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도의 차이가 신앙의 차이다. 기도의 실력이 신앙의 실력이다. 기도의 고수가 신앙의 고수다.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안다. 마음도 원한다. 그런데 육신이 약하다. 너무 바빠서, 너무 피곤해서, 너무 괴로워서, 너무 몸이 아파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기도하지 못한다. 사실 처음부터 우리의 육신과 기도는 어울리지 않는다. 기도는 핑계를 이기고 장애물을 극복해 내야만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기도의 거장이 될 수 있을까?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기도와 제자들의 기도 사이에 차이를 만든 중요한 단서가 하나 있다. 무엇인가? 누가복음 22장 39절을 보면,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미 주님은 오래전부터 그 시간에 감람산에서 기도하는 습관을 지니셨다. 주님은 기도의 훈련이 되신 분이었다. 바로 제자들과 주님의 차이다. 훈련 없이 거장이 되는 법은 없다.
---「프롤로그」중에서
기도는 생각의 싸움이다. 먼저 내 생각을 하나님께 고정해야 한다. 무엇을 바라보는가, 즉 시선이 믿음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바라보면 근심하게 되고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기도하게 된다.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주님, 어디 계세요?” 하고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영의 일을 생각하는가, 육의 일을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냐, 육적인 사람이냐가 결정된다.
--- p.17
운동도 자기 몸에 맞게 시작해서 점점 운동량과 강도를 늘려 가야 한다. 기도도 마찬가지로 자기 수준에서 시작해야 한다. 처음에 기도를 많이 하고 싶어도 잘 안된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기도 시간을 정하고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이 기도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기도를 안 하느니 ‘하루에 5분 기도하겠다’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으라. 그러면 그 작은 결심을 시작으로 결국 기도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게 된다. 시간을 정해 놓고 최소한 그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 p.48
누군가 “당신의 기도 시간은 언제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의 기도 시간은 ○○입니다”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게 답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전기를 읽어 보면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그들의 기도 시간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다. 그들은 일평생 살면서 기도 시간을 항상 지킴으로 중심을 가지고 살았다. 또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산다면 그 하나님을 즐겨 만나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 p.64~65
하나님과 친한 것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한테 내 얘기 좀 잘 해 줘”라고 부탁한다고 하나님이 기뻐 받지 않으신다. 주님이 내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더 좋아하실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주님이 듣기 원하시는 것은 바로 내 목소리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시 116:1). 분명히 ‘내 음성’이지, ‘우리 음성’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주님은 개인적인 교제를 원하신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선물은 바로 자녀인 ‘나의 목소리다’.
--- p.80~81
그러므로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지 말라. 함께 기도해야 한다. 교회 소그룹에서 격려하면서 함께 기도하라. 혼자 하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한 가지 사건을 두고 두세 사람이 마음과 생각을 모아서 기도할 때 그 힘이 배가 된다. 한 사람이면 천을 대적하고, 둘이면 만을 쫓는다고 하지 않던가. 열 명이 마음을 합하면 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영적 전쟁에 우연이란 없다. 기도 없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는 없다. 우리의 기도가 도달하는 모든 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
--- p.91
새벽 기도회에 매일 나오지만 실제로 삶에서 기도의 능력이 잘 나타나지 않는 분이 있다. 늘 새벽을 깨우는데 정작 기도 자체가 깨어 있지 않으면 실제로 기도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 기도 생활에는 별로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깨어 있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첫째, 기도 자체에 주님과의 긴밀하고 깊은 영적 교제가 있어야 한다. 둘째, 무엇을 기도할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기도로 올려 드릴 기도 제목이 있어야 한다. 셋째, 기도할 때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마음을 버리고,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사역적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 p.116~117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은 받는데, 정작 하나님께 응답받지는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기도의 커다란 장애물이다.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 대표 기도도 마찬가지다. 비록 사람들 앞에 있으나 그 순간에 그들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기도라고 생각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눈을 감았는데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사람과 환경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 앞에서 기도하길 바란다면 항상 충분한 개인 기도 시간을 먼저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래야 여러 사람 앞에서도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회중 앞에서건 골방에서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할 때 능력이 임하고 감화하시는 역사가 일어난다.
--- p.122~123
가장 강력한 기도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간절한 기도다.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도가 가장 강렬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 애통하는 심령이 복이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마 5:3-4). 애타게 부르짖는 자녀의 소리를 들을 때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간절하게 부르짖는 마음에는 주님을 진정으로 소망하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에는 허례허식이 없다. 간절하게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구체적인 소원이 있다.
--- p.142
우리는 기도의 각 단계를 거쳐 하나님께 다가간다. 평소에 기도를 안 하다가 갑자기 깊은 단계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끈기 있게 기도하는 사람만이 기도의 깊은 단계까지 들어갈 수 있다. 삶에서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님을 깊이 만난 적이 언제인가? 아마 예외 없이 끈질기고 깊이 기도했던 때일 것이다. 혹시 지금 영적으로 빈곤한가? 끈기 있는 기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보다 지적으로 더 발전했다. 신학도 알고 제자 훈련도 받는다. 그런데 무지했던 선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은 적다. 바로 기도의 차이다.
--- p.166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집요하게 싸울 수 있는 힘은 육체적인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충동적으로 솟는 힘도 아니다. 단순히 영혼이 진지하게 임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반드시 내부에 역사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성령이 불어넣어 일으키시는 힘이다. 실제로 성령께 도움을 구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서 간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 의지해야 한다. 늘 성령을 구하라. 힘쓰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우연히 기도가 잘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도에 있어서 요행을 바라선 안 된다. 기도의 헌신만큼 우리의 삶에 혁명적인 사건은 없다.
--- p.175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계신다. 우리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러 다니는 것을 아신다. 사람들을 붙잡고 신세한탄을 하러 다닐 때도 주님은 가만히 계신다. 그러다 이제 하나님 외에는 도움을 구할 데가 없다는 것을 알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 드디어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고 응답하신다.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이다.
--- p.188