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 수상작 「불장난」 줄거리
소설의 주인공 ‘나’가 아홉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나’의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신입 교사와 사랑에 빠져 재혼한다. 아버지는 담배나 술 등으로 대변되는 어른들의 세상에 아이가 접하지 못하도록 ‘나’의 눈을 가리지만, ‘나’는 자신에게 붙은 아버지의 ‘접근 금지’ 딱지에 오히려 더 큰 흥미를 느낀다. ‘나’는 아버지의 손님들이 집을 방문한 날이면 잠든 척하고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자신이 엿듣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모르길 바라면서도 그런 행동을 멈출 수 없는 스스로가 초라하고 부끄럽다.
어린 ‘나’는 이사한 아버지의 새 집과, 지방에 있는 어머니의 집, 어느 쪽에서도 원하는 바를 얻어 내지 못해서 얕은수를 써야 하는 자신이 수치스럽게 느껴지고 거기서 상처를 받는다.
5학년 때 ‘나’의 반에는 ‘양우정’이라는 아이를 중심으로 한 무리가 숙직실 청소를 도맡고 있었다. ‘나’는 양우정이 가진 냉정함과 평정심을 타고난 여자만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그녀를 선택받은 존재로 여긴다. 양우정은 당시 중학생 오빠들과 어울리며 “날라리 짓”을 하고 숙직실을 함부로 이용한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것은 ‘나’와 친구들에게 야릇하고 오묘한 상상을 하게 했다. ‘나’는 양우정에 대한 소문을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떠들고 넘겨 버리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소문의 진위를 따지려 한다. ‘나’는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모습에 양우정과 중학생 오빠를 겹쳐 보며 숙직실에서 벌어질 일을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상에서 불경함을 느끼며 아무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 자기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화가 난다.
여름방학을 일주일 앞둔 날, 귀가하던 중 ‘나’는 친구들에게 별다른 설명도 않고 홀로 학교 숙직실로 달려간다. 용기를 내서 연 숙직실 문 너머에는 낡은 목재 문이 하나 더 있다.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있던 ‘나’의 눈앞에서 ‘진짜’ 숙직실 문이 열리며 양우정이 등장한다. 열기가 느껴지는 숙직실에는 중학생 오빠들은 없고 양우정과 양우정의 친구들뿐이었다. 양우정과 그 친구들은 거울 앞에서 팝송에 맞춰 가상의 런웨이를 걷고 있다. 처량하고 궁색 맞고 우스꽝스러운 흉내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붉어진 얼굴을 감출 수가 없다. 아이들의 부추김에 옷매무새를 다듬고 거울 앞에 서지만 결국 나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한 채 그대로 숙직실 바깥으로 도망친다.
그 후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된 ‘나’는 방학식 날이 되자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꾀병을 부린다. 그날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안방과 베란다와 거실을 둘러보다 아버지의 라이터를 발견한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새어머니의 메모를 아버지의 라이터로 태우던 ‘나’는 두꺼운 스프링 노트까지 찢어 가며 불장난을 시작하고, 싱크대 개수대에 남겨진 재와 종잇조각이 배수구로 흘러가는 것을 보며 물이 없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정우맨션의 이십오 층 옥상으로 걸어 올라간다. 노트를 찢어 태우는 순간 불길이 허공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 ‘나’는 여름의 오후에, 열기에 열기를 더한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 순간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수치심과 굴욕감, 이물스러움과 꼴사나운 천진함에서 보호받고 있으며 어느 때보다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해 여름, ‘나’는 틈만 나면 옥상으로 올라가 불장난을 했다.
이후 중학교 2학년이 된 ‘나’는 불조심 관련 글쓰기 대회에서 5학년 여름방학 때의 불장난 이야기를 썼다가 학교 대표로 뽑히고, 시 전체에서 은상을 받게 된다. 아이들 앞에서 글을 읽어 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나’는 당황한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토록 열광하던 순간들이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사이 깨달았던 ‘나’는 글을 읽어 보라는 선생님의 채근에 실제 쓴 글과 다른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읊어 댄다. 「불장난」을 다 읽은 후 선생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지만, 그 순간 ‘나’는 세상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고 느낀다. 누구도 가닿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도달했다고. 성의 없는 반 아이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번에야말로 마음껏 의기양양해하며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 우수작 (6편) 소개
1. 강화길, 「복도」
주인공 부부는 재개발이 시작된 지역의 아파트로 이사 온다. 그들의 집인 1단지 100동은 길가 앞에 상자를 쌓아 둔 것 같은 모양새로, 건너편에 있는 판자촌과의 길이 마치 길고 좁은 복도처럼 느껴질 정도다. 밖에서는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이지만, 지도 앱에는 주인공의 집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두꺼운 블라인드를 쳐놓고 안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동시에 택배나 음식 배달을 시킬 때마다 마치 이 집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본다. 주인공은 어느 날 2단지로 잘못 배달된 자신의 택배를 찾으러 간다. ‘내 것’을 찾는다는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생각하던 주인공은 열려진 문으로 빠르게 들어가는데…….
2.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여주인공은 하나뿐인 딸을 무사히 대학 졸업까지 시키고 시집도 보내 손주를 둘이나 보았다. 그러나 너무 힘들게 일만 해온 탓에 딸은 어머니에게 친밀감 대신 거리감을 느끼고 남편은 암에 걸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게 된 주인공은 가게를 정리하고 혼자 살면서 매일 기계처럼 스스로 정한 일과를 지키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사위가 와서 여주인공에게 어린 앵무새를 맡긴다. 귀찮기만 했던 앵무새에게 물과 먹이만을 주며 신경을 쓰지 않던 주인공은 앵무새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앵무새가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죽고 만다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된다. 하는 수 없이 앵무새에게 관심을 보이던 주인공은 점점 앵무새가 귀엽게 느껴진다.
3. 서이제,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
주인공은 한밤중에도 끊이지 않는 벽간소음에 시달린다. 끝도 없이 들려오는 힙합 음악은 무언가 쓴소리를 하고 싶다는 충동과 함께 고등학생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즐겼던 힙합 문화와 힙합 음악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된다. 주인공은 이제 자기 적성에도 맞지 않는 회사에서 일하며 자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어른이 되었고,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수많은 래퍼들의 펜과 입을 통해 발표된 가사를 인용하며 주인공은 과거의 추억과 분노로 오해했던 현재의 애증과 미래를 향한 기대를 풀어낸다.
4. 염승숙, 「믿음의 도약」
철과 영은 다섯 살 된 아이를 키우는 부부다. 적어도 전세 보증금은 마련하고 아이를 갖자는 영의 말에 두 사람은 결혼한 지 십 년 만에야 빌라를 구하고 임신을 확인했다. 아이가 커가고 코로나 시국에 돈을 모으기는 더욱 어려워지는데, 집주인은 전셋값을 올려달라고 한다. 영은 ‘우리한테 누가 있어, 여보. 아무도 없어, 아무도’라고 반복하며 집착적으로 수많은 영양제를 구해다 아이와 남편에게 먹인다. 믿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라는 듯이. 두 사람은 ‘영혼까지 끌어’ 집을 장만하려 하지만 그렇게 끌어 모을 영혼도 지쳐갈 즈음, 그렇게 영양제를 먹이며 지키려 했던 두 사람의 건강까지 흔들린다. 더 이상 보러 갈 매물도 없고 전세 만기는 다가오는데 건강까지 적신호를 보내자 철은 자신의 인생에서 끝도 없이 누수되고 있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5. 이장욱, 「잠수종과 독」
주인공인 공은 외과 전문의로, 방화 사건을 일으키고 몸에 불이 붙은 채 투신해서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를 돌보고 있다. 공은 매일 집중 치료실에 가서 환자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면서 깊은 의식의 아래에 잠긴 환자의 모습에서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주인공을 떠올린다. 공은 환자를 볼 때마다 지난 오 년간 동거한 남자 친구 현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작가인 그는 이제 막 능력을 인정받고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날, 환자가 방화를 일으킨 날도, 현우는 언론사와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차를 몰고 있었다. 환자의 혼수상태와 현우의 부재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아니 적어도 환자에게 법적인 책임은 없다. 그러나 공은 환자를 볼 때마다 현우의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6. 최은미, 「고별」
주인공은 결혼을 하면서 다니던 문화재단에서 퇴직을 하고 전업주부로 지낸다. 프리랜서로 외주 일을 간간히 하기는 하지만 직장인으로서의 경력은 단절되어 버린 상태다. 그에 비해 직장 상사였던 남편은 재단의 요직에 올라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어머니가 육 년간의 암 투병 생활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자, 주인공은 남편과 함께 빈소를 지키게 된다. 어머니의 빈소에는 대표이사 선출을 앞둔 재단의 사람들이 몰려온다. 빈소에는 애도의 감정보다 욕망과 권력 구조에 나오는 암투가 더욱 선득인다. 주인공은 동기였던 경주와 석현이 여전히 재단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지금, 자기는 어쩌다 상사였던 남자의 아내가 되어 그를 낳은 여성의 빈소를 지키고 있는지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던 동안 모아 둔 거의 모든 것이 담긴 USB를 다시 상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