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났던 국내 여행지 중에서 남해는 오롯이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나에 대한 답을 찾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시끌벅적한 파티가 열리는 게스트하우스도 없고, 여행길에서 우연히 여행 친구를 만나기도 힘들지만, 발길 닿는 곳마다 펼쳐진 풍경이 나를 위해 준비된 선물 같은 곳이었다.
우연히 어느 숙소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나무로 된 낮은 천장 아래 작은 1인용 침대, 침대 옆 네모난 창문으로 따스한 햇살이 방 안까지 들어오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에 묻어난 빈티지한 느낌 때문인지 사진을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빨간 머리 앤이 나타날 것 같았다.
산 중턱에 걸친 도로는 바다를 더 깊고 넓게 보이게 했다. 이렇게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은 처음이었다. 바다라는 큰 액자 위를 달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맑은 하늘도, 선명한 바다도 아닌 큰 구름이 액자의 반을 삼키고 있는 우기의 여름날이었지만, ‘그림이다!’라는 표현이 저절로 나오는 그런 풍경. 25살의 내가 멋진 풍경이라는 걸 알면 얼마나 알았을까 싶지만, 그 어린 마음에도 남해의 풍경이 그림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다의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고 산꼭대기를 베어 먹는 구름이 낮게 걸린, 무언가 꽁꽁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남해의 풍경이었지만, 그 풍경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행복해져야 할 이유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자연스레 행복한 사람이 된다. 남해는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여기저기 많은 곳을 다니는 것도 좋지만, 마음의 고향 같은 여행지, 한 곳을 두는 것만큼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요로운 일은 없다.
“눈을 되찾았으니 이제 큰일을 해야겠네요.” 교수님의 그 한마디에 6년 전 망막 박리 진단을 받은 날부터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삶의 유한함 속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된 시간이었다. 재수술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 일을 그만두었다. 새로운 꿈이 생긴 탓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어쩌면 그 봄, 남해를 가기로 한 그 순간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눈 수술은 새 출발을 위한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었고, 더 많은 세상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간절히 원하던 세상이다.
“네가 남해를 왜 자주 가는지 알 것 같아.”
남해 여행을 다녀온 친구의 연락 한 통으로 심심하던 마음이 벅차오른다. 남해를 찾아갈 때마다 푸른 남해의 풍경을 보고 평온해지던 마음을 친구도 느꼈던 걸까. 그렇다면 친구가 바라본 남해의 모습처럼, 나도 너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자주 가는 곳들이 나를 말해주는 것처럼, 나는 남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길을 따라 늘어선 전봇대도, 길 위에 놓인 비료 포대들도 남해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니 아쉽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애초에 완벽한 한 장의 사진이 꼭 필요한 것인지를 반문하게 되었다. 이 장소가 나에게 보여주는 건 남해의 풍경뿐만 아니라 욕심내지 않고 사랑하는 것들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이었다.
같이 아침 먹기를 잘했다. 아침을 먹자는 사장님의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 침대에 누워있었을 나를 생각하니 얼마나 외로운 하루의 시작이었겠냐 싶다. 깊고 구수한 우동 국물에게 이기지 못한 척했지만,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건 적정한 온도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였던 것 같다.
바다는 가까이에서 보면 철썩철썩 바쁜 파도를 만드는 모습이 가끔 무섭기도 하지만, 높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저 크고 잔잔한 호수처럼 보인다. 수평선을 채우는 섬들이 있어 더욱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내 안에서 정신없이 요동치던 마음들이 호수 같은 바다를 따라 동화된다. 닿지 않을 거리에 있지만, 마음이 먼저 그곳에 가 눕는다. 창문을 열고 있으니 바람이 나를 통과하며 모든 것을 환기시키고, 이내 나는 가벼워진다. 마을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하고, 살아 움직이는 건 바람과 바다, 나뿐인 것 같아 차창에 팔꿈치를 기대어 모든 풍경이 내 것인 것 같은 사치를 만끽한다.
처음에는 여름의 남해를 보고, 봄이 궁금해서 봄을 보고, 또 가을을 보고, 겨울을 보고, 그렇게 사계절의 남해를 보고 나니 어느 계절에 찾아오더라도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마음이 뭉클해져. 어느 계절이 더 예쁘다고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어느 계절에 오더라도 남해는 아름답다는 거야.
우리는 굳이 뜨거운 볕이 쏟아지는 마당으로 밥상을 가지고 나와 밥을 먹었다. 바다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파도소리를 곁들이면서. 먹다 보면 얼굴은 뜨겁고 눈이 부셔 결국은 모자를 눌러쓰지만, 마당에서 밥을 먹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루에서 떡만둣국을 먹었고, 어떤 날은 밥공기 가득 구운 소시지만 놓고 밥을 먹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언니가 직접 잡아 온 문어로 문어 요리를 해 먹기도 했다. 어떻게 해 먹어도 행복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 시간 동안만큼은 마음이 충분히 느긋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화롭고 느긋하게, 바람이 불면 구멍 사이로 찬바람이 송송 들어오는 성긴 니트처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는 것을. 촬영 전 반드시 카메라 배터리를 100퍼센트로 충전하는 것처럼, 촬영 전 나의 컨디션이 100퍼센트 충전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촬영을 마친 후에도 나를 위한 시간을 쓸 수 있는 배터리가 여유 있게 남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종종 내 앞으로 경운기가 나타날 때면, 앞질러 가기보다 경운기 뒤를 조용히 따라간다. 남해의 속도도 때로는 이렇게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 마을을 울리는 경운기가 다니지 않는 남해는 생각만 해도 너무 각박하고 심심할 것 같다.
“사진은 한순간을 여러 번 살아볼 수 있으니까.” 사진을 찍으면서 그 순간을 살고, 사진을 정리하면서 다시 회상하면서 또 살고,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사진을 보고 또다시 살게 된다. 영화 「어바웃타임」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시간을 돌려 여러 번 살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능력은 없다. 시간을 돌려 여러 번 살아볼 능력은 없지만, 돌아가고 싶은 행복한 순간들을 곱씹으며 여러 번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사진이다. 사진에 이런 놀라운 능력이 숨어있는데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간호사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누고 돕는 일이라면, 사진작가는 다른 사람의 행복과 즐거움을 기록하고 돕는 일이니 분명 통하는 게 있네요. 유난히 따듯했던 글과 사진이 오늘에서야 이해가 갑니다.’
간호사도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예쁜 시간, 예쁜 계절을 창문 하나 없는 폐쇄된 수술실에서 흘려보내기엔 보고 싶은 세상이 너무 많았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성취감이 있었지만, 누군가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더 큰 성취감을 느꼈다. 마음 설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좋아하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다는 걸 4년차가 된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지금도 일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고, 매번 힘들다고 툴툴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즐겁다. 좋아하는 일을 통해 얻는 행복이, 그렇지 않은 것들을 할 때의 어려움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후회는 남는다. 그렇다면 하고 후회하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다.
남해를 빛나게 만들어주는 풍경만 있었다면, 남해가 나에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남해가 유독 아름다운 이유는 남해를 찾아가는 이유가 되어주는 사람들 덕분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