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문학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다양하다. 김수영의 문학 자체가 현실과 현재에 개입하는 여러 개의 문이며 거대한 문이기도 하다. 시대와 사회를 넘어, 차갑게 경직된 현대의 수많은 개인들 사이로 활짝 열린 이 개방성이야말로 우리가 김수영을 통해 누리는 최대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 「서문」 중에서
곧은 소리를 부르는 곧은 소리, 모든 규정성을 깨뜨리는 무지막지한 소리에는 죽음충동이 꿈틀댄다. 죽음은 모더니즘이 숭배하는 창조적 파괴의 원리다. 그런데 곧음[直]은 과거 선비 정신의 핵심에 해당했다. 대 에 비유되는 선비 정신에는 죽음충동이 이글거린다. 김수영의 시에서는 모더니즘과 선비 정신이 서로 식별되지 않는 영점에서 만난다. --- p.33
김수영은 일본적인 것과 냉전적인 것을 함께 극복해야 했다. 지리멸렬의 시대에 유대인 카프카가 써야 했던 독일어처럼, 김수영에게 일본어는 소수자 언어가 아닐까. ‘친일문학=일본어 사용/민족문학=한국어 사용’이라는 낡은 이항대립은 그의 글쓰기 앞에서 박살 난다. 양극단 사이에서 아픈 몸으로 걸으며, 이국어를 통해 세계 지성을 습득하고, 결국 그는 모국어로 거대한 뿌리를, 아프지 않을 때까지, 온몸으로 썼다. --- p.42
놀랍게도 꽃은 김수영 시에서 언제나 죽음과 동반한다. 김수영은 꽃의 과거와 미래를 시간의 관점에서, 변화의 관점에서 본다. 생물학적 정의에 따른다면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꽃은 새로운 생명이 준비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죽음과 탄생이 공존하는 표상이기도 하다. 꽃이 혁명의 비유가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전쟁에서 경험한 무수한 죽음과 그 죽음을 바쳐서라도 추구할 자유가 꽃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광경은 김수영 시학이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 p.49
헬리콥터는 횡단과 정복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누군가를 돕고, 높은 곳에 멈춰서 세상을 응시하는 데는 능한 기계다. 헬리콥터의 호버링(Hovering) 운동은 공중에 쉽게 멈춰 선 것처럼 보이지만 부단한 균형 잡기의 노력으로 간신히 이루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헬리콥터도 서러운 존재로 감지된다. --- p.83~84
김수영은 생활의 운산(運算)과 무위의 글쓰기 사이에서,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합리와 비합리 사이에서,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수없이 번민하며 내적 싸움을 이어갔다. --- p.108
마치 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돌처럼, 세상이라는 더러운 물에 빠지지도 않고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초월하지도 않는 것, 생활이 뮤즈를 너무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김수영이 생활에서 얻어낸 균형감각 또는 속도감각이 아닐까 싶다. 생활과 예술 사이에 중용(中庸)의 길을 내기 위해 그는 부단히도 자신 속의 뮤즈에게 “노래의 음계를 조금만 낮”출 필요가 있다고 속삭였을 것이다. --- p.112
김수영에게 번역은 세계성을 호흡하는 지적 실천이었다.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산문 「시작 노트 6」, 1966)는 시인 자신의 말마따나, 그의 문학은 번역을 통한 타자와의 부단한 소통의 결과였다. 김수영은 외서 읽기와 번역을 통해 타자와 만나며 많은 결여를 지닌 자기(문화)를 아프게 자각했으며, 고통스러운 인식을 부둥켜안고 세계와 부딪히며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그 고투에서 흘린 선혈이 그의 시와 산문 도처에 낭자하다. --- p.125~126
김수영에 대한 잡지 구독 지원이 냉전의 에이전시들이 의도한 대로 반공주의적 효과를 발휘했는가는 의문이다. 그 의도는 김수영에게 의식적으로 오인되거나 혹은 창조적으로 전유되면서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세계문화자유회의의 지식인 그룹의 전언을 경청했지만, 그들의 주장을 보편으로 받드는 대신 자신의 현실 속에서 곱씹으며 새로운 주체성을 형성하는 자원으로 활용했다. --- p.128
김수영은 우리에게 기지(旣知)의 꽃을 잊어버리라고, 미지(未知)의 것이 도래하여 피어난 지금 여기의 노란 꽃을 받으라고 했다. 김수영의 꽃은 미완이고 못난 데도 있다. 꽃보다 꽃을 지지하는 산문의 줄기가 더 요란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한국 현대시사는 김수영의 꽃을 완성품으로 숭배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입된 비뚤어진 글자를 다시 세우고 다시 비틀면서 그가 하고자 했으나 완수하지 못한 것, 그 문제 설정의 용기와 정직한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이 김수영의 꽃이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이유이다. --- p.142
한국전쟁 당시 김수영이 갇혀 있던 포로수용소는 화장실에서 목 잘린 시체가 떠오르곤 하던 곳이었다. 그는 2년간 수용되어 있다 자유의 몸이 되어 풀려났다. 그러나 쓰려던 사상을 금지당한다면, 시를 통해 말한 것이 공적 공간에서 의미 있는 발화로 인정될 수 없다면, 그것은 그에게 형편 좋은 수용소 안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학적 자유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 안에 닻을 내릴 수 있을 때에만 온전한 것이다. 자유는 정착을 경계하지만 난파가 아니다. 물 위에 거주하려면 정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을 위해 그는 역사 속에 시의 거대한 닻을 내리려 했다. --- p.152
지식인들은 늘 ‘적’을 분별하고, 적과 도덕적이고 지적인 싸움을 벌이며 자신의 정당함을 선포하는 집단이다. 김수영 또한 그러했다. 그는 적 없이는 사유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김수영은, 생활의 세계를 살고 부여잡고 해찰했던 그는 끝까지 환멸을 느낄 수 없는 자였다. 환멸을 느끼는 자신을 환멸스럽게 여길지언정, 허접한 세상살이와 사람살이, 그가 그토록 흠모하는 모던한 세계의 반대인 대한민국에 환멸을 느낄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 p.167
김수영의 시는 비루하고 창피해서, 무섭고 겁이 나서, 제대로 보지 못하던 것들을 바로 보는 정시의 경험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김수영은 김수영을 바로 보고자 했는데, 김수영의 거울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기 그림자를 본다. --- p.179
김수영은 번역을 “부업”(「번역자의 고독」) 삼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번역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김수영은 번역 텍스트와의 대화적 관계를 통해 자신의 문학론을 구축해갔다. 냉전의 주체들은 미국의 문학, 문화, 사회과학등을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한국이 미국을 닮아가길 원했지만, 김수영에게 ‘번역’은 냉전적 사고의 일방적인 수용이 아니었다. --- p.198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이 시로 말미암아 많은 여성 독자가 더 이상 김수영을 읽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아내 살해, 데이트폭력 살해 등 가까운 남성에 의해 자행되는 여성 살해에 대한 분노와 공포가 점증되는 시대 분위기를 타고 이 시가 다시 표면에 떠오른 것이다. 김수영이 왜 그토록 자주 아내를 시에 등장시켰는지, 김수영에게 여자는 어떤 존재인지 등 필연적인 질문들이 자칫 “읽지 않겠다”라는 손사래에 밀려 지워질 위기감도 생긴다. --- p.208
김수영은 ‘도중’에 죽었다. 아직 일가를 이루었다 하기엔 젊지만 그가 죽기 전 남긴 시들을 보면 어떤 경지를 향하여 한고비 넘어선 기운도 있다. 그가 영원히 길 위에 있으려던 건지 집을 한 채 지으려던 건지는 알 수가 없다. 그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그 중단됨을 결말로 삼아 독자인 나는 그의 인생이 완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다행히 그는 죽기 전에 아내를 경유하여 여성이라는 존재가 (남성과 마찬가지로) “죽음 반 사랑 반”(산문 「나의 연애시」, 1968)의 존재라는 통찰을 남겼다. 당대의 어떤 시인, 소설가보다 훨씬 집요하게 ‘여편네’를 탐구한 덕분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힌 폭력가장이고 지일에는 창녀를 사는 속물이라는 평가를 김수영이 피해 갈 수는 없다. 60년대를 짊어지고 그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다. --- p.213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일에 그림자 따위는 필요 없다. 온몸은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무엇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시인 자신은 의식적으로 무장된 실천적 지식인이어야 하되, 시를 쓰는 작업 자체는 그 의식에 얽매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무의식적 투신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시는 ‘문화와 민족과 인류를 염두에 두는’ 일반적인 의미의 참여시와는 그 출발점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바로 그와 같은 온몸의 시야말로, 문화와 민족과 인류와 평화에 공헌하는, 진정한 참여시일 수도 있다는 것. 이제 우리는 이것을 ‘무의식적 참여시’라고 부르면서, 바로 이곳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 p.231
김수영은 죽음이 삶을 각성시키고, 생성을 이어나가게 하고, 나를 공동체로 나아가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은 시의 제재, 시의 주체, 언어의 문제에까지 관련된다. 이 점은 김수영만이 지니고 있는 죽음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김수영은 이러한 관점에 기초함으로써, 현대시의 모더니티를 말할 수 있었고, 참여시를 내세울 수 있었다. 김수영은 죽음의 시학을 완성하고 실천함으로써 여전히 살아 있는 시인이 되었다. --- p.242
김수영은 자신의 삶과 문학이 부정당할 새로운 시간을 기꺼이 열망했으며, 자신과 자신의 세대가 후대에 부정당하는 시간을 ‘사랑’의 시간이라고 명기해둔 바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욕망의 주체와, 욕망의 입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주체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김수영을 통해 우리가 곤혹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복잡성이자 모순이며 문학(사)의 난제다. --- p.256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시인이 100년 후에도 기억될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를 보거나 청년 세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세대나 우리 다음 세대만큼 김수영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김수영이 앞으로 100년 뒤에도 계속 읽히려면, 김수영을 오래 읽어온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자유롭게 김수영을 읽을 수 있는 자유, 발언권을 줘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김수영 시의 어떤 유산이 계승되어야 하는지, 우리 시대에 왜 김수영을 읽어야 하는지, 김수영에게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대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