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문화인류학의 매력은 뭐라고 해도 “열려 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 먼저 “학문으로서 열려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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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다른 문화를, 문화의 다양성을, 그리고 인간을 더욱 잘 알려고 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문화인류학의 정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도네시아 사회를 연구하는 아오키 에리코?木?理子는 문화인류학을 “우리가 알고 있는 자명성自明性의 구조를 흔들고, 자명성이라는 정치적인 힘에 의해 은폐되거나 배제되고 있는 것을 드러내며, 인식을 재구성해나가는 운동”이라고 정의했다(?木 2006: 40).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문제시하고, 당연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꿔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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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둘러보면 사실 트랜스젠더는 특수한 사람이 아니다. 문화인류학에서는 일찍부터 트랜스젠더 같은 사람들을 “제3의 성”으로 다루어왔다. 예를 들어, 인도의 히즈라hijra, 타이티의 마후mahu, 멕시코의 무셰muxe 등이 있다. 이들은 성기, 옷차림, 행동거지, 직업에 있어서 여성도 남성도 아닌 히즈라, 마후, 무셰라고 인정받는다. 이곳에서 성별은 결코 두 가지가 아니며, 이들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성별을 가진 사람들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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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이 온전히 빠져 있는 문화를 “당연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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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는 대체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과는 달리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원칙적으로 결혼하더라도 여성이 성을 바꾸는 일이 없고, 누구를 같은 집안으로 볼 것인가라는 친족관계도 동아시아의 지역마다 전혀 다르다. 같이 식사하자고 해놓고 각자 밥값을 내는 것을 매너 없는 행동으로 간주하는 사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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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족학박물관의 초대 관장이었던 우메사오 다다오梅棹忠夫는 “인류학은 어른의 학문이면서 동시에 어른이 되기 위한 학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梅棹 1974: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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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는 머나먼 현장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옆에도 있다. 타자란 내가 아닌 사람, 따라서 절대로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며, 타자는 종종 나의 맹점과 급소를 찌른다. 살아 있는 한, 타자이해의 과정은 끝이 없고, 타자의 잣대에 비춰 본 나에 대한 이해도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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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중에는 사극도 인기인데, 이것은 양반에 대한 끊이지 않는 관심과도 관계가 있다. 양반의 규모는 많이 잡아도 인구의 5퍼센트 이하에 불과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양반의 자손임을 주장하는 문중이 전체의 약 90퍼센트에 이르렀으며, 양반다움을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것을 “양반화yangbanization”라고 한다(Lee 1986 末成 1987 仲川 2008). 이 과정에서 많은 적든 서민들도 서민적인 것을 꺼리게 되었고, 자기 정체성을 양반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 p.77~78
최근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이끈 마오쩌둥(1893~1976)도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때, 택시 운전사 등이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운전석에 걸어두고 부적으로 삼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마오쩌둥은 혁명을 성공시키기도 했지만,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등의 정치적 혼란도 초래해 수천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사건의 발단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이처럼 장단점을 모두 가진 점이 사람들을 강하게 사로잡아 그를 신격화하게 된 것이다.
--- p.101
중국은 다민족 국가로, 다양한 민족들로 이루어졌다. 지금의 중국은 같은 민족 안에서도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있어서, 부유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도 조상을 찾아 올라가면 모두 한 명의 인물한테서 나온 자손이라는 발상은 국가를 단합하는 데 효과적이다. 바꿔 말하면, 현대 중국에서는 그만큼 하나의 국가로서의 단결이 필요한 셈이다.
--- p.107
일반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상은 어떨까? 그것은 “양처현모良妻賢母”일 것이다. 한국과 중국에도 각각 “현모양처”와 “현처양모”라는 똑같은 가치관을 나타내는 말이 있다. 양처현모라고 하면 전통적인 유교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은 유교에서 나온 단어가 아니다. 이것은 메이지시대에 여성이 자녀를 낳고 기름으로써 가정의 연장延長인 국가를 위해 공헌하도록 하는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그러나 1945년 이후 각국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이념상으로 재해석되어 계속 사용되고 있다(陳 2006).
--- p.129
대만 동해안에 어업 종사자로 일하러 온 중국인의 대다수는 대만한인들의 고향인 푸젠성과 민난 지방 출신이다. 대만 한인과는 서로 민난어로 대화하며, 연중행사나 앞서 소개한 혼약식이나 결혼식을 비롯한 관혼상제 등에 있어서 민난적인 민속문화를 대체로 공유하고 있으며, 민난계 한인과 서로 가까운 연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와의 연계, 정치적인 관계성을 앞에 두고서는 양자 사이의 사회관계의 거리가 멀어진다.
--- p.156~157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제국 일본”이라는 말을 들어도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일본 식민주의의 역사를 이제 잊어버려도 좋은지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p.186
어떤 국민국가의 일원이더라도 그 나라의 다수를 구성하는 민족과는 다른 역사적·문화적 배경, 나아가 다른 정체성identity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블루스 가수인 아라이 에이치新井英?(한국식 이름은 박영일이다.)의 아버지는 한반도 출신이며, 어머니는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본인은 1950년 3월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고, 36살 때는 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의 청하淸河군(현재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일부를 관할하던 옛 행정구역)을 방문해 자신의 뿌리를 확인했다. 그후, 일본에서 가족과 생활하기 위해 일본 국적을 취득했으며 자신을 “코리안 재패니즈”라고 부르고 있다(野村 1997: 342~367). 현재는 아라이 에이치처럼 일본 국적을 가지면서도 독자적인 혹은 중층적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 p.197~198
아이누족은 아이누어로 “사람이 사는 대지大地”를 뜻하는 아이누모시리アイヌモシリ, 즉 현재의 홋카이도와 그 주변 지역에 오래전부터 거주해온 일본의 선주민으로, “아이누”란 아이누어로 “사람”을 의미한다. 수렵채집·어로·잡곡재배에 의존하면서도, 중세·근세에는 대륙 북방의 여러 민족이나 일본열도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本{州 이남의 일본인과도 교역을 활발하게 펼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왔다(?川 2007). 1869년, 메이지 정부는 아이누모시리를 “홋카이도北海道”라고 명명하고 일본의 영토에 포함시켰다. 이로 인해 아이누족은 토지를 빼앗겼고, 일본열도로부터 이주자가 늘어나자 소수자가 되어 차별을 당했다.
--- p.209~210
문화적 소수자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의 여러 소수자에 대해서도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일본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는 여전히 주변의 이해를 얻기 어려우며 크고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입장에 따라서 직면하고 있는 곤란이나 문제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최근에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인 “LGBT”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다수자에 대항해 연대하고 자신들에 대한 이해나 공감을 얻으려고 활동하고 있다(제4장 참조).
--- p.215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면 특별한 재능과는 관계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부모님은 멕시코인과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다가, 현재는 일본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부모도 세계 각지를 전전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어디에서 살지 모르며, “모국이 어디입니까”라고 물어도 대답하기 어렵다고 한다.
--- p.249
하지만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대만 동부와 야에야마 사이에는 국경선이 그어졌고, 직접적인 왕래는 법률상 불가능하게 됐다. 그렇더라도 실제로는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하는 밀무역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왕래가 이루어졌다. 오키나와에서는 재일미군在日美軍 기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담배, 캔, 총탄 등)이, 대만에서는 사탕 등의 일용품이 교환됐다(小池 2015). 밀무역은 종전 직후부터 1949년까지 활발하게 이뤄졌으며, 오키나와가 미국의 통치 아래 들어간 1951년에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 p.261
한국인 관광객이 대거 방문하게 된 대마도는 어떨까? 한국에서 단시간에 올 수 있는 대마도에는 연간 20만 명이 넘는 한국인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1년 내내 크고 작은 단체 관광객이 바다와 산에서 레저를 즐기거나 면세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말이나 연휴 철이 되면 인구 3만 명 정도의 대마도 이곳저곳이 한국인 관광객으로 가득 찬다. 일상생활 속에 관광객이 끼어들게 된 것이다.
--- p.315
몽골에서 고기의 일반적인 섭취 방법은 소금을 치고 삶은 것을 각자가 손에 칼을 들고 잘라 먹는 것이다. 고기를 삶을 때 나오는 즙은 수프로 마시거나 우동의 맛국물로 활용하기도 한다. 내장도 기본적으로는 소금을 쳐 삶아 먹는다. 피는 밀가루나 야생 양파류 등과 섞어서 순대(돼지 창자에 비계와 선지를 많이 넣어 만든 블러드 소세지blood sausage)처럼 만들어, 마찬가지로 소금을 치고 삶아서 먹는다. 특히 순대는 막 도살한 가축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진미로, 손님을 접대하는 잔치에는 양을 도살해서 준비해야 하는 일품요리다.
--- p.340
현재의 중국이 광대한 소수민족 지역을 포함하게 된 원인은 청나라의 정복 활동 때문이다. 청나라 황제의 황위皇位는 명나라의 중화황제가 아니라 원나라의 몽골 대칸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내몽골과 외몽골, 티베트, 신장에 대해서 청나라 황제는 몽골 대칸의 자격으로 통치했다. 이 때문에, 1911년에 신해혁명이 일어나 손문孫文이 “중화민국”의 총통에 취임했을 때, 이 지역의 사람들은 손문을 자신의 군주였던 몽골 대칸 자리의 계승자로 인정하지 않은 채 독립을 이루고자 했다.
--- p.367~368
이 책의 원제목은 “동아시아로 배우는 문화인류학”이다. 하지만 번역서의 제목은 “문화인류학으로 보는 동아시아”로 했다. 그 이유는 각 장의 저자가 문화인류학적인 관점과 방법으로 동아시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해석한다는, 이 책의 특징과 목적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 p.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