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선은 그 자리에서 악수를 했던 손을 놓지도 않고 수민을 잡아당겨 일으켰다. 그리고 단장실로 향했다. 현은 홀로그램 영상을 보며 마치 복싱이라도 하듯 두 팔을 휘젓고 있었다. 해야 할 일과 일정을 홀로그램 영상을 보며 손으로 집어 원하는 곳에 끼워 넣는, 2040년엔 흔한 컴퓨터 사용 방법이지만 현은 유독 팔을 요란하게 움직였다.
--- 「Chapter 1. 산업이 중심이 된 바이오」 중에서
사회가 변화하면서 직장 생활의 인간관계는 과거와 크게 바뀌었다. 21세기 초기만 해도 후배가 자잘한 일을 도우면서 선배의 굵직한 노하우를 전수받는 일이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상하관계가 생겨났다. 하지만 최근엔 이런 ‘교환의 법칙’을 적용하기 어려웠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막상 후배들이 선배를 도울 수 있는 잡일은 대부분 사라졌다. 대다수의 업종에선 후배들도 굳이 선배가 필요치 않았다.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일을 하고, 문제가 생기면 관리자와 상담을 통해 해결하는 편이 빨랐다. 필요하면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재교육 프로그램도 있었다. 선후배 사이에 서로 주고받을 것이 적으니 상하관계도 자연스럽게 약해져 갔다.
--- 「Chapter 2. 바이오 산업의 기초는 세포다」 중에서
현의 임무는 신종 메르스 35 백신 성분을 가진 ‘형질전환 식물’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식물을 길러 음식처럼 먹기만 해도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물 자체를 식품으로 공급하면 약물 성분의 복용량과 시간을 지키기 어렵고 부작용의 통제가 어려워진다. 그러니 이런 식물에서 다시 필요한 성분만을 추출해 알약으로 만들어 유통하는 방법이 주로 쓰였다. 이미 B형 간염, 설사병의 일종인 LTV 등을 예방하는 ‘먹는 백신’은 2020년대에 개발이 끝나 유통되고 있었다.
--- 「Chapter 3. 바이오가 만드는 건강한 삶」 중에서
2030년대가 되면서 사람들의 컴퓨터 사용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겉보기엔 먼 옛날처럼 서류 뭉치를 들고 다니면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언제든지 원하는 대로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전자잉크 서류라는 점이 달랐다. 보통은 50쪽, 혹은 100쪽 정도씩 전용 바인더로 묶어 한두 개씩 가지고 다니는 게 전부였다. 당장 일할 분량을 옮겨 넣을 수 있었고, 그 종이 위에 전용 팬이나 가상키보드로 글씨를 쓰거나 메모를 하면 원본 파일까지 한 번에 바뀌어 저장됐다. 영상을 보거나 수식을 계산하는 등의 복잡한 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영상 제작이나 설계 등의 전문적 작업을 하는 사람들, 옛날 방식이 좋아서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쓰는 일부 사람을 제외하면 책상 위에 모니터를 놓고 쓰는 사람
은 드물었다.
--- 「Chapter 4. 암? 이제는 무섭지 않다」 중에서
주변에선 ‘운동선수 누가 운동캡슐을 먹고 있다더라.’ ‘부쩍 날씬해진 연예인 누군가가 이 캡슐로 효과를 봤다더라’는 식의 이야기가 자주 들렸다. 실제로 이 캡슐을 먹으면 운동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2HR’이라고 적힌 알약 한 알을 먹으면 두 시간 동안 운동한 효과를 얻는 식이다. 인체 활력이 늘어나고 혈관이 튼튼해지며, 근육 손실마저 막아 주니 노인들에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대사량이 늘어나 체중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문의의 처방이 있어야만 먹을 수 있었다.
--- 「Chapter 5. 의료, 더 건강하고 더 간편하게」 중에서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현은 연구소로 정상 출근하고 있었다. 집에 틀어박혀 있었던 일주일 사이 있었던 일은 어느덧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사무실로 출근한 현은 커다란 전자 종이에 오늘 새벽 발행된 신문을 내려 받아 한 장씩 넘기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현은 잠시 후 부리나케 스마트 안경을 고쳐 쓰고 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Chapter 6. 지구를 지키는 바이오」 중에서
203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지구촌은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른바 ‘육종혁명’이 주목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구촌 누구나 식량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식량이 풍부한 국가로부터의 원조가 아니라, 자국에서 식량을 생산할 길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불과 길이 수 센티미터 정도인 잡초만이 돋아나는 몽골의 초원에서도,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에서도, 사하라의 사막에서도 쑥쑥 자라는 작물이 필요했다.
--- 「Chapter 7. 먹거리 걱정 없는 세상」 중에서
약속한 장소로 가던 수민은 자신이 ‘초대형 복합시설’에 입장하려면 자동 검역시스템에서 인증을 받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공항을 이용할 때, 외국을 오고 갈 때 등도 같은 인증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인증을 못 받은 사람은 복합몰도 이용하지 못 하고, 외국도 다닐 수 없다는 뜻인가 싶겠지만 발전된 첨단 사회 시스템은 그런 불편함을 해소하고도 남았다. 출생 후부터 예방접종 시스템에 맞춰 수두, 볼거리 등의 백신과 함께 호흡기 바이러스 백신도 맞게 돼 있는 데다, 직장 건강검진시스템에 맞춰 주기적으로 면역을 관리하고 필요하면 부스터샷(면역을 높이기 위해 추가로 맞는 주사)을 맞거나, 먹는 백신을 처방해 줘 감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관리한다. 사회 전체가 시스템적으로 ‘집단면역’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 「Chapter 8. 세이프 콘택트 세상이 온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