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빛깔로 수놓은 칠보금속공예
유리질 유약으로 금속 기물의 표면을 장식하는 기법인 칠보는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오랜 시간 널리 사용해 왔습니다. 이전 시기에도 몇몇 칠보작품이 전해지지만, 한국의 칠보는 조선 시대에서 가장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금속공예의 주요 장식 기법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 시대의 칠보는 마치 보석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하며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공예품을 장식했습니다. 근대의 칠보는 오얏꽃 문양 은기물과 대한제국 메달 등에 더해져 근대 황실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 칠보는 상품, 예술, 취미를 아우르며 한국 사회 전반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흥미로운 배경에도 불구하고, 칠보 연구는 공예사에서 아직 가장 미진한 분야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출간한 칠보 관련책과 논문은 대부분 칠보를 직접 제작하는 공예가를 위한 기법 연구에 집중해 왔습니다. 앞서 발행된 훌륭한 기법서를 통해 수많은 공예가가 작품 제작에 큰 도움을 받아 왔으나, 한편으로 한국 공예사에서 칠보의 위치를 정립할 수 있는 연구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 칠보의 기원과 역사, 파란과 칠보에 관한 용어 논의, 근대기 한국 칠보의 사례, 칠보 유약과 기법의 변화상 등 앞으로도 칠보 연구에서 새롭게 채워나가야 할 중요한 빈자리는 여럿 남아있습니다.
『한눈에 보는 칠보』에서는 현재까지의 칠보 관련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국내외 여러 기관에 소장된 칠보 기물을 최대한 다양하게 모아 한 자리에 소개했습니다. 본 책은 저와 노용숙 선생님 두 명의 공저자로 집필이 이루어졌습니다. 수십 년의 작가 생활을 통해 다양한 칠보 기법을 직접 연구하고 구사하신 노용숙 선생님께서 3장을 맡아 칠보의 기법과 도구에 대한 글을 써 주셨으며, 제가 1장, 2장, 4장을 맡아 이론과 실습 양 방면에서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저자 머리말」 중에서
칠보 기법에 사용하는 여러 재료 중 유약은 가장 중요한 재료이다. 칠보 유약의 주성분은 유리질 함량이 높은 석영(silica, 규석)으로, 석영은 약 1,700℃ 이상에서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온도는 일반적인 금속의 융점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석영만으로는 유약을 만들 수가 없다. 석영을 유약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녹는 온도가 낮은 연단, 붕사, 소다 등의 용제를 혼합 첨가하여 전체 혼합물의 용융점을 낮추고, 금속 산화물을 섞어 색을 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배합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유약 제조 과정이다. 유리나 도자의 유리질 유약도 칠보와 유사한 면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바탕 재료에 유리질의 유약을 사용하는 방법이 상호 발전하며 유약 기술의 향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리질의 유약을 강력한 열로 금속 바탕재에 녹이면 칠보의 다채로운 장식 효과가 만들어진다. 이때 칠보의 제작 온도는 유약의 융점과 금속 바탕재의 융점 사이에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작업 과정에서 유약은 녹아야 하지만 바탕 금속은 녹지 않아야 한다. 불을 조절하는 능력은 칠보 기술의 발전에서 핵심적인 부분으로, 높은 온도를 낼 수 있는 연료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온도를 조절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이 고급 칠보의 생산을 판가름했다.
--- p.14~15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해진 칠보 제작 문화는 20세기 초 잠시 사그라들었다가 1960년대 이후 해외에서 칠보 기술을 배워 온 인물들에 의해 다시 현대적으로 재구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술과 재료의 발전에 힘입어 전통 칠보의 도구와 설비, 기법들이 현대화되었으며, 효율적인 방법을 통해 다양한 칠보 기법의 표현이 가능해졌다. 이 장에서는 전통적인 칠보 제작 방법을 바탕으로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기법을 함께 소개한다.
전통적인 칠보 제작 방법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다행히 조선 말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작업을 이어오던 몇몇 장인의 구술 증언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화 이전의 칠보 작업 방식을 정리했다. 조선의 칠보 제작법은 파란이라 불렀는데, 금속 표면에 유약을 올린 뒤 이를 500℃ 전후의 온도에서 녹여 금속에 부착하는 식이다. 파란을 놓는 바탕 금속은 주로 은이었다. 파란의 유약은 대부분 중국에서 완제품을 수입하여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파란은 장식적 효과뿐 아니라 금속의 표면 부식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었다.
--- p.9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