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위대한 시인, 철학자, 예술가, 정치인들 중에 우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은 이유를 궁금해했다.2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의문은 고대의 4가지 체액설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인간의 몸은 각각 다른 기질의 4가지 체액인, 우울질melancholic(슬픔), 다혈질sanguine(행복), 담즙질choleric(공격성), phlegmatic(침착성)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런 체액들의 비중에 따라 성격이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리스의 유명한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이 네 가지 체액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사람이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다.3 하지만 우리 대다수는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이 중 우울질에 방향을 맞춰, 내 방식의 표현대로 ‘달콤씁쓸함’에 대해 다루려 한다.4 갈망과 그리움과 슬픔의 감정에 잘 빠지는 성향, 영원하지 않은 삶에 대한 의식, 세상의 아름다움에 호기심을 갖고 통찰하는 일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 p.23
닥터는 임원진이 슬픔이를 너무 침울하고 어두운 캐릭터로 받아들일까 봐 고민이었다. 애니메이터들이 그려놓은 볼품없이 땅딸막하고 울적한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었다. 왜 굳이 그런 캐릭터를 영화의 주연급으로 삼느냐, 누가 그런 여자 캐릭터에 공감이 가겠느냐고 지적할 만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우군을 얻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관록 있는 심리학 교수 대커 켈트너Dacher Keltner였다. 닥터는 켈트너에게 자신과 동료들에게 감정의 과학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고,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당시에 켈트너의 딸도 닥터의 딸처럼 사춘기의 진통을 겪고 있던 터라 두 사람은 남일 같지 않은 걱정을 공유하며 끈끈한 우애가 생겼다. 켈트너는 닥터와 팀원들에게 주요 등장 감정의 역할을 짚어주며, 소심이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버럭이Anger는 이용당하지 않게 보호해 준다고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슬픔이의 역할은?
켈트너는 슬픔이가 연민을 자극해 사람들의 관계를 돈독하게 이어준다고, 또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로 뭉친 픽사의 영화 제작진이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느끼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 p.49
강의에서는 우리에겐 잃어버린 반쪽이 없다는 점도 상기해 주었다. “좀 어두운 얘기지만, 우리의 전부를 이해해주고 크고 작은 부분에서 우리와 모든 기호가 잘 통하는 파트너는 없어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요. 결국, 우리가 지향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궁합의 비율뿐이에요. 다시 플라톤으로 돌아가 다 같이 플라톤의 황홀하지만 제정신이 아니고 애정 파괴적인 그 순진함을 완전히 죽입시다. 소울 메이트는 없어요.”
--- p.82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잃었는지를 얘기했지만 이 얘기를 꺼낸 것은 내 이야기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다. 당신의 사랑과 상실의 이야기도, 그 달콤씁쓸한 이야기도 특별하다.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보다 (바람 같아선 덜했으면 하지만) 훨씬 더 트라우마적일 수도 있다는 걸 뼈저리도록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당신이 이 이야기를 세상의 여러 고통에 견주며 작은 상실이라고 여기든, (우리가 앞에서 다윈과 달라이 라마를 통해 깨달았듯) 어머니가 곧 사랑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큰 상실이라고 여기든 간에 나는 안다. 당신도 나름대로 사랑의 상실을 겪었거나, 앞으로 그런 상실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방금 얘기했던 일들을 (대부분) 치유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해하는 데까지도 수십 년이 걸렸다. 그 과장에서 내가 배운 교훈이 당신에게도 유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 p.164~165
마지막 만남에서 카프카는 소녀에게 편지와 함께 인형을 건네준다. 그 인형이 소녀가 잃어버린 인형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아 편지에는 이런 말을 적었다. “여행을 하는 사이에 내가 좀 변했어.”
소녀는 그 선물을 남은 평생 동안 소중히 간직한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어느 날 그동안 못 보고 넘어갔던 인형의 갈라진 틈 안에 쑤셔 넣어져 있던 또 한 통의 편지를 보게 된다.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잃어버리게 되어 있단다. 하지만 결국 사랑은 다른 모습을 하고 다시 돌아와.”
--- p.187
현재의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승자와 패자를 뚜렷하게 구별하고 있다. 저널리스트인 닐 개블러Neal Gabler가 2017년에 [살롱Salon]에 올린 글처럼 “미국은 승자로 인정받는 (그리고 스스로도 승자로 자인하는) 사람들과 (중략) 승자들에 의해 패자로 여겨지는 사람들 사이의 구별이 심화되어 있다. 패자들은 문화적 천민으로 치부되어, 인도의 불가촉천민의 미국판에 상응하게 되었다. (중략) 자기 존중을 비롯해 존중을 받으려면 승자가 되어야 한다.”
--- p.209
‘노력이 필요 없는 완벽함’이라는 문구가 생겨난 곳이, 젊은 승자들이 우위를 지키려 애쓰는 미국의 명문 대학들이라는 점은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캠퍼스 내 불안감, 우울증, 자살의 비율이 증가하는 시대에 생겨난 점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은 완벽함보다는 승리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승자 유형의 사람이 되려 하고, 아주 높이 떠올라 삶의 씁쓸한 면을 피하려 하고, 패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노력이 필요 없는 완벽함’이 우리의 대다수 대학에서 유행하는 말이라 해도, 그 기원은 우리가 미국 공화국이 시작된 이후부터 내내 굴복해온 바로 문화적 압박이다. 여기에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의 심화라는 새로운 현실까지 더해져 상대적으로 소수의 승자만을 배출하는 사회에서 승자처럼 느껴야 한다는 압박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 p.219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듯, 리더가 나타내는 감정에 따라 그 리더의 힘을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대체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화를 내는 리더가 슬프게 반응하는 리더보다 더 힘 있는 리더로 인식된다. 실제로 유독 달콤씁쓸한 유형의 사례들을 살펴봤더니 창의적인 인물은 쉽게 눈에 띄었으나 비즈니스 리더는 별로 없었다. 내 추측엔, 이것은 멜랑꼴리한 관리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런 유형임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경영학 교수 후안 마데라Juan Madera와 D. 브렌트 스미스D. Brent Smith의 2009년도 연구를 통해 때때로 분노보다 슬픔이 리더들에게 더 좋은 결과(따르는 사람들과의 관계 강화, 효율성에 대한 인식 증가 등)를 견인해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 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