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와 강희안 그리고 유박의 삶에서 꽃과 식물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들이 출세하거나 재물을 모으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 건 물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데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꽃과 식물 덕분에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었다는 걸, 이렇게 미래에서 그들의 인생 전체를 바라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조선 선비의 원예 생활」 중에서
도대체 몇백 년 전 남녀의 사랑 노래에 영국 사람들은 왜 이 식물들을 등장시켰을까요? …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 타임은 각각 ‘승리’, ‘가정적’, ‘추억’, ‘행동력’을 뜻하는 식물입니다. 따라서 남자는 이 식물들의 이름을 거듭 말하면서 자신을 차 버린 여자에게 다시 또 만나고 싶은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싶었던 겁니다.
--- 「영국의 원예 문화」 중에서
카렐 차페크가 정원에서 키운 식물들은 과일이나 채소, 혹은 약초를 얻기 위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돈벌이와는 상관없이 그저 보고 즐기기 위한 제철 식물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리 힘들게 일을 하고 투덜대면서까지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키웠을까요?
--- 「원예의 수고로움: 카렐 차페크와 데릭 저먼의 정원」 중에서
어릴 적 자신의 식물을 갖고, 이름을 지어 주고, 쓰다듬어 주고, 물을 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식물과 교감하며 얻는 경이로운 경험이야말로 아이가 커 가며 겪을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요? 아이의 삶이 그렇게 나아가길 바라고, 그런 아이들의 도움으로 저 또한 아이의 마음을 되찾고 싶기에 저는 오늘도 한 손에 식물을 들고 아이들에게 다가갑니다.
--- 「어른의 마음, 아이의 마음」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일상에서 남자 어른이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대부분 여자 어른과 함께 지냅니다. … 아이들에게 읽어 주는 그림책에서도 아빠의 존재감은 미미합니다.
--- 「유치원의 남자 어른」 중에서
앞으로도 제 수업은 끊임없이 바뀌어 갈 겁니다. 저는 나이를 먹으며 계속 눈높이가 바뀔 테고, 시대가 달라지면서 아이들 또한 계속 바뀌어 갈 테니까요. 하지만 그 모든 게 바뀌더라도 그때그때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변치 않고 싶습니다. 그리고 “철수야, 너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야”, 이 말만큼은 “너는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야”라는 말을 들으며 주눅들어 있을, 제가 만나는 모든 ‘철수’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 「아이와 함께 자라는 수업」
터키어로 가을(sonbahar)은 최후(son)의 봄(bahar)이라는 뜻입니다. 가을날 아이들과 함께 국화를 심으며 올해의 마지막 봄이란 생각을 하니 쓸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늘의 태양은 늘 그대로이고, 봄은 또 돌아올 테니까 서운하지는 않습니다.
--- 「최후의 봄에」 중에서
먼 옛날 수선화는 지중해 연안의 혹독하고 거친 환경에 놓여 있었지만, 양분을 모아 알뿌리를 살찌우고 새끼 알뿌리를 만들어 내며 지금까지 버텨 왔습니다. 은서 또한 지금 어디선가 뜨거운 햇볕을 쬐고 거친 바람을 맞으며 힘들게 버티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어려움이 양분이 되어서 은서의 삶을 지탱해 줄 튼튼한 알뿌리가 만들어질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 그러고 보면 알뿌리식물의 진짜 매력은 그 어느 하나 부족함 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온갖 세상 풍파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밤톨처럼 단단한 알뿌리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개예쁘고’ 단단한 알뿌리식물」 중에서
마리골드는 인간의 눈에 짧아 보이는 자신의 삶을 결코 슬퍼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을 부지런히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이의 시간’을 보낼 때는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어른의 시간’을 보내면서 잊어버린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제 ‘아이의 시간’은 지금 어디로 가 버렸을까요?
--- 「식물의 시간, 나의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