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의 분열과 갈등, 세습, 성폭력, 각종 비리와 의혹이 뉴스를 장식하는 것이 어느 시점부터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다. 교회 관련 인터넷 기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댓글의 ‘개독교, 먹사’와 같은 단어들은 어느새 관용어처럼 굳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언제부터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일까? 한국교회에도 분명 찬란하고 빛나는, 영광스럽던 날들이 있지 않았던가? ...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희미한 흔적만 남긴 채 무너진 예루살렘의 옛 성전을 바라보며 선지자들이 구슬피 불렀던 애가만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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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경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박해받은 교단과 그렇지 않은 교단 사이에 분열이 일어났고, 신사참배를 둘러싼 입장 차는 교회 내 분열과 분리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이후까지 신사참배에 대한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 지속되었다. 일각에서는 이후 일어난 한국전쟁과 분단을 신사참배에 대한 한국교회의 회개 부재에서 기인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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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지역에서 교세가 큰 주요 교단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된 이북 출신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몸소 경험한 공산주의의 실체를 적극적으로 설파하였고, 그러한 위협을 경험해보지 않은 기독교인들에게도 두려움, 분노, 적대감은 전이, 재생산되었다. 또한 서북청년단의 조직과 활동에 기독교인 청년들, 한경직 목사와 같은 기독교계 인사들이 깊이 관여하면서 비극적인 폭력과 복수의 악순환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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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과거의 경험과 상처가 침습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경험한다. 이는 공산주의에 대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교인들과 목회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공은 교회 안에서 기독교적 진리에 대한 수호와 함께 절대적으로 사수해야 할 또 다른 가치로 자리 잡았고, 조금이라도 애매한 입장을 취하거나 공산주의적 성향을 나타내는 것은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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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전후로 한국교회가 경험한 트라우마는 개인 차원의 생존뿐 아니라 ‘교회’와 ‘기독교’라는 집단적, 공동체적 정체성과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었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개인과 교회 공동체가 경험한 아픔과 상처는 교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되고 강화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정서와 유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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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을 핍박한 공산주의자들은 절대악이며 변화될 수 없는 존재로 여겼고, 이는 자연스럽게 어떠한 대화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노력도 기울일 수 없도록 하였다. 그들은 무너지고 심판을 받아 마땅한 존재로, 결코 교류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 되었다. 이는 의심과 불신, 적대감이 증폭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자아와 피아의 경계를 강화시키며 교회공동체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을 보이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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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분단 트라우마를 심화, 고착시키는 선택을 해왔다. 평화와 화해의 노력보다는 적으로 간주되는 타자를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에 계속 고정시키고 그러한 신념을 교회 내부에서 구성원들과 공유하며 집단 트라우마를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역기능적으로 기능해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들은 그 이전 세대들로부터 고통의 상흔과 해결되지 않은 분노, 적대감, 공포 등을 물려받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역사 속의 공과 실을 바라보도록 교육받을 기회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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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기독교가 전해지던 그 무렵까지 봉건적 왕권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분제에 의한 계급 구분, 왕권제와 유교적 위계질서의 문화적 요인은 교회 안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 교회가 지속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교회 안에서 리더십 자리에 있는 인물, 특히 목회자가 가지는 영향력은 상당했고, 지배적인 권위를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같은 경향은 산업화 시기 교회가 성장, 부흥하는 과정에서도 지속되었는데, 한국에서 유난히 많은 대형교회가 등장하게 된 데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존하는 한국교회의 특성도 많은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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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독점적인 권력구조와 세습체계는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제일 적대시하는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일가와 닮은꼴이다. 이들이 이렇게 권력의 독점과 다양성 제거, 카리스마적 권위를 강조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유교적 문화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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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교인이 자신들의 교회에 대한 열정이나 관심을 개교회의 경계 이상으로 확장 적용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구축한 문화와 행위에 천착하며 ‘소속한 개교회’ 자체가 목적이 되어 개교회가 다른 교회 혹은 교단과 가지는 연결성, 사회와의 연대 의식과 같은 보다 넓은 범주에서의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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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는 과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공동체인가, 자신들의 신앙적 성장과 은혜만 아닌 타인의 구원과 은혜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을 보이는가, 개교회로서 ‘우리 교회’가 잘 되는 것 말고 지역사회와 공동체, 인류에는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는가 자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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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자란 교인들은 교회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훈련과 모임, 예배 없이는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알지 못한다. 평생을 남이 짜준 일정표와 해야 할 일들의 목록, 계획에 맞춰서 살던 교인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을 제공하지 않고 이제 스스로 어떻게 건강하게 믿음을 지켜나갈 것인지 생각하고 결정해보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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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리스틱 사고 또는 의사결정은 단순하고 신속하게 정보를 처리하는 인지적 방식을 의미한다. 휴리스틱 방식을 사용할 때 사람들은 정보를 자세히 살펴보기보다는 기존의 인식 틀(프레임)이나 정보, 태도에 일치되는 방향으로 처리하며,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결론을 내린다. 교인들이 목회자나 교회로부터 전달받는 메시지를 대부분 휴리스틱 방식으로 처리하면, 더 많은 생각과 비판적 사고를 통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경우에도 단순하고 무비판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세습을 강행하는 목회자들, 종교와 정치를 연결지어 교인들과 교회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오늘날 우리는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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