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의 장편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현대소설의 새 영토를 개척한 박태원의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이 부활했음을 직감했다. 1930년대 경성의 거리를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우울하게 산책하는 고독한 소설가 구보를 선택한 박태원과 달리, 고요한은 첨단의 대도시 서울에서 장례식장 알바로 고단한 두 젊은이의 밤 산보에 집중한다. 때로는 도보 때로는 오토바이의 굉음 속에 열리는 강북의 밤 풍경은 가난하지만 따듯한 인문지리로 반짝이는데, 청계천에서 튀어 올라 인왕산으로 날아가는 물고기의 환상이 상징하듯, 소수자들 사이의 위로에 기초한 연대가 은은하게 생동한다. 자칫 희망이 무서워지는 우리들의 시대에 가볍지 않은 연애소설을 쏘아올린 작가의 능력이 새삼 돋보이매, 21세기 구보의 탄생을 감축한다.
- 최원식 (문학평론가)
이 소설은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 남녀가 오토바이로 밤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농담을 주고받는 청춘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죽음을 수용하고 작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모색과 치유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죄의식과 상처를 남기며 쉽게 작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다른 이별을 파생시키거나 방황하게 만들지만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앞에 이르면 우리는 봄밤에 만개한 벚꽃의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은희경 (소설가)
달빛이 견인하여 날아오르는 오토바이와 청계천의 물고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밤의 맥도날드. 서울의 밤이 환상처럼 꿈처럼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영상 이미지가 윤슬처럼 빛나는 소설이다.
악인도 선인도 없지만, 개성적인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죽음이 스며든 일상을 깊고도 무겁지 않게 따스하게 그린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죽음이 이토록 깊고 푸른 밤의 여행 같다면, 우리는 삶을 얼마든지 설레며 견딜 수 있다. 아름다운 애도와 성장의 서사가 청춘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위안을 선물하리라 생각된다.
- 권지예 (소설가)
장례식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두 젊은이는 벚꽃 핀 밤의 장례식장을 나와 새벽 첫 전철이 올 때까지 불이 환히 밝혀진 맥도날드 매장들을 순례하며 밤의 광화문을 떠돈다. 길에 떨어진 하얀 면사포를 주워 머리에 쓰기도 하고, 덕수궁 정문에서 ‘이리 오너라’ 외치고, 벤치에 앉아 있는 소설가의 동상을 끌어안는다. 그렇게 걷고 또 걷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는데, 소설은 삶과 죽음의 시간을 껴안고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가슴 시린 초상에 이른다. 쓰이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침묵과 여백의 공간을 서사화하는 능력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상찬받을 만하다.
- 정홍수 (문학평론가)
오렌지를 들고 장례식장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가고 빨간 양복을 입은 채로 문상을 간다. 이처럼 죽음을 가뿐하게 다루는 방식이 이 소설이 가진 미덕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장례식장 아르바이트를 끝낸 ‘나’와 ‘마리’가 새벽 첫차를 기다리면서 산책하듯 광화문 일대를 뛰어다니는 발랄한 이미지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겼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쾌함을 잃지 않고 그 리듬을 유지해 나간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이 끝나는 그 지점에서 소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허를 찌른다. (중략) 그럼에도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 없다. 고통이 너무도 크고 깊지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떠넘기고 싶지 않은 안간힘만 있을 뿐이다. 내가 덜 슬프기 위해서라기보다 누군가 덜 슬프기를 바라는 마음에 입는 빨간 양복. 큰 위로를 받았다.
- 하성란 (소설가)
장례식장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오토바이를 탄 채 새벽녘까지 광화문 일대를 돌아다니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이 잠깐 들르는 불 켜진 햄버거 가게엔 언젠가 나도 가본 적이 있다. 장례식장에 있는 죽은 자들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유령처럼 보인다면 이상할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누구의 미래든 죽음이 아닌 경우가 있나.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그 간명한 사실을 확인하는 소설이다. 수많은 임사체험 경험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사후생(On Life After Death)』을 쓴 죽음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 따르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에 따르면 죽음은 긴 여행이다. 그것이 무엇이라 말하든, 어디에 있든, 이 소설을 읽는 동안만큼은 이 청년들로 인해 위로받게 된다.
- 강영숙 (소설가)
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타고 밤의 도로를 달린다. 그의 라이딩은 생생하고 쿨하다. 달리는 장면들을 상상하다 보면 밤의 도로들이 활주로로 변하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달리고 달리다 어느 순간에는 날아오를 것 같아서다. 라이딩은 산책자처럼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는 행위인 동시에 운전자처럼 빠른 속도로 풍경을 스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세상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 세상은 우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삶 속의 죽음과 죽음 속의 삶을 이야기하는 ‘밤의 이야기’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처럼 라이딩의 속도와 라이딩의 가벼움으로 밤을 스케치하는 작품을 읽은 적은 없다. 밤을 달리며 생의 무거운 짐들을 휙휙 스쳐 지나가는 청춘은 처음 보는 아름다움이자 처음 느끼는 가벼움이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