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종교와 신에 대해 알아보기]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는가가 아니라 정답을 찾는 것입니다. 시험 문제를 풀 때도, 1번이 정답인데 2번이 정답일 거라고 굳게 믿는다 해서 그게 답이 되지는 않지요. 좋고 싫고가 아니라 정답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세가 있어서 진짜 천국이나 지옥에 가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일보다 심사숙고해서 내가 누구를 믿고 따라야 천국에 갈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칼자루는 내가 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맘에 안 들어도 바로 그 존재를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 p.38
[2부 기독교란 어떤 종교일까요?]
첫째,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인간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가?
둘째,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은 왜 이 땅에 존재하고 살아가는가?
셋째, 어디로 가는가?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이 문제에 골머리를 앓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종교가 생기거나 누군가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인간에게는 존재에 대한 의문과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 궁금증이 본성에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낙원을 잃고 쫓겨난 그들이지만 본성 깊은 곳에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게 된 처지에서 무엇이라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공포가 남아 있었습니다. 갑자기 해와 달을 섬기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만들었다는 생각, 그리고 인간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깊이 남아 있고, 또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왔기 때문입니다.
--- p.63-64
먼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뜻입니다. 제가 미국 대통령이 누군지 자세히 알고 있어도 미국 대통령은 저를 전혀 모르겠지요. 그것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알고 알아보는 것, 단순한 인적사항이 아니라 깊이 아는 것, 그것이 참된 만남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부부가 잠자리에서 하나가 되는 것도 점잖게 ‘안다’라고 표현합니다.
그저 알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사귀는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것도 대충 알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알아보는 사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시작은 먼저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분의 속성부터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인 사람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아들을 내어주신 분입니다. 아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친히 인간이 되신 놀라운 사랑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을 알면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 이외에 다른 무엇으로도 구원은 못 받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방법입니다.
--- p.90-91
[3부 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성경을 시험삼아 읽어 본 어떤 한학자는 좋은 내용으로 사람을 가르치려는 한학과는 달리 너무나 솔직하다면서 성경이 진짜 인간과 하나님에 관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합니다. 성경의 목적은 진실을 전달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사실을 적나라하게 전달합니다. 물론 그 표현은 매우 품위 있고 절제돼 있지만 아주 직접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면 예수님 시대는 삼국시대 초기입니다. 4천 년 전은 고조선 건국 때니까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 수 있겠지요. 당시 한국사 기록은 우리가 바로 이해할 수가 없는 수준인데 성경은 지금도 여러 신학대학교에서 연구하고 글자 하나까지 대조하면서 그 의미를 나누고 연구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놀라운 책입니다.
성경은 오묘하게 기록되어서 서로 시간과 사건에 모순이 없고 논리적 결함도 없습니다. 40명이 2천 년 동안 서로 만나지도 않았는데 각각의 기록이 마치 한 저자가 쓴 것처럼 일관성이 있고 연결될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걸 믿을 수 있냐” 했던 사람도 성경의 참맛을 알면, “어떻게 이걸 안 믿을 수 있지?” 하고 생각이 바뀝니다
--- p.111-112
[4부 구원의 실전단계]
‘회개’라고 하면 사극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석고대죄하는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울며 가슴을 치고 죄를 뉘우치는 과정도 분명 회개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회개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회개’라는 말의 의미는 뉘우치거나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깨닫고 돌이키는 의지와 행동을 말합니다. 회개는 ‘돌아섬’, ‘돌이킴’입니다. 다시는 전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부족한 사람들이 많듯이 사람은 아무리 회개해도 옛 성품 때문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늘 한계를 느끼고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는데요. 인간이 구원받았다고 완벽해진다면 자기 스스로 그렇게 된 줄 알고 우쭐하며 교만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예전에는 죄를 향해 가는 죄인이었다면 지금은 죄를 등지고 달리는 죄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공로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 p.148-149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리고 그분을 향한 믿음이 내 안에 있다면 기도로 고백해 보세요. 형식이 갖춰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속 중심을 보시는 분이니까요. 기도는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에 동의하고, 믿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자, 이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세요.
“전능하신 하나님,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합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모르고, 또 하나님을 외면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 인생의 답을 찾았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돌이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갑니다. 주 예수님의 피로, 그 귀중한 피의 공로로 인류의 모든 죄가 제거됨을 믿고, 그 사실을 믿는 저의 죄도 모두 용서받은 줄 믿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의 삶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에는 특별한 공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누가 대신 베푸는 것도 아닙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 p.15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