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몇 년 전에 열린 제3회 기독교 사회복지 엑스포 ‘주제 콘퍼런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콘퍼런스에서 “한국 교회 대사회적 섬김에 대한 평가와 한국 교회 미래를 위한 통찰”이라는 주제 아래 ‘먹다’, ‘듣다’, ‘걷다’ 3가지 동사로 진정한 의미의 복지, 교회가 해야 할 복지에 대해 강의를 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할 일을 3가지 동사로 이야기한 데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대부분 명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영생’이 가장 중요하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면서 기독교의 상징적 키워드를 제시해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 가운데 우리의 일상 현실 속으로 성육신하시고 그로써 역사의 일부가 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생애는 대단히 역동적인 사건(event)이었다는 것이지요. 이런 예수님의 존재와 가르침을 압축적인 명사로 규정하게 되면 도덕적 덕목으로 축소되기 쉽습니다. 이를 동사로 받아들여서 모든 생명체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역동성을 얻어야 합니다. 초월자이신 하나님이 인간과 같아지시기 위해 먹고, 듣고, 걷는 행위로 뛰어드셨는데, 인간이 이를 다시 추상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프롤로그」중에서
우리는 주기도문을 고백할 때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을 주시고”라고 고백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옛날에는 하나님이 주셨지만, 지금은 보건복지부나 정치인들이 주려고 합니다. 교회가 줄 수 있는 것이 단순한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이라면,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에 나 올 이유가 없습니다. 빵을 줄 수 있는 대통령이나 정치인을 찾아가겠지요. 즉, 교회의 복지는 정치나 사회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복지와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먹는 것’을 제 대로 이해하면 교회의 복지 개념도 달라질 것입니다.
--- p.18
먹는 것도, 먹지 않는 것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하나님을 삶 속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감사 기도야말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리이지요. 뭔가를 주고 생색을 내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밥을 먹으면서 감사할 줄 알게 하는 것이 교회에서 해야 할 진정 한 복지의 시작입니다.
--- p.32
그리스도인들인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그분의 권능으로 맹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님을 아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섬겨야 하는 사람들은 결국 죽어야 할 사람들,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목마른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우리도 이 목적을 의식하면서 일탈해야 합니다.
세속적 유구의 세계를 만족시키기 위해 교회가 존재한다고 잘못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야기를 잘못 알면, 가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기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알지만 정작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모르게 되지요.
--- p.56
우리가 사회에게 건네는 빵이 적어도 빈곤과 목마름이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누구이고, 악이 무엇이며, 슬픔이 뭔지 아는 인간의 아들로 오셨어요. 그래서 우리를 위해 일탈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려는 기독교 복지는 예수님이 권위로 맹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그런 유가 아닙니다. 오해하면 안 돼요. 진정 슬픈 자들, 죽어야 할 자들, 먹고 마셔도 여전히 배고프고 목마른 이들을 구하고 생명을 주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교회의 역할을 육의 세계를 만족시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야 합니다. 육을 넘어 영적 허기와 목마름을 채워 주어야 합니다.
--- p.77
교회가 할 일에는 분명 마르다의 일이 있어요. 하지만 교회가 사회를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제일 급하고 중요한 것은 정치, 경제가 아니고 생명인 것이지요. 생명을 놓치면 세상을 놓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듣는 데 달려 있어요. 세상으로 나가는 교회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교훈입니다.
--- p.113
저는 한국 교회가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걸어야 해요. 세상 끝날 때까지 걸어야 합니다. 멈추면 안 됩니다. 오늘과 또 다른 내일이 있어야 살아 있는 것이지, 똑같은 오늘을 되풀이하고 반복하고 주저 앉으면 고인물이 됩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것, 말씀 공부에 참여하는 것, 이웃을 심방하는 것처럼 매일 하고 있는 단순하고 지루한 일상일지라도 계속해야 합니다. 걷는 교회가 새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 p.155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전 세계에 이른 과정을 돌이켜 보면, 예수님이 심으신 씨를 인류가 거두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예수님이 온 평생을 다해 걸으며 복음을 전하신 것처럼, 육의 양식을 넘어 영의 양식을 들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함께 빵을 떼고 포도주를 나눠 마시며 사회 속으로, 세계 속으로 온몸을 다 드려 참된 생명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