서 말굽을 구르는 군마의 고삐를 잡고 대기 중이었고, 결투를 할 기사들이 방금 선서를 마친 곳에서는 사제들이 제단과 십자가를 황급히 치우고 있었다. --- p.11
흥분한 군중의 시선은 두 용맹스러운 기사와 화려하게 치장한 신하들을 거느린 젊은 왕뿐만 아니라, 한 여성을 향해 있었다. 젊고 아름다운 그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 상복을 두르고, 역시 위병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검은 천으로 뒤덮인 높다란 처형대에 홀로 앉아 결투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군중의 시선을 느끼며, 곧 시작될 시련에 대비해서 마음을 굳게 다지려고 노력하며 그녀는 평평하게 다져진 넓은 결투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운명이 피로 각인될 장소를.
만약 이 결투 재판에서 그녀의 챔피언이 적수를 죽여 승리를 거둔다면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가 죽임을 당해서 결투에 진다면, 그녀는 거짓 선서를 한 죄로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 p.12
장 드 카루주는 가차 없고 야심적이며 무자비하기까지 한 사내였고, 목적 달성을 방해받는 경우는 쉽게 격앙했으며, 한번 원한을 품으면 오랫동안 잊지 않았다. --- p.29
자크 르그리는 거구의 굴강한 사내였고, 강인한 완력과 강철 같은 악력의 소유자로 이름이 높았다. --- p.39
르그리는 결혼해서 여러 아들을 낳았다. 그런 그가 툭하면 외간 여자에게 지분거리는 버릇이 있는 호색한이었으며 (중세의 종기사나 성직자에게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피에르 백작이 정부들과 벌이는 난잡한 연회에도 곧잘 참가했음을 시사하는 기록도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 p.39
자크 르그리와 장 드 카루주는 오래전부터 친분을 쌓아왔고, 피에르 백작의 봉신이 되었을 무렵에는 깊은 우정과 신뢰로 맺어진 사이였다. 카루주는 아내인 잔이 아들을 낳자 자크에게 아들의 대부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은 중세에서는, 특히 귀족 사회에서는 크나큰 명예로 간주되었다. 대부는 실질적으로 가족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갓난아기의 무방비한 영혼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빠른 시기에 행해지던 유아세례에서 자크는 갓난아기를 안고 침례반 앞에 섰다. 사제가 성수에 카루주의 아기를 담그자 르그리는 악마로부터 아기를 지키고, 향후 7년 동안 이 아기를 “물과, 불과, 말발굽과, 사냥개의 이빨”로부터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 p.39
이 재회의 배경에 무엇이 있었던 간에, 다음 순간에는 그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살갑게 르그리를 포옹한 장 드 카루주가 아내인 마르그리트를 돌아보더니 화해와 우정의 표시로 르그리에게 입을 맞추라고 명했던 것이다. 축연을 위해 보석으로 치장하고 흐르는 듯한 길고 우아한 가운을 입은 마르그리트는 앞으로 걸어 나가 자크 르그리에게 인사를 건넨 후 당시 관습대로 그와 입을 맞췄다. 현존하는 기록에 의하면 먼저 입을 맞춘 사람은 틀림없이 마르그리트였다. --- p.68
강간을 둘러싼 정황은 증인이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법정에서 강간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극히 힘들었다. 특히 중세 프랑스의 경우,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간에 남편이나 아버지, 또는 남성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피해 여성은 범인을 고소할 수조차 없었다. 따라서 강간 피해자는 그 사실을 밝혀 보았자 얻는 것은 수치와 불명예밖에는 없다는 범인들의 협박에 굴복해서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 강간 사실을 공개하면 본인이나 가족의 평판이 땅에 떨어질 가능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강간은 이론상으로는 중한 처벌을 받는 중죄였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처벌을 받지도 않고, 고소당하지도 않고, 보고조차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 p.115
마르그리트는 고백을 마친 후 남편의 명예를 위해서 복수를 해 달라고 간청했다. 마르그리트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남편의 명예와 명성이 유지되든 실추되든 간에, 앞으로는 자신도 남편과 무조건 같은 길을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결혼에 의해 이미 부부가 되었지만, 지금부터는 그보다 훨씬 더 긴밀한 운명 공동체가 되어 바깥세상에 대처해야 했다. 봉건법에서 이런 범죄를 고발할 경우, 남편의 지원과 변호가 없으면 아내인 자신에게는 아무런 법적 권리도 없다는 사실을 마르그리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20
국왕에게 직접 항소하기 위해 파리에 도착한 카루주는 대담하며 지극히 이례적인 제안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 p.132
르그리는 자신이 마르그리트를 강간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고, 이 터무니없는 고발의 원인 제공자로 마르그리트의 남편인 카루주를 지목했다. --- p.175
이번 소송은 “정말로 엄청나고 힘들고 위험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데다가, 카루주는 르그리를 고소함으써 자기 자신의 “영혼과 육체와 부와 명예”를 통째로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있기 때문이다. --- p.181
의뢰인인 르그리에게 불리한 사항 중 하나로 르코크는 “카루주의 처가 실제로 그런 범죄 행위가 일어났다는 주장을 단 한 번도 꺾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전면적인 부인과 알리바이와 온갖 종류의 반론에 직면하면서도, 마르그리트가 내놓은 증언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변호사인 그조차도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큰 감명을 받은 듯하다. --- p.192
이번 결투와는 개인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는 관중들은 딱히 어느 쪽 편을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그날 시합장으로 결투를 보려고 온 단순한 구경꾼들에게 이번 결투는 최근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희귀한 이벤트였고, 화려한 행사와 노골적인 폭력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층 더 띄워 줄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물론 그중 일부가 마르그리트에게 동정했던 것은 틀림없지만, 대다수는 추운 아침 공기 속에서 황당무계한 소문이나 악의적인 가십으로 불을 지피며 곧 시작될 결투와 그 뒤에 있을지도 모르는 화형식이라는 엄청난 볼거리에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있었다. --- p.236
결투 재판이 구경꾼들의 환호나 야유가 난무하는 시끌벅적한 오락이 아니었다는 점은 명명백백하다. --- p.242
복잡한 규칙과 의식들은 공정한 결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무엇도 운에 맡기지 않았다. “물론, 결투의 결과는 제외하고” 말이다. 결투자들이 지참한 무기의 길이가 같을 필요가 있었던 것처럼, 두 사내들 자신도 대등한 입장에 설 필요가 있었다. 장 드 카루주는 기사였지만 자크 르그리는 종기사에 불과했다. 그런고로, 르그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시합장으로 갔고, 기사 서임을 받기 위해 의전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 p.243
“오 지금 내가 손을 마주 잡고 있는 그대, 자크 르그리여, 나는 성스러운 복음과 신이 내게 내려 주신 신앙과 세례에 걸고, 그대를 향한 나의 언동이 진실이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했던 언동 역시 진실이며, 사악한 그대의 대의와는 달리, 그대를 소환한 나의 대의가 선량하고 정당함을 이 자리에서 맹세하노라.”
적수와 여전히 왼손을 마주 잡은 채로 자크 르그리는 대답 했다. “오 지금 내가 손을 마주 잡고 있는 그대, 장 드 카루주여, 나는 성스러운 복음과 신이 내게 내려 주신 신앙과 세례에 걸고, 나를 소환한 그대의 대의는 사악하며, 내게는 나 자신을 지킬 선하고 성실한 이유가 있음을 이 자리에서 맹세하노라.” --- p.249
일단 결투가 시작되면 기사도 정신은 소멸하기 마련이었다. --- p.260
경악한 기색이 역력한 르그리를 향해 돌진하면서, 카루주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목청이 찢어져라 절규했다. “오늘, 여기서, 우리 다툼을 완전히 끝내자고!” --- p.271
“자백해! 네 죄를 자백하라고!”?르그리는 한층 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면갑의 죔쇠를 풀려는 카루주의 시도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와중에도 자기 죄를 인정하기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처럼. --- p.273
장 드 카루주와 자크 르그리 사이에서 벌어진 목숨을 건 결투에 관해 언급하자면, 이것은 파리 고등법원이 허가한 최후의 결투 재판이 되었다.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결투의 결말은 결투 재판이라는 제도의 종말을 한층 더 앞당겼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이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의 일부와, 후세의 많은 사람들은 결투 재판을 중세에서 가장 야만적인 사법 관행의 하나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카루주-르그리 결투가 있은 뒤에도 파리 고등법원으로 결투 재판을 허가해달라는 상고가 몇 번 올라왔지만, 법원이 결투를 허가한다는 정식 결정을 내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 p.304
우리 세계가 그런 장관을 다시 목격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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