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정원에 넝쿨과 잡초가 다시 무성해져 밀림으로 회귀하려는 조짐이 온 사방에서 감지된다. 한때 자유민주정체와 자본주의라는 발전의 길에 세계 모든 나라와 국민이 합류하리라고 기대했지만, 지금도 독재체제가 번성하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오늘날 러시아 독재자와 유럽의 미래 독재자들은 비자유주의적 성향을 자랑스럽게 과시하고, 중국의 지도자는 마오쩌둥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국이 세계의 본보기라고 내세우고 있다. 한때 경제적으로 성공하면 결국 국민이 정치적 자유화를 요구하게 된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독재체제(autocracy)는 억압적인 정부와 딱히 양립 불가능하지는 않은 국가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한때 지경학(geoeconomics)이 지정학(geopolitics)을 대체했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세계는 19세기 말과 20세기의 지정학과 아주 유사한 지정학으로 회귀하고 있다. 한때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겼던 영토쟁탈이 유럽에 귀환하고 있고 아시아에도 귀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해동포적이고 서로 연결된 시대에 민족국가는 한물간 과거라고 점점 믿게 되었지만, 민족주의와 부족주의가 다시 부상하면서 인터넷이라는 경이로운 신세계에서 그 입지를 공고하게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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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보다 인류가 처한 여건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받아들이거나 세상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역사상 미국 말고 그 어떤 것에 대해서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낀 나라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주저하지 않고 자국의 협소한 국익을“우선시”한다.
미국은 이런 면에서 매우 비정상적이었다. 비정상적인 자유주의 질서를 보존하기 위해서 도덕적, 물질적으로 대단한 책임을 기꺼이 감수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미국이 앞으로도 계속 그런 책임을 져야 할지에 대해, 그렇게 함으로써 여전히 실보다 득이 많을지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해서“고립주의자”는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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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일본이 지정학적으로 경로를 수정하면서, 궁극적으로 두 나라는 소련의 흥망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낳았다. 미국은 일본 헌법 9조 첫 단락에, 일본은“국가의 주권 행사의 수단인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고 국제분쟁 해결의 수단으로서의 위협이나 물리력 사용을 포기한다.”라고 못 박았다. 독일의 경우 서독은 미국과 연합군의 점령하에서, 그리고 동독은 소련의 점령하에서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인 주체로 활동할 권리를 포기했다.
이로써 일본과 독일이 과거의 행동 양식으로 돌아갈 선택지가 사실상 배제되었다. 미국이 자국의 힘을 이용해 두 나라에서 “비무장과 민주정체의 채택”을 강제하지 않았어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을지는 의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이 완전히 철수했다면 두 나라가 어떤 길을 택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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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민주정체가 쇠락하고 있었다. 그 이전 5천 년 동안에는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았듯이 말이다. 1989년 후 우리는 민주정체를 인류의 자연스러운 진화의 일환으로 여기게 되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민주정체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도처에서 유지되어온 까닭은 새로 비옥한 토양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 아니다.
민주정체가 확산되고 지속된 까닭은 이를 정성들여 가꾸고 뒷받침했기 문이다.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규범을 통해, 국제적인 압력과 이러한 규범을 준수하게 만들 유인책을 통해,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 같은 유주의적 기구 가입을 의무화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은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합류한 지역이라는 사실 덕분에, 세계 최강대국이 보를 보장해준 덕분에, 그리고 그 최강대국이 하필 민주국가라는 사실 덕분에 민주정체의 확산과 지속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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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밀림이 다시 울창해지고 있다는 징후가 사방에서 감지된다. 역사가 돌아오고 있다. 나라들은 과거의 습관과 전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한 습관과 전통을 조성하는 막강한 힘들이 작용하고 있다. 불변의 지리적 위치, 공유하는 역사와 경험, 이성을 무색케 하는 영적, 이념적 신념이 그러한 힘이다. 나라와 국민은 본연의 유형으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러시아는 1958년, 1918년, 혹은 1818년의 러시아와는 다르지만, 러시아인들이 지닌 지정학적 야망과 불안감, 유럽과 서구 진영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 그리고 심지어 그들의 정치조차 변하지 않았다. 과거 수 세기 동안 역내 패권 국가였고 19세기 초를 시작으로“굴욕의 세기”를 겪은 중국의 과거가 오늘날 중국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란의 야망이 이슬람과 페르시아라는 과거 뿌리에서 비롯되었듯이 말이다. 우리는 늘 국가들이 밟는 궤적에서 급격한 변화를 찾고 기대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그렇게 극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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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이반 크라스테프는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를 한다.“ 히틀러가 귀환하는 게 가능한지 여부는 더 이상 의문이 아니다. 그가 나타나면 우리가 그를 알아볼 수 있을지가 문제다.” 그러나 이는 농담이 아니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이가 완전히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부상할 때까지 우리는 우리들 사이에 숨어 있는 히틀러나 스탈린을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위험한 사람들은 어딘가에 늘 도사리고 있고 그들의 운명을 성취할 권력과 기회만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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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점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새로운“현실주의”의 조언을 거부하고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지원을 재개한다면, 여전히 이 질서를 수호하고 어쩌면 붕괴되는 시기를 어느 정도 상당 기간 늦출 역량이 미국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질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적대감과 이전 행정부들의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뒷받침하는 국제적 구조는 내구력이 있다. 그 이유는 여전히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호의적인 힘의 배분과 지리적 현실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자유주의적 가치가 공격을 받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세계의 민주적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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