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리는 눈물의 의미를, 영화를 처음 접하고 10여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20대 초반,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벅차오를 때마다 공터에 앉아 있곤 했다. 푸른 잔디가 펼쳐진 공터에 앉아 온종일 그 잔디를,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파편화된 나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끼워 맞추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저물곤 했다.
해가 기울고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까지 있다 보면 하염없이 누군가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 덕에 외로움과 고독감 그리고 막막한 두려움을 오롯이 견딜 수 있었다. 한동안 바쁘게 살며 잊고 있었던 기억이 이 영화를 보며 떠 올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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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은 외롭고 쓸쓸한 자신의 인생에 기댈 누군가가 필요했다. 자신이 이용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누군가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이해해주고 지켜주는 든든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범죄자를 잡기 위한 미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혜경은 분노한다. “너도 똑같은 놈이구나!”라며 한 때 그에 대해 가졌던 감정을 되돌린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그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재곤은 한편으로 혜경에게 사과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형사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이용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그의 가슴에 비수가 꽂힌다. 그는 결국 기회를 얻지 못하고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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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멤논이 여신의 사슴을 죽인 대가로 자신의 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듯이, 스티븐도 자신의 자식 둘 중 하나를 죽여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 아가멤논이 여신의 사슴을 죽인 것과 그 대가로 딸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 스티븐이 실수로 환자를 죽게 한 대가로 자식 중 하나를 죽여야 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가? 너무 부조리한 것 아닌가?
복수는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했고, 영화는 가족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즉 아비가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죽여야만 하는 끔찍하고 무서운 스토리였다.
--- p.81
그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이유가 필요했던 것이지 복수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그가 인간 백정으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며 절규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에서 그의 본의가 드러난다. “원래 내 가 원했던 것은 바로 이거거든. 두려움에 떨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
“받은 것만큼 돌려준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내가 한 것보다 훨씬 상회하는 것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그 부당함에 저항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레이가 인남의 딸을 위협하자 인남은 필사적으로 레이에게 대항하게 된다. 절박함에 있어서도 두 사람의 대결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p.124
어쨌든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진 형사가 범인을 검거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경찰이나 판검사, 변호사, 의사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측면도 있다. 경찰은 크고 작은 범죄자들을 만날 일이 많고, 판검사나 변호사는 각종 사건 사고를 맡아 법률적으로 처리해야 하고, 의사는 아픈 사람들의 몸을 직접 치료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들을 꺼린다면 직업적으로 성공하기도 어렵고 일을 지속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한 TV프로그램에서 프로파일러는 범죄자의 행적을 쫓으면서 범죄자의 마음으로 그 상황을 그려내는 상황을 연출하고, 실제로도 범죄자가 되어 상황을 이해하려고 한다고 했다.
다만 이들과 범죄자의 차이가 있다면 경찰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공격성을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도록 건강하게 잘 표출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p.173
공포와 불안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본적인 정서다. 불안은 앞으로 일어날 것에 대한 것이라면 공포는 즉각적인 위협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위협이 사라지면 공포 또한 사라진다.
이런 공포와 불안은 불유쾌한 정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유익한 정서다. 위험을 감지하고 그것을 피하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공포와 불안은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킨다고 알려져 있는데, 위협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반응 때문에 공포물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밖으로 나가 오랜 시간 고생을 하고 돌아온 집에서 느끼는 안락함 같은 것이랄까. 그런 스릴을 즐기기 위해서 사람들은, 특히 여름이 되면 공포물을 보며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더위를 날려 버리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 p.221
만약 여러분이 이것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인지적 전환의 관점에 따르면 이 유머는 누군가 변호사의 생명을 구하려고 한다는 가정에서 죽음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으로 초점을 바꾸는 것에 있다. 물론 가족이나 주변에 아는 변호사가 있는 사람들은 웃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빵 터뜨린 개그가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즐겁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말장난이나 화장실 유머, 야한 농담, 인종에 관한 농담, 몸개그(slapstick) 등을 생각해보자. 각각의 경우에 어떤 사람들은 떠들썩하게 웃고 즐거워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무례하고 한심하고 바보 럽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적어도 재미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