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와 오래 있고 싶은 마음에, 늘 술 약속을 잡고 술을 마셨고, 기억도 하지 못할 실수를 크게 크게 저질러놓고 다음날이면 사과하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마음이 앞서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것을 분명 배웠는데, 배움과는 다르게 마음과 몸은 따로 놀았다. 젠장. 나는 또 나를 망쳤다.
--- p.19, 「여백」 중에서
역시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리스크와 손해가 없는 사랑. 보험 같은 사랑, 혹은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는 누군가는 “그게 사랑이야?”라고 되물으며 비아냥거릴, 그렇고 그런 사랑.
--- p.67, 「쉬운 년, 이상한 년, 지질한 년」 중에서
무엇을 다 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나는, 짝사랑의 귀재가 되어 늘 사랑에 실패했다.
--- p.68,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중에서
나는 실패하고 싶었다. 사랑에 실패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습지만 나는 늘 나를 멋지게 망칠 남자를 기다렸다. 망칠 만한 남자는 사실 널려 있었고, 나는 골라도 역시 제일 좋은 것만 골랐다. 가장 최악의 남자를. 먼 미래까지 내 인생을 괴롭힐 최악의 남자를 골랐다.
--- p.91, 「데칼코마니」 중에서
나는 그와 진지한 관계를 꿈꾸고 있었으므로, 차이는 것만으로도 미래를 통째로 날린 기분이 들었다. 그와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우리의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가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그려보고, 너의 장례식 날 식사 메뉴까지 고민했던 나였는데, 나는 그와 헤어졌다. 나는 맥주에 치킨을 뜯으며 슬픔을 삭였다.
--- p.103, 「잘 모르는 사람들」 중에서
지구 반대편에는 나를 사랑한다는 글이 떠다니고 있다.
나도, 사랑도 없이 떠다니고 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한다던 그도 이제 내 세상에 없다.
순수한 고백은 대상을 전부 잃은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31, 「우연이 겹치면 운명이라고 믿게 된다」 중에서
공허하다.
너무나 뻔한 거짓말로 서로를 안심시킨다.
나는 오늘 몇 명에게 그 말을 해봤는지 세어보았다.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 p.164, 「도망가자」 중에서
사랑했기 때문에, 정말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버리지 못했다.
--- p.194, 「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