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들을 조찬에 초대한 박정희 대통령이 비장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들께서 혹시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해 주십시오.” 박정희를 바라보고 있던 유학생 일행이 일제히 김재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미 유학생들은 김재관이 그동안 준비한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김재관은 초조한 마음으로 대통령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그의 손에는 책자가 세 권 들려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책자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넸다. 대통령은 책자의 제목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각하, 철강은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필수이고 기반입니다. 자금이 많이 들어 지금 당장은 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사업입니다. 제가 쓴 계획안입니다. 혹시라도 국가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2. 대한민국의 100년 미래를 준비하다」중에서
(KIST 초대 소장 최형섭은) 미국 전역에 흩어진 한국 출신 연구원들을 만나러 다녔다. 주말도 없이 강행군이었다. 그렇게 해서 1차로 30명을 선발했다. 다시 2차, 3차 인터뷰를 진행한 끝에 최종적으로 18명이 선정되었다.
놀라운 일은, 미국에 있지도 않았던 김재관에게 KIST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느냐고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KIST의 제1호 해외유치과학자 18명 중 미국이 아닌 국가의 유학생은 김재관이 유일했다. 그 배경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다. 다른 과학자들은 모두 KIST에서 선발하고 영입했지만 유일하게 김재관은 박정희 대통령이 최형섭 박사를 통해 직접 불러들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뮌헨에서 김재관을 만난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바로 철강산업. 독일 방문 때 한국에 가장 시급한 철강산업 계획안을 전달한 36세의 유학생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김재관은 제1호 유치과학자가 되었다.
---「3. 홍릉의 과학자들」중에서
일본과의 협상이 다시 시작됐다. 일본 측 철강 전문가들은 최첨단의 전 공정 생산공장 설립을 요구하는 김재관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실제로 철강재 생산의 전 과정을 아는 전문가만이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을 전부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철강공장을 세워야만 장차 독일이나 일본의 철강산업과 어깨를 견줄 수준이 될 수 있었다. 한국에 김재관과 같은 세계적인 철강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에 일본 측은 놀랐고, 결국 김재관의 해박한 철강 지식에 굴복하고 한 발 물러섰다. 김재관의 승리였다.
제철소 공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종합제철 건설 에 관한 우리나라 전문가는 단 한 사람, KIST의 김재관 박사뿐이었다. 조강 베이스 103만 톤, 용광로 1호기, 압연공장, 후판공장 등 초기 주요 시설의 배치 역시 김재관 박사가 직접 포항에 내려가 허허벌판 대지 위에 도면을 보면서 박은 말뚝들이 표준이 되었다.
김재관의 신사업계획은 향후에 500만 톤 이상의 규모로 제철소를 확장할 것에 대비하여 공장 배치를 설계함으로써 새로운 공장을 추가로 건설할 경우에도 기존 공장의 조업이 지장을 받지 않도록 했다. 신사업계획의 공장배치도가 20년 뒤 1989년 시점에서도 별다른 변경 없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훗날 이 분야 전문가들은 김재관 박사가 설계한 포항종합제철소의 계획에 대해서 놀라게 된다.
---「4. 꿈이 현실이 되다」중에서
정주영은 동생 정세영과 함께 정부종합청사로 들어가 김재관 차관보와 마주 앉았다. “정 사장, 정주영 회장께서 우리의 숙원 사업이었던 조선을 시작했으니 정 사장은 우리 고유의 자동차를 만들어 내야 하지 않겠소? 차를 만들자면 우선 금형 값이 많이 들 텐데, 금형 값을 절약하려면 모델을 변경하지 않는 차를 만드세요. 충분한 지원은 못 되더라도 정부가 해 줄 수 있는 지원은 최대한 해 드리겠습니다.”
금속 전문가다운 김재관의 제안이었다. 자동차산업의 핵심은 금형이다. 독일의 명문 대학에서 금속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가의 제안이어서 정주영은 믿음이 갔다. 약속 자체도 구체적이었다. 형제는 김재관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 정주영이 말했다. “차관보님, 우리가 해보겠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해보겠습니다.” 세계를 주름잡을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6. 100년을 내다본 자동차산업 구상」중에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오전에 충북도청 순시를 마치고 충남 당진 삽교천방조제 완공식 현장으로 이동하던 중 갑작스럽게 대덕연구단지 종합상황실을 방문했다.
종합상황실을 나선 박정희 대통령은 느닷없이 한국표준연구소를 향했다. 공식적인 예고나 특별한 경호원도 없이 김계원 비서실장과 차지철 경호실장만 대동했다. 대통령은 김재관 소장에게 연구소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묻고, 관내 연구시설들을 돌아본 후 같이 식사하자며 김재관 소장에게 차에 타라고 했다. 대통령은 연구소 안에서는 이것저것 묻는 말이 많았으나 막상 차 안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다. 대통령은 헤어질 때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김재관의 손을 잡고 얼굴을 한참 보다가 손을 놓고 헬기를 타고 떠났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7. 선진국 진입의 기반, 국가표준」중에서
김재관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대학 재학 중 6·25 동란을 만났고, 1956년 서독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도독, 뮌헨 공대와 데마크 철강에서 철강, 금속학, 재료공학, 공업경영 등을 연구하고 현장 경험을 쌓은 후 한국 산업과 과학계의 발전을 위해 귀국하여 KIST 제1연구실장,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 한국표준연구소 초대 소장 등을 지내며 국가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8. 죽는 날까지 나라 사랑」중에서
박정희 대통령, 정주영 회장과 함께 ‘한강의 기적’을 기획한 김재관 박사. 이 책은 한강의 기적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기획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숨겨진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 100년을 바라보며 기획한 한국의 철강, 자동차, 조선, 그리고 국가표준. 한 과학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음을 이 책은 밝혀 주고 있습니다.
---「추모와 추천의 글, 김명자 전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전 환경부장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