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에서 40-66장의 주제 소개가 이뤄졌고, 3절부터는 40장의 주제가 도입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외치는 자의 소리, ‘콜 코레’는 단수처럼 보이지만 사실 집단이 발하는 합성음입니다. “내 백성”이 한 몸 되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소리입니다. 외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먼저 받은 “내 백성”(‘암미’)입니다. 이 “내 백성”은 하나님의 마음과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위로하려고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이 “내 백성”에게 광야에 길을 만들고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내 백성을 불러서 위로하여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과 시온을 위로해 굳게 세우게 하시고, 더 나아가 위로받은 시온이 유다의 성읍들에게 위로의 소식을 전하게 하십니다(사 40:9).
---「“1. 외치는 자의 소리여, 예루살렘의 심장에 와닿게 말하라”」중에서
이사야 42장의 야웨의 종 노래가 그리던 이상화된 이스라엘은 나사렛 예수에게 나타났습니다.…마태복음 12:18-21은 예수님의 무리 치유 사역을 주목하며 이사야 42:1-4을 예수님 사역에 적용합니다.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의 정의 수행은 질병에서 건져 주는 해방 사역이었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양을 구해 내는 자비로운 정의를 수행함으로써, 예수님은 만민의 순종을 유발하십니다. 야웨의 종으로서 예수님은 상한 갈대, 꺼져 가는 심지 같은 자들을 소생시키십니다. 상한 갈대 같은 병자들이 야웨 하나님의 종(예수님)을 통해 영적 소생의 혜택, 영적 재활의 혜택을 누립니다. 아무리 상하고 병든 영혼도 예수님의 영적 격려와 치유를 맛보면 소생합니다.
---「“2. 내가 붙드는 나의 종, 이방의 빛이 되리라”」중에서
49장은 바벨론 유배가 열방의 빛이 되도록 이스라엘을 단련하는 교육이었다고 주장하는 이사야 40-55장의 핵심 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49장을 자세하게 읽어 보면, 우리의 영구적인 우울증을 극복하게 만드는 논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40-55장, 특히 49장은 죄를 해결하고 재활 복구시켜서 죄 이전보다 놀라운 존재로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 수 있도록 설복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핀셋으로 우리의 죄만 집어내는 분이 아니라, 죄를 짓는 나의 소질, 나의 성향을 재가공하고 창조하여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청년 사울은 이사야 49장의 말씀이 응한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정확하게 저에게 이사야 49장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맹인이었고 어두컴컴한 흑암 천지를 헤매던 자였고, 완고한 배타적 선민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의 빛의 계시를 받고 열방과 무할례자를 위해 일생을 바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이사야 49장에 입각한 사도 바울의 자서전입니다. 사도행전 15장부터 쭉 보시면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물론 여기 나온 ‘이방의 빛 사명’을 100퍼센트 실현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모두 100퍼센트 가까이 성취했을 뿐입니다.…예수님의 머릿속에는 흑암에 눌려 사는 땅 끝 사람들, 섬 사람들, 먼 곳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긍휼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땅 끝의 사람과 먼 곳 사람에게까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3. 메시아를 따르는 자들의 온전한 회심”」중에서
이사야 50:1-11에 등장하는 야웨의 종은 하나님께 도제식으로 제자양성을 받은 견습생입니다. 요한복음 5장과 8장, 그리고 10장 여러 군데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 배운 대로, 들은 대로 가르치고 말하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야웨의 종의 1인칭 담화를 자신에게 100퍼센트 적용한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철두철미하게 이사야 42-53장의 길로 당신의 사역을 설명하십니다.
특히 예수님이 이사야 50:4-11을 마음속에 품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4절은 예수님이 아침마다 아버지 하나님께 깨우침 받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영혼을 살리는 전광석화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깨우치고 가르치신 도제교육의 산물입니다.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예수님의 능력은 주 야웨께서 아침마다 예수님의 귀를 열어 깨우치사 학자들같이 알아듣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구사했던 언어의 매혹적 능력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실로 야웨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이상화된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표하는 야웨의 종입니다.
---「“4. 학자들의 혀를 주시고 학자들처럼 알아듣는 귀를 주신 하나님!”」중에서
예수님이 고난당하시는 장면을 빨리 넘어가지 말고,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천천히 경악하면서 놀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놀람이 내 영혼을 전율시킬 때까지 천천히 예수님의 언동을 조사하면서, 예수님의 고독을 음미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를 지고 가겠다는 예수님의 결단이 어떻게 행동으로 드러나는지 묵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삭개오의 죄를 지고 가기 위해 삭개오에게 향하는 비난을 예수님이 자신에게 전가하시는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의 죄책을 지고 가기 위해 그 여인에게로 향하는 진노의 돌팔매를 스스로 받아내시는 장면을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이사야 53장대로 행동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아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모두 실족할 만큼 예수님의 얼굴이 상하여서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지는 순간이 뼈저리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신약의 사도적 증인인 ‘우리’를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놀라게 하십니다. 그들을 영원히 놀람 상태에 감금시켜서 이 감미로운 감격의 파장 아래 살게 함으로써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복음은 너무나 심오해서 끝이 없습니다. 인간의 언어가 따라가지 못합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중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예수님 자신을 충분히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로 가기 전에 공관복음서를 알아야 하고, 공관복음서로 직행하기 전에 구약성경, 특히 이사야 40-66장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일을 당대에 하려다가 십자가 죽음을 자초하셨는지 알아야,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내용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공관복음서와 이사야서의 드라마를 모른다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주 예수의 복음’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만 취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을 예수님과 상관없이 독립적인 자산으로 취급하고 뭔가 천국직행을 인도하는 비밀스런 티켓으로 취급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은 예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예수님과 상관없이 내가 따로 처분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알기 원하시고, 예수님이 어떤 일 때문에 십자가 죽음을 자초했는지 알기 원하시며, 그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의 성격이 무엇인지 알기 원하십니다. 이 일련의 과정에 완전히 공감하면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6. 복 있도다! 애통하는 시온의 남은 자들이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