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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리커버 에디션)

어떻게 죽을 것인가 (리커버 에디션)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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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546g | 147*218*30mm
ISBN13 9788960519091
ISBN10 89605190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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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로프는 마뜩잖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날 포기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라자로프에게서 서명을 받은 후 병실 밖으로 나오자 그의 아들이 따라 나오며 나를 잡았다. 어머니가 중환자실 인공호흡기에 매달린 채 임종했을 때 아버지 자신은 저렇게 죽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운다는 얘기였다.

당시 나는 라자로프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수술에 따르는 위험 때문이 아니라 수술을 받아도 그가 원하는 삶을 되찾을 확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변 능력, 활력 등 병이 악화되기 전에 누렸던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길고도 끔찍한 죽음을 경험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추구한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런 죽음을 맞이했다.
---「서문」중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더 자주 넘어졌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짐은 오늘날의 모든 가족들이 그러듯이 자연스러운 조치를 취했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간 것이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할머니의 뼈가 약해졌다고 진단하고 칼슘 복용을 권했다. 또한 그는 할머니가 평소에 먹는 약들의 복용량을 조정하고, 몇 가지 새로운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사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의사의 힘으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앨리스 할머니는 균형을 잘 잡지 못했고, 기억이 가끔씩 가물가물했다.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게 분명했다. 할머니가 독립적인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의사로서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도, 조언을 해 줄 수도 없었다.
---「독립적인 삶」중에서

앨리스 할머니는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모두 잃었다. 병원 환자복을 입고 지낼 때가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이 깨우면 일어나고, 목욕시켜 주면 하고, 옷을 입혀 주면 입고, 먹으라고 하면 먹었다. 또한 직원들이 정해 주는 아무하고나 같은 방을 써야 했다. 할머니의 생각과 관계없이 선택된 룸메이트들이 여러 명 거쳐 갔다. 모두 인지 능력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조용했고, 어떤 사람은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감금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의존」중에서

루 할아버지는 애원하는 눈길로 셸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일을 그만두고 내 옆에 있을 수는 없는 거니?’ 그 생각이 셸리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셸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아버지를 충분히 잘 돌보는 게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루 할아버지는 마지못해 셸리를 따라 몇 군데 시설을 둘러보겠다고 승낙했다. 누구라도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 같았다.
---「도움」중에서

의학은 아주 작은 영역에 초점을 맞춘다. 의료 전문가들은 마음과 영혼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을 복구하는 데 집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바로 이 부분이 고통스러운 역설을 만들어 내는데?삶이 기울어 가는 마지막 단계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의료 전문가들에게 맡겨 버렸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질병, 노화, 죽음에 따르는 여러 가지 시련은 의학적인 관심사로 다뤄져 왔다. 인간의 욕구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 기술적인 전문성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들에게 우리 운명을 맡기는, 일종의 사회공학적 실험이었다. 그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더 나은 삶」중에서

나는 마르쿠 박사에게 폐암 말기 환자들을 처음 만날 때 그들을 위해 무얼 해내길 바라는지 물었다. “1~2년 정도 그럭저럭 잘 지내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죠.” 그가 말했다. “그게 내가 갖고 있는 기대치입니다. 새라 같은 환자의 경우 운이 아주 좋아야 3~4년 정도예요.” 하지만 이는 환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다. “환자들은 10~20년을 생각하고 와요. 어떤 환자를 만나도 같은 얘기를 듣게 됩니다. 사실 내가 그들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
---「내려놓기」중에서

완화치료 팀이 도착한 후 소량의 모르핀을 처방하자마자 새라의 호흡이 즉시 편안해지는 게 보였다. 새라의 고통이 줄어드는 걸 본 가족들은 문득 그녀를 더 이상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이제는 가족들이 의료진을 말리고 있었다. “의료진이 새라에게 카테터를 삽입하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어요.” 그녀의 어머니 돈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얘기했죠. ‘아뇨, 그 애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침대에 소변을 봐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료진은 또 혈압과 혈당 측정 등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려고 했죠. 하지만 이제 검사 결과 같은 것에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수간호사에게 가서 이제 모든 걸 그만 멈추라고 말했죠.”
---「내려놓기」중에서

사지마비가 진행되면서 머지않아 아버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앗아 가려 하고 있었다. 사지마비가 오면 24시간 간호, 산소 흡입기, 영양 공급관이 필요해질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절대 안 되지. 그냥 죽는 게 낫다.”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날 나는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아버지에게 던졌다. 커다란 두려움을 안고 하나하나 물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분노, 혹은 우울, 아니면 그런 질문을 함으로써 뭔가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안도감이 들었고 뭔가 명확해졌다는 걸 느꼈다.
---「어려운 대화」중에서

아버지는 우리가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새 셔츠를 입히는 동안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아프세요?” “아니다.” 아버지는 일어나고 싶다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혀 뒷마당이 보이는 창문 앞으로 밀고 갔다. 꽃과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여름날이었다. 조금 있다 우리는 아버지를 저녁식사 테이블로 밀고 갔다. 아버지는 망고, 파파야, 요구르트, 그리고 약을 먹었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켰다.

“무슨 생각 하세요?” 내가 물었다. “죽기까지의 과정을 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 중이다. 이거, 이 음식이 그걸 길어지게 만들고 있어.”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신을 돌보는 게 좋아요, 램. 당신을 사랑하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힘드시죠, 그렇죠?” 여동생이 말했다. “응, 힘들다.” “쭉 잘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 내가 물었다. “그래.” “깨어 있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옆에 있다는 걸 느끼고, 이렇게 우리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용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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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비로소 성립하며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오늘날 죽음은 누구나 삶 속에서 목격하는 자연스러운 단계가 아니라 전문가들만이 다룰 수 있는 금기와 미지의 영역이 되어 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거북한 일이며, 막상 죽음의 당사자는 생애의 마지막 날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내 아버지는 임종의 순간까지 본인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수 개월간 응급실과 중환자실, 요양병원을 거친 뒤 코로나19로 직계 가족의 면회조차 어려울 때 돌아가셨다. 상점을 나설 때 잘 모르는 사람과도 나누는 인사를, 아버지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지 못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날들이 어쩌면 다를 수도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죽음에 대해 사색하는 철학서가 아니다. 아툴 가완디는 안전과 생존을 최우선에 놓는 현대 의학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삶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 차분한 어조로 조목조목 진단한다. 의료 시스템과 노년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서에 가까운 이 책은 그러나 그 어떤 책보다도 죽음과 삶의 가치, 존엄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한다.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지만 예상외로 온 얼굴에 미소가 번질 만큼 따뜻한 이야기들도 곳곳에 스며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개, 고양이, 식물, 잉꼬 백 마리(!)를 요양원에 들여놓은 의사 빌 토머스의 이야기다. 우리는 죽음을 삶에서 분리하지 않고 더 현명하게 껴안을 수 있다. 그 모색의 시작으로 이 책은 더없이 훌륭하다.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김하나 (작가, 『말하기를 말하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
인생이 축구라면, 전반전엔 모든 선수들이 온통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하겠다고 전력 질주 하지만, 후반전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답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골을 더 넣겠다며 애쓰는 선수도, 더 이상 실점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선수도, 승부와 상관없이 멋진 플레이로 마무리하겠다는 선수도, 결국 마지막 종료 휘슬을 들어야 하니까. 나 역시 ‘어떻게 존엄을 잃지 않으면서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가 가장 고민하는 인생의 화두 중 하나다.

이 어려운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이 책은 가장 영감 어린 책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툴 가완디의 열렬한 팬이다. 20년 전, 그가 쓴 『나는 고발한다, 현대의학을』을 읽고 그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현대 의학의 성과와 한계를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의학이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죽음을 인간적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모색해 온 그는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환자를 돌봐주는 의사였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의학서를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진 건 처음이었다.

현대 의학의 최전선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날마다 대해온 그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선 존엄한 죽음의 방식에 관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현대 의학의 역할은 환자의 목숨을 지속하고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여야 하지 않느냐고 냉정하지만 묵직한 어조로 묻는다.

이 책이 각별히 울림이 큰 것은 아툴 가완디가 아버지의 죽음을 병원에서 목도하면서 때론 의사로서, 때론 보호자로서 매우 객관적이면서 한없이 주관적으로 죽음을 성찰하고 있어서다. 병원의 긴박함과 긴장감을 수려한 문장으로 담아내면서도, 사려 깊은 성찰 끝에 얻은 깊은 통찰을 매 페이지에 담아낸다. 그는 현대 의학의 가장 냉정한 비판자이자 동시에 환자들의 가장 따뜻한 동반자이다. 이 책은 우리 삶의 책장 안에 가장 오랫동안 꽂혀 있어야 할 책이다.
- 정재승 (뇌과학자, 『과학 콘서트』 『열두 발자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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