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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든 수행자 임석환

붓을 든 수행자 임석환

무형유산 총서 시리즈-0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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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458g | 150*210*20mm
ISBN13 9791197850202
ISBN10 11978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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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색을 마음에 품은 가난한 대목장의 막내아들

가난한 대목장의 늦둥이 막내아들로 태어난 임석환은 아버지의 손재주를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이었다. 아버지는 늘 막내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목공일과 농사일을 가르쳤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된다. 기우는 가세를 살리고자, 임석환은 무일푼으로 상경을 강행한다. 서울 홍제동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시작한 목재소 일은 너무도 고달팠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낙향(落鄕)을 고민하던 차, 어린 날 어머니를 따라 수덕사를 오가며 가슴 속에만 품었던 그 막연했던 꿈이 운명처럼 찾아왔다.

1965년 여름, 임석환은 자신의 꿈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선다. 진관사 대웅전 단청 불사 현장에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며, 정식 ‘화원’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단청 스승인 혜각 스님(국가무형문화재 단청장, 1905-1998, 속명 김성수)을 만나 본격적으로 단청에 입문한다.

심우도(尋牛圖)와 같던 그림 수행 과정

오방색으로 그려낸 임석환의 삶을 기록한 이야기는 스님들의 수행 과정을 그린 심우도(尋牛圖)와 같았다. 소의 발자국을 찾고, 소를 발견하고, 성난 소의 고삐를 잡아 수행하는 과정을 열 단계의 그림으로 표현한 심우도의 마지막은 소를 자유 자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해탈, 즉 성도한 것이다.

초보 화원 임석환은 선배들 모르게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초보 화원이 그림 연습을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분위기 때문에,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촛불에 의지해 그림을 그렸다. 아침이면 콧구멍이 새까맣게 변해있었지만, 아무도 몰라주는 그 노력은 잠들지 않는 절 처마의 풍경만이 조용히 지켜봐 주었다. 스님의 해탈에 비할 순 없겠지만, 임석환 또한 그림에서만큼은 혹독한 수행 과정을 지나왔다. 옛 화승들처럼 수행의 방편으로 오직 불사에만 매진해온 덕분에 부처님의 말씀을 그림으로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혜각 스님은 늘 이야기하셨어요.
‘단청은 신심이 충만해야 한다. 그 마음으로 해야 불사지.
그게 아니면 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 노동에 불과할 뿐이다.’
이 말씀은 불사를 하는 저한테 신념처럼 새겨진 것 같아요.”
--- 「임석환, 본문」 중에서

무한의 붓질과 3,000장 습화로 완성된, 화원 임석환

혜각 스님 문하에서 김천 ‘직지사’ 천불전 단청에 참여하던 어느 날, 일손을 돕기 위해 그곳을 찾은 혜암 스님과 만나게 된다. 매일 밤 그림 공부를 하는 임석환을 지켜보던 스님은 불화 공부를 제안한다. 혜암 스님을 붓 잡는 법을 알려주기 전에 기도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출가하는 스님들처럼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채, 법당에 앉아 예불하며 성난 소의 고삐를 잡듯 마음 다스리는 법을 배워갔다.

“불화는 붓 손질, 선 하나에도 정신과 혼을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의 자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 「혜암 스님 말씀, 본문」 중에서

마음이 다 잡히자 스님을 그제야 붓과 습화용 ‘시왕초’를 건넸다. 습화란 초(밑그림)를 옆에 놓고 눈으로 보고 미농지에 목탄과 붓으로 옮겨 뜨는 것이다. 하루 종일 앉아 습화만 그리다 보니 양쪽 엉덩이에서 주먹만 한 종기가 올라왔지만, 애써 모른척하며 습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1,000장 정도 습화를 이어가던 어느 날, 스님이 주신 시왕초와 임석환이 그린 습화의 모든 선이 하나가 되었다.

“네 그림이 곧 내 그림이다. 네가 바로 나인 것이다.”
--- 「혜암 스님 말씀, 본문」 중에서

드디어 완성된 제자의 그림을 본 스님은 대대로 내려오는 ‘초강대왕초’를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초를 건네주는 것은 자신의 법통을 이으라는 상징적인 증표이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3,000장 정도 습화를 이어가다 드디어 불화의 출초(밑그림) 작업을 오롯이 혼자서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쓰인 불사의 역사, 부처님 옻칠 개금 복원

가난을 핑계로 1년 정도 절간에 발길을 끊고 돈이 되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향냄새가 그리운 그는 다시 돌고 돌아 절간으로 돌아온다. 서른 후반, 단청과 불화라는 꿈을 꾸게 만들어준 수덕사에서 불사할 기회가 주어진다. ‘수덕사의 여승’ 일엽 스님의 손때가 묻은 수덕사의 환희대 ‘쌍룡문양’ 단청, 명암 기법을 도입한 불화 그리고 부처님 옻칠 개금은 임석환이 젊은 시절 열정과 노력으로 만들어낸 불사라고 자신 있게 꼽는 작업 중 하나이다. 특히나 부처님 옻칠 개금은 그간 명맥이 끊겼던 옻칠 개금의 역사를 다시 잇게 만든 역사적인 기록물이다. 일본에서 배워온 기술과 노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얻은 옛 작업법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진 복원 시도를 통해 결국 그의 손에서 옻칠 개금의 역사는 다시 이어졌다.

불화로 기록될 삶

불화라는 것이 본디 법당에 걸리기 위해 그려지는 그림이기에, 어쩌면 ‘모시지 않는 내 작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소장품’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불화로 개인전을 한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아무리 수개월, 수년을 품었던 그림일지라도, 법당에 걸린 순간부터 그 그림은 출가(出家)시킨 자식처럼 내 핏줄이 흐르는 남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가 전시회에 걸고 싶은 ‘내 작품’이라는 것은 ‘작품’으로서의 그림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저 그림을 통해 묵묵하게 걸어온 자신의 길을 찬찬히 함께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유럽이나 외국 여행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성당이잖아요. 거기에 그려진 유명 화가들의 벽화나 조각상을 보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다 몰려들어요. 저는 우리 불화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멋진 작품들을주변의 사찰만 가도 감상할 수 있잖아요. 대중들이 우리 불화의 아름다움과종교화 이상의 가치를 함께 바라봐 줬으면 좋겠어요.”
--- 「임석환,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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