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은 리듬이 없어서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분명 이런 것이리라. “클래식 음악에는 록이나 팝, 재즈에서 강조하는 비트가 그리 강조되지 않아서 듣다 보면 몸이 굳어지면서 점점 졸음이 몰려온다.” 클래식 음악에는 밴드의 드럼과 같은 존재가 없어서 4박자 중 두 박자째와 네 박자째에 강조되는 비트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트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연주하면서 그리 강조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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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매니저는 연주회 당일, 대체로 공연 시작 6시간 전에 연주회장에 도착한다. 밤에 열리는 수아레 콘서트든 낮에 열리는 마티네 콘서트든 이 스케줄에는 변함이 없다. 오케스트라 단원과 지휘자가 함께 본공연 직전에 하는 총연습은 적어도 공연 4시간 전에는 시작된다. 이 총연습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된다. 이후 식사 시간이 짧게 1시간 반에서 2시간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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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도 피할 수 없는 비슷한 문제가 있다. 촛불만큼은 아니지만 스테이지의 조명이나 객석의 열기로 악기의 음정이 변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관악기는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온도가 상승하면 관의 온도도 상승하여 음정이 높아지는 반면, 현악기는 오히려 열기로 현이 풀려 음정이 내려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 튜닝을 해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마지막까지 같은 음정을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다. 어쨌든 본격적으로 연주에 들어가기 전의 튜닝 작업은 연주자들에게도 확인 작업으로서 중요한 과정이며, 무엇보다 청중은 이 튜닝 순간을 즐길 수 있다. 이때의 혼돈된 울림이야말로 다른 음악회에는 없는, 오직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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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는 실로 신비한 존재로, 스테이지에 오른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음을 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의 리드로 모든 음악이 진행된다. 그리고 스테이지에서 유일하게 청중에게 등을 보이는 사람이기도 하다. 음악 공연에서든 무용 공연에서든 연극 공연에서든 청중에게 공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등을 보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인물이 무대의 모든 것을 이끄는 것이다. 신비롭다는 말 외에 어떤 표현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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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파곳, 호른, 트럼펫, 트롬본, 팀파니 & 퍼커션, 하프 등.그리고 여기에 튜바나 다른 특종 악기 등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대체로 오케스트라 무대에 오르는 악기는 이와 같은 악기들이다. “어? 의외로 악기 수가 적네?”라고 생각할지, “와, 그렇게나 악기가 많아?”라고 생각할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온 세계에 존재하는 몇백, 몇천 가지의 악기 종류에 비하면 이 정도의 악기를 가지고 그렇게 다양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탄스러울 정도로 그 악기 수와 종류는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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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연주자들이 모두 의자에 앉아 연주할 때 타악기 연주자는 악기를 빈번하게 바꾸며 번갈아 연주하기 때문에 그의 분주한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팀파니 연주자의 움직임은 때로 지휘자보다 화려해서 오케스트라 전체를 장악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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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연주 중에 힘이 넘쳐 바이올린 현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거기서 연주를 중단한다? 현을 교체한다? (……) 실제로 이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 오히려 관객들이 동요하여 잠시 웅성웅성거릴 수도 있다. “어? 어떻게 해? 연주는 계속하는 거야? 중단되는 거야?” 이와 같은 해프닝은 오케스트라 연주회뿐 아니라 어떤 음악회나 무대 퍼포먼스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면 그 자체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평생 한 번 목격할까 말까 한 그런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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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프로그램도 전채요리로 시작되어 수프나 샐러드, 사이드 디시, 그리고 메인 디시로 이어지는 코스 요리의 흐름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그렇다면 앙코르 곡은 디저트인 셈?). 전채요리는 사실 아주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인데, 식욕을 돋울 수 있게 보기에도 좋아야 하고 맛도 산뜻해야 한다. 그렇다면 연주회도 첫 곡목에 돌연 교향곡이 들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시대의 작곡가 곡을 막론하고 교향곡은 가장 묵직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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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와 같은 일은 베테랑 연주자가 많은 전통 있는 오케스트라에 젊은 지휘자가 등장할 때 종종 일어나는 갈등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상황이더라도 음악을 한 방향으로, 단원들의 의지를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이 지휘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지휘자에게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역사상 명지휘자로 불리는 사람은 하나같이 강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 어쩌면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에 명지휘자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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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이나 레스토랑에서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자주 흐른다. 그러나 베토벤의 음악은 그런 곳에서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아니,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체 왜 그럴까? 모차르트 음악은 막힘이 없는 하모니의 진행과 흐르는 듯한 리듬과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어서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즐겁게 들을 수 있다(배경음악이 지나치게 주의를 끌면 배경음악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베토벤의 음악은 전개가 너무나 불규칙하고 다이내믹하여(강약의 변화가 아주 많아서) 배경음악으로는 부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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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덴차는 재현부 끝과 종결부 시작의 경계 부분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만은 오케스트라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솔리스트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따라서 이 카덴차에서는 청중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지휘자까지도 모두 솔리스트의 연주를 듣는, 매우 진기한 광경이 연출된다. 아마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이와 같은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은 협주곡 외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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