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경제사라는 학문은 사회과학의 한 부문이며, 인간의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고 할지라도, 어떤 특정한 관점에서의 인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간과하고서, 경제사의 서술 속에서, 고금(古今)의 훌륭한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인간성(人間性)의 기미(機微)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학문적인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가치판단 기준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p.15
마르크스가 경제적이라 할 때, 베버라면 정치적으로 부르는 그런 것도 포함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의 경제적 구조(혹은 경제적 사회 구성)라고 하는 것은, 마르크스 경우에는 두드러지게 경제적인 것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만, 베버 경우에는 계급상황이나 신분상황을 매개로 삼아 정치적인 것 속에 편입되어버리는 것이지요.
--- p.107
이제 여기까지 오게 되면 마르크스와 베버 사이에 있는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맞는가 하는 것은, 여기서는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부디 이런 것만은 한 번쯤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로마제국에 기독교가, 현대 중국에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들어와서, 민중(民衆)을 사로잡는다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각각 그 후의 역사는 아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론화하는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어떤 사상이 민중을 사로잡는가 하는 것은, 역시 그 후의 역사 흐름에 결정적인 차이를 불러오게 되므로, 사상이랄까 이념이라 할까요, 그런 것이 역사에서 갖는 무게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역시 맞지 않겠습니까. 세계관의 문제를 떠나서도, 그 점만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에 서 계신 분들도 한 번 생각해봐 주셨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 p.126~127
로빈슨 크루소는 대체 어떤 타입의 행동양식을 하는 인간, 다시 말해서 어떤 인간 유형으로 그려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분명히 지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입니다.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경제적인 잉여를 최대한으로 할 뿐만 아니라 재생산 규모를 점점 더 크게 해간다는 방향을 향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입니다. 흥하던가 망하는 식의 모험가 같은 모험으로, 요행(僥倖)을 목표로 행동하는 그런 타입의 인간은 아닙니다. 면밀한 계획을 세워서 장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하면서 행동하는 타입의 인간, 그야말로 경영자(經營者)입니다.
--- p.153~154
인간을 이념적으로 순수화해서 파악해보면, 그것이 다름 아닌 고전파 경제학이 전제로 삼았던 ‘경제인’이 되지 않을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제인’에 대해서 한마디 더 덧붙여둔다면, 영국에서 세계사에서 최초의 산업혁명을 그 두 어깨에 짊어진 그런 ‘경제인’은, 단순히 돈벌이만을 잘하는 단순한 기업가는 아니며 더 높은 비전을 가진 ‘경영자’였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저 돈벌이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경영자’는 아니며, 그런 단순한 기업가만으로는 영국 국민경제 번영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 p.176
다양한 종교 안에 내포된 종교윤리와 그것에 밀착해 있는 사회비판 또는 사회학설 분석에서 시작해서, 각각 사회의 기본적 구조를 궁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설명해가게 되면, 베버가 취한 방법은 의외로 마르크스 그것과 서로 겹쳐지는 곳이 있을 듯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양자 모두 이른바 유럽 사상사의 거대한 조류라고 해야 할까요, 문화 조류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 속에서 생겨난 것으로, 큰 뿌리가 본래 같으므로 당연히 그런 것이 있었으며 또 그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 p.190~191
베버는 앞에서 잠깐 말한 것처럼, 퓨리터니즘 윤리는 자본주의 정신의 탄생과 관련해서 크게 힘을 발휘했다는 유명한 견해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런 식으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프로테스탄트는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오로지 신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기에 점점 더 도덕적으로 질질거리게 되어, 예전에는 가톨릭교회가 금지하고 있던 돈 모으기를 허용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톨릭 측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견해입니다만, 베버는 그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거꾸로입니다.
--- p.239
경제학이라기보다 정확하게는 경제학 비판이 문화통합 원리라고나 할까, 역사 과정의 전체로서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원리로 생각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원리를 제공했다는 것은, 확실히 사회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의 두드러지게 훌륭한 점 중 하나이며 매력이 되기도 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 p.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