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불교 연구자들은 유식의 아뢰야식은 현상세계를 형성하는 식이기에 염오의 망식이고, 여래장사상의 일심 내지 진여는 현상세계의 생멸상을 벗은 불생불멸의 심체이기에 무구의 청정식이라고 둘을 구분하며, 그렇게 상(相)을 논하는 유식과 성(性)을 논하는 여래장은 서로 다른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에 기반하지 않고 어떻게 상을 말할 수 있고, 상에 의거하지 않고 어떻게 성을 논할 수 있겠는가? 유식은 아뢰야식으로부터 현상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밝히고, 여래장은 그렇게 세계를 만드는 아뢰야식이 바로 진여이고 법신이며 광원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유식은 광원으로부터 영상(현상)까지의 빛의 전개를 논하고, 여래장은 영상에서부터 빛을 말아 올려 광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념(念)에서 멸상(滅相), 이상(異相), 주상 (住相), 생상(生相)을 차례로 없애 무념(無念)에 이르고자 하는 것은 마음 심층에서 자신을 광원으로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확인되는 무념무상의 진여가 어찌 빛을 발해 우주를 만드는 아뢰야식의 광명의 근원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유식은 “주기만 하고 빼앗지는 않지만[與而不奪]” 여래장은 “다 주어서 빼앗는다[窮與而奪]”는 원효의 말은 여래장이 유식과 다르다는 말이 아니라 여래장이 유식을 완성한다는 화쟁(和諍)의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여래장이 어떻게 유식을 완성하는지는 기신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서문
기신론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응신과 보신으로 화하는 우주의 근원 내지 본체인 법신은 일체 중생 바깥 어딘가에 실재하는 외재적 인격신이 아니라 모든 중생 내면의 빛, 내면의 광명(光明)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체 중생의 몸과 그 몸들이 의거해 사는 우주 세간은 시간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지만 모든 생멸하는 것을 바라보는 중생의 눈, 그 생멸을 느끼고 지각하는 중생의 마음은 생멸 너머의 빛, 불생불멸의 광명, 바로 법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체 중생심 안의 불생불멸의 진여심, 여래법신이다. 변화하는 생멸의 지평 너머 일체 중생 안에서 하나로 빛나는 광명, 즉 일심(一心)이다. 결국 중생은 불생불멸의 진여심과 인연 따라 생멸하는 생멸심의 양면을 가진다. 이로써 기신론의 ‘일심(一心) 이문(二門)’이 성립한다. ---p.30~31
기신론에서 중요한 것은 중생 각자가 자신의 마음을 심층적으로 깊이 알아차린다는 것만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심층으로 내려갈수록 개인의 범위를 넘어서서 다른 마음과 직접적으로 서로 소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면, 일체 중생의 마음이 하나가 된다. 이 바닥에서의 하나의 마음을 ‘일심(一心)’ 이라고 한다. 마음 바닥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본래 바닥이 없는 공(空)이다. 바닥이 없고 끝이 없기에 우주 만물 일체를 그 안에 포괄할 수 있으며, 따라서 한계가 없는 무한이고 상대가 없는 절대이다. 이것이 바로 일심이다.
각각의 중생심이 형성한 세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은 그 각각의 중생심 안에 공통적인 한 마음, 일심, 진여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심층 마음을 알아나간다는 것은 곧 일체 중생과 서로 소통하는 하나의 마음을 자각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신론은 우리에게 그러한 마음의 심층 세계, 모든 마음이 서로 소통하는 세계, 일체 세간과 출세간을 만들어내는 자신 안의 법신의 활동이 그대로 자각되는 일법계(一法界), 그 진여의 세계를 제시함으로써 우리에게 대승법인 일심 내지 진여에 대한 믿음을 일깨워 주는 논서이다. 그리고 그 믿음에 근거해서 진여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자 발심하게 하고, 어떻게 그리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수행 방법을 제시한다. ---p.38~39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본 논서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법’은 중생심 내지 진여심, 한마디로 일심(一心)이다. 원효는 “법이 있다고 한 것은 일심법을 말한다”고 단언한다. 일심법이 대승적 믿음의 근본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즉 누구나 일심법을 이해하기만 하면 대승적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대승적 믿음은 무엇인가? 중생심이 곧 진여심이라는 것, 중생이 곧 부처라는 것, 일체 중생이 모두 일심의 존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승적 믿음은 곧 진여 내지 일심에 대한 믿음이다. 대승적 믿음인 진여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중생 안의 진여심 내지 일심 자체이기에, 누구나 일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일심을 이해하기만 하면 곧 대승적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신론은 중생이 대승적 믿음, 즉 진여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즉 진여심을 논함으로써 중생 안의 진여심을 일깨워 중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 안의 진여를 믿게 하려는 것이다. 물론 진여에 대한 믿음의 직접적 원인인 인(因)은 각 중생 안의 진여 자체이다. 하지만 그 인이 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즉 누구나 자신 안의 진여를 믿기 위해서는, 그 진여를 일깨워주는 보조적 조건인 연(緣)이 필요하다. 이 연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 본 논서가 지향하는 바이다. ---p.57~58
이와 같이 기신론은 아뢰야식이 생멸상을 형성한다고 해서 그 자체 염오식 또는 생멸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뢰야식 자체는 생멸상을 형성하되 자신이 형성한 생멸의 상과는 구분된다는 것, 따라서 불생불멸의 여래장 내지 진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표층적인 마음의 생멸은 심층의 불생불멸의 여래장에 의거해서만 가능하다는 것, 그러므로 생멸의 모습을 드러내는 중생의 마음 자체는 불생불멸의 여래장이고 진여이며 일체의 염오를 벗은 자성청정심이라는 것을 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효는 “자성청정심을 여래장이라고 이름한다”고 말하며, 여기서 말하는 화합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불생멸심과 생멸의 화합이지, 생멸과 불생멸의 화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p.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