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한 우주의 에너지를 받아, 개망초는 개망초대로, 별꽃은 별꽃대로, 엉겅퀴는 엉겅퀴대로,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을 위해 자기 존재를 아낌없이 선물로 내어주는 그 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사뭇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면서 나는 이 책을 써 내려갔다.
--- p.8, 「들어가는 글」 중에서
개망초 꽃 만발한 농로를 산책하다가 꿀 채집을 나온 벌들의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홀로 걸어도 적적하지 않아서 좋다. 개망초의 꽃말이 ‘화해’라는데, 이 꽃말처럼 논밭가에 핀 수수한 개망초 꽃들을 보면 흰 수건을 쓰고 밭둑을 거닐던 어머니를 만난 듯 기쁨과 위안을 얻곤 한다. 바람이라도 불면 흔들리는 흰 꽃들은 들판을 온통 환하게 밝히는데,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해진다.
--- p.42, 「개망초」 중에서
해 질 무렵, 우리 집 셰프가 불러서 부엌으로 들어가니 내가 뜯어다 준 꽃다지로 요리를 해놨더라. 식탁에 차려놓은 요리를 보니 ‘꽃다지비빔국수’. 요리 실험을 즐기는 셰프 덕분에 오늘도 새로운 요리를 맛보았다. 양념에 고추장과 땅콩을 집어넣어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봄 요리를 먹고 난 후 문득 든 생각. 봄에 나는 것들을 먹으면 비로소 몸에 봄이 온다. 겨우내 애타게 기다린 봄, 오늘 내 몸에 깃든 연두가 입을 열어 ‘당신 몸에도 봄이 왔다’고 일러준다.
--- p.49, 「꽃다지·광대나물」 중에서
일본 자연농법의 대가인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다르다. 그는 고대인들의 지혜가 깃든 삶을 알뜰살뜰 보듬고 사는 진정한 농부처럼 보인다. “농사는 자연이 짓고 농부는 그 시중을 든다.” 후쿠오카의 멋진 농사 철학이 담겨 있는 말이다. 어설픈 농사꾼이지만 나도 자연이 짓는 농사에 시중 드는 농부로 남은 생을 살고 싶다. 그것이 참 존재인 흙을 닮아 참 사람이 되는 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 p.85, 「흙과 지렁이」 중에서
토종 민들레가 점차 사라지고 서양민들레의 세력이 넓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두 종이 서로 다퉈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식물은 다투지 않는다. 그런 현상의 중심에는 인간의 욕심과 그로 인한 환경 파괴가 있다. 인간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고 땅을 메워 공터를 만드는데, 그 공터가 자연스레 번식력이 좋은 서양민들레의 차지가 되기 때문이다.
--- p.91, 「민들레」 중에서
별꽃이야말로 땅 위의 별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풀꽃이다. 흔하디흔해서 더욱 귀한 풀꽃이다. 사람이든 잡초든 진정으로 위대한 별은 홀로 우뚝 솟아 있지 않다. 멀리 있지도 않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 p.134, 「별꽃」 중에서
사람이 사는 곳엔 어디든지 괭이밥이 있다. 지난여름 서울에 사는 친구의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주변을 산책했는데, 아파트 주변에도 괭이밥이 돋아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후 나는 괭이밥을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는 풀’이라고 명명했다. 사람 곁에 머물며 아픈 이들을 치유하는 괭이밥.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며 치유 에너지를 한껏 분출하는 그 ‘창조적 자발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p.152, 「괭이밥」 중에서
인동, 매혹적인 향기와 뛰어난 약성 때문에 많은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식물이 아니던가. 그런 광경을 보면 혈연의 죽음을 보듯 한없이 마음이 아프다. 어떤 생태학자의 보고에 따르면, 지구의 식물 종이 하루 한 가지씩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식물들이 사라져버리면, 지구 위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약을 구한단 말인가.
--- p.175, 「동물의 지혜」 중에서
죽 한 그릇을 비웠을 뿐인데 포만감이 밀려왔다. 약성이 뛰어난 신비로운 비단풀로 만든 죽이기 때문이리. 어떤 식물학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내면의 빈자리, 식물만이 채워줄 수 있는 빈자리를 비단풀이 채워주었기 때문이리.
우리는 이 빈자리를 채우지 않으면 반쪽짜리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비단풀을 뜯으면서도 연실 ‘고마워’ ‘미안해’라고 중얼거렸지만, 우리는 다 먹고 난 빈 죽그릇을 앞에 두고도 감사의 비나리를 바쳤다.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는 인도의 속담처럼 땅별의 동반자인 그대가 없으면 인간이 치유될 수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 온전해질 수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없으므로!
--- p.195, 「비단풀」 중에서
아버지의 특별한 행보를 몇 년째 곁에서 지켜보며 그 꾸준함에, 관찰력과 창조력에 존경을 표한다. 아버지의 발걸음은 야생초와 점점 닮아간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아마도 지금이 단단한 흙에 뿌리를 박은 채 예쁜 꽃과 열매를 맺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수수하지만 멋들어진 야생초 꽃과 열매처럼 말이다. 매일 동네를 산책하시며 손에 그날 먹을 식재료인 야생초를 뜯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먹음직스럽고 푸짐한 잡초비빔밥을 내놓을 것이다. 눈을 열어 깨어 있는 삶을 실천하시는 부모님이 있기에 늘 마음 한편이 든든하다.
--- p.269, 「나오는 말, 고은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