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지금의 (혹은 지금의 모습과 매우 유사한) 성경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는 이유는 우리에게 있는 증거 자료가 제한적이고 부분적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성경이 복잡한 문헌 혹은 여러 문헌이 한데 모인 일련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즉, 이 말은 성경의 각 부분이 지금의 형태를 취하게 된 시기가 모두 제각각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 이 형태로 발전하기까지 두 가지 요소가 작용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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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성경에는 기원, 역사, 발전,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수용(reception)이라는 긴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다. 사실 이 기원, 역사, 발전, 수용이라는 각 요소도 모두 단수가 아닌 복수(pluality)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결국, 하나의 책이 아닌 ‘책들’(ta biblia)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의 각 문헌 그리고 그 안의 장과 절모두가 각각의 이야기가 있음을 말해 준다.
이 말은 곧 수많은 기원(들), 역사(들), 발전(들), 수용(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만약 구약에 이야기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여러 이야기로 구성된 아주 길고도 복잡한 이야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경과 같은 무언가를 역사적 관점에서 고려한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면서 동시에 복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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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첫 번째 창조 이야기에서는 남자와 여자 모두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반면(1:27),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처음에 그저 땅의 흙(히브리어로 ‘아다마’[’adamah])으로 지어진 무명(non-descript)의 생물체(히브리어로 ‘아담’ 여기서 ‘아담’[’adam]은 남자가 아닌 보편적 사람/인류를 의미한다-역주)만 나올 뿐이다.
한 학자는 말했듯이, 이것은 “비옥한 토양에서 나온 인류”(a human from the fertile humus) 혹은 “토양에서 비롯된 인간의 영혼”(a human ‘soul’ from the soil)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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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영문학 교수들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를 연구하기도 했다. 이런 연구에는 분명 많은 상상력 혹은 추론까지도 개입된다. 따라서 이런 연구가 완전히 정확하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또 완전히 틀렸다고도 할 수 없다. 더욱이 이들은 증거(본문 증거[textual evidence])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조작된 연구는 더욱 더 아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의 가장 첫 구절을 통해 본문상의 증거는 반드시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과, 또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문학 포렌식과 영문학 연구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다른 유사 분야의 연구는 율법서에 대한 자료비평 방식의 연구가 적어도 실행 가능하다는 것은 증명해 주며, 더 나아가 왜 오경 구성에 관한 논의는 더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는지도 같이 보여 준다.
--- p.67
시내산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히브리어로 ‘베리트’[berit])을 맺은 곳으로, 이 언약은 그 당시 정치적 조약과 유사한 것으로서 일종의 공식화된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시내산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언약이 맺어지자마자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이자 거룩한 백성으로 묘사된다(출 19:6). 이것은 이스라엘의 언약적 의무를 창세기 1-11장의 원역사와 12-50장의 족장 설화(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그 후손들을 선택하신 것)에서 드러난 세상을 바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연결한다.
--- p.91
만약 구약성경을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듯이) 하나의 원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면, 이를 하나의 원대한 시 혹은 원대한 연작시처럼 읽는 것도 똑같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런 시적 비유는 여러모로 잘 들어 맞는다. 가령, 구약은 많은 부분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데, 이런 점은 줄거리에 해결/대단원(resolution)이 있는 내러티브보다는 시와 더 잘 맞는다. 왜냐하면, 시도 보통 모든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 주기보다는 여러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구약 내 여러 부분에서 서로 매우 상이한 모습들을 보이는데, 이런 점 또한 이야기보다는 시에 더 가깝다. 시에서도 보면 특정 단편시 안에서나 연작시 내 여러 시에 걸쳐 매우 상이한 이미지나 은유가 서로 병치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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