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병졸에 지나지 않는 부하가 감히 자신에게, 아니 조직에게 반기를 들고 나서는 건 용서할 수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고야마는 지금 적의에 가까운 감정을 눈에 담고 오히려 후루카와를 노려보고 있었다. 반항하겠다는 건가! 이 조직에서 상사를 거스른 놈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지. 후루카와의 생각이 거기에 미쳤을 때 고야마는 입을 열었다.
“저는 톱니바퀴가 아닙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제 생각이 있고 의지가 있는 은행원입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반박은 지독하게 왜곡된 형태로 후루카와의 사고 회로에 들어왔다. 은행이라는 조직에 대한 반란, 그리고 후루카와에 대한 조소라는 형태로.
“부지점장님은 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고야마가 말했다.
“까불지 마!”
이제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다. (…) 고야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고야마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더니 벽 쪽에 놓인 책상으로 쓰러졌다. 쿵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이성을 잃은 후루카와에게는 씩씩대는 자신의 거친 숨소리 외엔 들리지 않았다.
고야마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책상 옆으로 털썩 주저앉으며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의식이 없었다.
--- p.22~23 「1장 톱니바퀴가 아니야」 중에서
지금 이 교섭으로 은행원으로서의 자신의 미래가 결정된다. 나는 지금 인생의 갈림길에 있다. 이 생각에 도모노는 마음의 여유를 잃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긴장되었다. 목이 바싹 말라 소리마저 흔들렸다. 그때.
“주거래은행이라고?”
순간 도모노는 오키도의 표정이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확실히 대출 액수가 가장 큰 은행이라는 의미에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까지 주거래은행에 상응하는 지원을 해줬느냐 하는 문제로 넘어가면, 대단히 의문인걸.”
사장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도모노는 반론할 말을 찾으며 상대를 바라봤다. 오키도가 말을 이었다.
“은행은 맑은 날엔 우산을 씌워주지만 비가 오면 빼앗아가는 곳이라고들 하지. 선대, 그러니까 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미국에서 불려와 이 회사를 물려받고 난 뒤에 그 말이 맞구나,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모르오. 자네는 우리 회사가 좋을 때밖에는 알지 못하지. 그렇지만 말야, 이 자리에 오기까지 큰 시련이 몇 번이나 있었다네. 언제였던가, 당장 내일 돈이 없으면 부도가 날 위기에 몰렸을 때 당신들은 대출을 끊었소.”
느닷없이 옛날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오키도의 표정은 점점 험악해졌다. 도모노가 ‘주거래은행’이란 말을 꺼냄으로써 오키도가 진작부터 품고 있던 은행에 대한 증오에 불을 댕겼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 p.66~67 「2장 상심 가족」 중에서
“물증이 나온 이상 의심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그럼, 형사사건으로 하죠.”
니시키의 뜻밖의 발언에 후루카와도 말을 잃었다.
“뭐, 뭐라고?”
“형사사건으로 하면 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고는 니시키가 아이리에게 물었다. “기타가와, 자네 이 띠지를 만졌나?”
“네? 네, 그게, 아마…… 아뇨, 만지지 않았습니다.”
띠지가 나온 뒤의 상황을 더듬어보며 아이리가 대답했다. 니시키가 이어 말했다.
“어떻습니까? 이 띠지의 지문을 채취해보면 기타가와가 만졌는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만지지 않았다면 조사해도 상관없겠지, 기타가와? 어떤가?”
“네. 저는 상관없습니다.”
아이리가 대답했다. 후루카와가 “맙소사” 하고 다리를 꼬며 떫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증거품으로 비닐 안에 보관했다가 경찰에 건네면 됩니다. 그것으로 기타가와의 무죄가 증명될 겁니다.”
“자네 바보 아닌가! 그런 일은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지 않나?” 후루카와가 내뱉듯이 말했다.
“하지만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엉뚱한 직원이 죄를 뒤집어쓰고 의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그렇게 하시죠?”
니시키가 재촉했다. 이어 테이블 위의 자료를 발견한 니시키는 후루카와에게 분노를 드러냈다.
“다른 직원들을 보세요. 아이리에게 씀씀이가 헤프다고 할 계제가 아닙니다. 그녀는 월급의 일부를 집에 내놓습니다. 제가 보건대 이 지점에서 가장 야무지게 돈을 관리하는 직원입니다!”
--- p.123~124 「3장 미운 오리 새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