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엄마들은 아이를 대할 때 죄책감, 미안함, 욕심을 많이 느낀다. 이 세 가지가 엄마의 불안을 만드는 원인이 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불안을 만드는 것은 욕심이다. 내가 갖고 싶고, 성취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위치에 아이가 다다랐으면 좋겠다고 욕심을 부린다. 공부를 못해 한이 맺힌 사람은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말할 수 없이 불안해한다. 마치 자신처럼 불행해질까 봐 안타까운 마음에 느껴지는 불안이지만, 아이와 자신을 잘 분리시키지 못한 것이 원인이기도 하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사람은 아이가 자신처럼 괴롭고 힘든 마음이 생길까 봐 지나치게 집착하여 불안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욕심은 모두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자신부터가 ‘이 정도면 됐어’ ‘충분해’라는 마음을 갖는 게 잘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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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통제를 하는 아빠의 경우, 겁 많고 나약하며 세상에 대해 많은 불안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모습을 취한다. 가부장적인 아빠들 중에는 생각 외로 불안의 정도가 높은 사람이 많다. 가부장적이고 엄격하게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상쇄하는 것이다. 이들은 힘있는 존재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아이에게 친밀하고 다정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우리 민철이 정말 멋진데”라고 말하는 것이 왠지 약한 사람처럼 보인다고 느껴 아이에 대한 칭찬도 절제한다. 전혀 엄격하고 무섭게 다룰 필요가 없는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설득하거나 설명하는 대신 항상 강압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율성을 발달시키지 못해 자기 의견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데, 쉽게 말해 기가 죽어버리고 만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아빠를 두려워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아빠에 대한 분노가 쌓인다. 결국 아이는 화가 나지만 무섭고 두려워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겉과 속이 다른 마음으로 인해 늘 혼란을 느끼며 매사 불안해하는 행동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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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마치 포도송이 같아서 그중에는 작은 포도알도 있고, 큰 포도알도 있고, 덜 익은 포도알도 있고, 알맞게 익은 포도알도 있다. 진한 보랏빛의 포도알이 있는가 하면, 밝은 붉은 빛을 띠는 포도알도 있다. 그 모든 포도알이 모인 하나의 포도송이가 내 아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그것을 모른다. 아이가 가진 모든 면을 통합해서 아이 자체로 받아주지 못하고 주변의 많은 것과 아이를 비교해 멀쩡한 아이를 비참하게 만든다. 아이가 공부는 못하지만 심성이 착하다면 “의사, 박사는 못 되겠지만, 뭘 하든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받겠구나”라고 평가해줘야 한다. 아이가 줄넘기를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잘 못하면 “네가 줄넘기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닌데 그 정도면 되지”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으로 아이가 자신을 열등하게 느껴서는 안 된다. 나는 사실 어렸을 적부터 춤을 잘 못췄다. 지금도 못 춘다.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아이가 춤을 못 추면 댄스 학원에 보내고, 줄넘기 과외도 시킨다. 인간은 포도송이처럼 작은 부분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이룬다. 그런데 포도알 하나를 사과의 색과 비교하고, 다른 포도알은 오렌지와 크기를 비교하고, 또 다른 포도알은 바나나와 맛을 비교하여 그것을 모두 합쳐서 아이를 만들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자신에 대한 어떤 정체성도 가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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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 내 안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불안하다면 그다음부터는 초점을 ‘나’로 돌려야 한다. ‘나는 뭐가 불안하지? 나는 어떨 때 불안해질까? 뭐가 나의 불안을 유발하지? 불안할 때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은 뭐지’ 하고 생각해본다. ‘내가 성질을 내는구나, 내가 말을 좀 함부로 하는구나, 내가 잔소리가 좀 많구나, 내가 문제로부터 도망가는구나’ 등 불안의 모습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불안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어느 정도 낮아진다. 불안을 다룰 때 가장 위험한 상황은 내가 왜 불안한지, 내가 불안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지 못할 때다. 하지만 불안의 정체를 알고 내가 그로 인해 어떻게 변하는지 알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불안은 옅어진다. 불안도가 높으면 누구나 행복하기 어렵다. 정말 행복해도 되는 순간조차 불안 때문에 행복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불안도가 높으면 아이에게 주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학습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불안한 습관을 그대로 배워서 행복을 행복인지 모르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 아이에게 부모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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